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나서며] 박성준(국악과ㆍ학사 졸업)
[교문을 나서며] 박성준(국악과ㆍ학사 졸업)
  • 박성준
  • 승인 2003.09.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사모가 어색한 이유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던 게 언제였을까요? 가물가물할 정도로 꽤 오래 전의 일이 되었나 봅니다. 너무나 오랜만에 받아보는 졸업장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여름의 졸업식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배. 저 졸업합니다. 제가 졸업할 때 선배를 꼭 부르리라 마음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마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학사모를 쓰고 졸업장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선배에게 보이기가 겁이 났습니다.


얼마 전 서울대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50% 밑으로 떨어졌다는 기사가 났었지요. 서울대 졸업장도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며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어댈 때, 선배가 그랬지요. 서울대생들의 취업에 대한 무관심과 쓸데없이 높은 눈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라구요. 일찌감치 취업이라는 좁은 문을 향해 매진하기 시작했던 다른 학교 학생들과는 달리, 서울대생들은 취업 문제에 상대적으로 둔감하고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과외다 뭐다 하며 학생 때 벌어들인 돈을 생각해 보면 웬만한 대우는 눈에 차지도 않는다면서….


그 때 저는 대학이 취업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지 않느냐며 항변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선배가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단지 취업 얘기를, 학벌 얘기를 하고자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평균 이하의 삶을 살려 하지 않고 또 결과적으로도 그렇게 되면서도 사회에 대한 책임은 좀처럼 지지 않으려 하는 서울대 출신들을 비판해 오던 선배의 지난 모습을 제가 어찌 잊었겠습니까.


선배. 어떻습니까? 저는 어떨 것 같습니까? 솔직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선배의 지적대로 사회의 무서움을 전혀 모르던 채로 온실 속에서 잘 자라오다가, 이제는 웬만한 대우는 눈에 차지도 않는 콧대 높은 서울대 졸업생이 되어 학교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이제야 선배의 그 독설이 크게 틀리지 않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선거권도 없다고 놀림받던 새내기가, 반은 놀림조로 '서른 즈음에'를 불러주는 후배들에게 둘러싸인 채 졸업을 할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성인이 아닌 채 남아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선배. 저는 이제 선배가 그렇게 경멸해 마지않던 그 서울대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학사모가 어색한 이유를, 졸업장이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박성준
국악과·학사 졸업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