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특집]

홍성담, 「간코쿠 야스쿠니」, 캔버스에 아크릴릭, 163 x 260, 2009
사진: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홍성담 작가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담은 「횃불 행진」, 「가자! 도청으로」등의 판화 작품으로 항거 현장을 생생히 묘사해 민중에게 시대현실을 자각시켰던 미술인이다. 또 민중화가 1세대이기도 한 그는 1989년 평양축전에 작품 슬라이드를 보냈다가 3년간 옥고를 겪고 국제 앰네스티 본부에서 ‘올해의 양심수 3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또다시 5월을 맞아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6월 6일(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홍성담 작가의 2번째 개인전 「흰빛검은물」전은 그가 주소재로 그렸던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더 나아가 동아시아 역사 전반에 걸친 기억과 사건들의 편린을 한 데 모았다. 그는 아픔과 저항을 직설적으로 논하던 과거의 판화 기법에서 벗어나 탱화나 민화의 계보를 잇는 구도와 여기에 더해진 강렬한 색채감과 세밀한 표현으로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그의 작품 「야스쿠니의 미망(迷妄)」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에서 시체처럼 돌아다니는 사람들, 해골 형상으로 산화된 군인, 사형수들의 떨어진 목 등 일본의 군국주의 시대가 만들어낸 아픈 기억들이 그림 전면에 배치돼 있다. 그리고 참상들의 한가운데는 야스쿠니 신사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이 아닌 전쟁 자체를 미화시키려는 일본의 이 극우적인 공간을 일그러지게 표현해냈다.

또 다른 작품 「간코쿠 야스쿠니」는 이 야스쿠니 신사를 한국으로 끌어온다. 작품에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도인 같은 자세를 취한 전두환 전 대통령, 정장이나 군복을 차려입은 권력자들이 희화화됐다. 그들이 짓밟고 있는 것은 용산 건물과 폭력의 희생자들이다. 지붕에서 개가 짖고 있는 청와대 건물 주변은 만원권 지폐가 신사의 깃발처럼 둘러져 있어 ‘야스쿠니’가 비단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만이 아닌 현재 우리 주변에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폭력과 암울함에 대한 주목은 투쟁 정신이 사그라진 현 세대에 경종을 울린다. 광주시립미술관의 장경화 분관장은 “30년 전의 숭고한 저항정신은 시대의 흐름에 덮였다”며 “부패한 것이 거름이 돼 다시 양지를 잉태하듯 어두운 기억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저항정신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시 기획의 취지를 밝혔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0년이 지났다. 당시의 끓는 피는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잦아들고 사건은 한국 근현대사 한 페이지의 어두운 상처로 남아 통한만을 안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흰빛검은물」전은 그러한 아픈 흉터로부터 현시대에 걸맞은 민주화의 태동이 움트게 할 것을 당부한다.
<문의: 062-5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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