『다빈치코드』, 『셜록 홈즈 』 등 각종 추리물, 스릴러물의 소재로 쓰이고 있는 기호학은 우리에게 흥미롭게 다가오지만 아직 신비의 베일에 싸여 있는 듯하다. 최근 영화, 드라마, 광고 등 대중문화와 뉴미디어를 기호학적 분석으로 접근하는 연구결과가 쏟아지면서 기호학은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과 방법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기호학에 대한 대중의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호학의 학문적 성격과 최근 논의되고 있는 기호학 연구동향 등을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살아있는 기호, 열려 있는 기호학

2003년 세계적 흥행 돌풍을 일으킨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에는 하버드대 종교기호학과 교수인 로버트 랭던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잃어버린 성배가 예수의 숨겨진 아내 막달라 마리아라는 점을 밝혀내기까지 그의 추리 여정은 아나그램(Anagram, 철자순서를 바꾼 말), 순서를 뒤바꾼 피보나치 수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도상적 상징 등 숱한 ‘기호’들에 가로막혀 있다. 시체가 남긴 ‘O, draconian devil’이란 메시지가 ‘Leonardo Da Vinci’를 의미하는 아나그램임을 밝혀내는 장면은 랭던의 기호학적 지식이 빛나는 대목이다.

랭던과 함께 기호학의 신비스러운 매력에 흠뻑 빠진 이들에겐 조금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종교기호학과는 세계 어느 대학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기호학과는 소설의 허구적 장치기 때문이다. 다만 기호학과는 이탈리아 볼로냐대 등 4~5곳의 대학에 있으며 움베르토 에코와 같이 쟁쟁한 인문학자들이 모인 ‘세계 기호학회’도 2년마다 성황리에 열리니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게다가 당신은 이미 기호학의 세계에 발을 내디뎌 본 사람일지 모른다. 『다빈치코드』에서 볼 수 있는 종교상징들과 신비스런 기호는 사실 기호학이 다루는 대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대로 올수록 기호라 볼 수 있는 대상은 매우 광범위해져 어느새 기호가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 의복, 음식, 주거 공간, 도로의 교통신호, 인사말처럼 생활에서 접하는 거의 모든 것이 기호학의 연구대상이다. 따라서 현대의 기호학은 케케묵은 고대의 종교상징이나 철자바꾸기처럼  ‘죽은 기호’가 아닌 인간의 삶과 밀접한 ‘살아있는 기호’, 즉 생명력 넘치는 기호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프랑스 언어학자 소쉬르는 기호학을 “사회 한복판에서 기호들의 생명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했다. 사회를 떠난 기호는 ‘진공 속의 기호’에 불과하며 아무런 의미도 생명력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기호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의 선악과는 서양 종교화에서 보통 사과로 그려진다. 사과가 서양에서 ‘유혹’을 의미하는 기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미국 애플사의 로고인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는 유혹을 의미하지 않는다. 뉴턴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법칙을 발견한 것에 모티브를 얻은 애플사의 사과는 과학적 창의성, 창조력 등을 의미하는 기호다. 기호의 인식은 사회적 맥락, 즉 시간과 공간에 따라 자유자재로 달라지기에 기호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호의 생명력은 발신자와 수신자의 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성도 교수(고려대 언어학과)는 기호의 변화하는 의미작용을 ‘여행’에 비유한다. 그는 “발신자의 품을 떠난 메시지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며 수신자에 도달하기까지 ‘여행’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 발신자와 수신자는 같은 의미를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해로 인해 메시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의미 작용한다. 결국 기호학의 연구대상은 고정된 기호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기호의 의미작용 자체이다.

기호학은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 현상을 보고 그 심층적 의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현대기호학은 이제 어떤 것을 ‘기호’로 규정하고 그것의 의미작용을 밝히는 학문분과를 넘어 기호학적 관점으로 방대한 문화, 자연현상에 접근하는 유용한 방법론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김성도 교수는 “정성(定性)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기호학의 방법론이 통계적이고 정량(定量)적인 사회과학적 접근법이 밝힐 수 없는 문화 현상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아직 기호학적 방법론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하고 난해하게 다가오지만 문화가 핵심적 가치가 되는 21세기 사회에서는 그 쓰임새가 더욱 확장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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