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5월 24일, 대동제를 기해 학관 앞 열린 마당에서 5·18 기념탑 ‘새벽출정’의 제막식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기획, 제작하여 학생회관 앞에 조형물을 세웠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학내에서 기리고자 함이었습니다. 탑은 이후 18년 동안 그 자리에서 학우들을 지켜봐 왔습니다.

그러나 2007년, 탑은 버려졌습니다. 본부와 생활협동조합은 학생회관 리모델링을 추진합니다. 학생회관 앞 돌계단을 나무계단으로 바꾸면서 그 자리에 있던 탑을 임시로 학생식당 뒤편으로 옮깁니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고도 이들은 탑을 제 자리에 옮겨놓지 않았습니다. 탑은 학생식당 뒤편에 내팽개쳐졌고 훼손됐으며 때로는 걸레 건조대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새벽출정’은, 그 무렵 우리 모두와 서울대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제막식으로부터 20년이 흐른 2009년의 어느 봄날 ‘새벽출정’을 잊지 않은 학우들이 5·18 기념탑 복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뜻을 모은 학우들이 당시 총학생회, 생활협동조합, 본부, 교보문고, 교수, 언론 등과 접촉했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당시 총학생회장 박진혁씨는 “복원 결정을 위해서는 공론화를 통한 민주적 정당성이 필요하다”는 말만을 반복했으며 생활협동조합의 한 담당자는 “5·18이 민주화운동이 아닐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대학신문』을 비롯한 학내 언론들의 침묵과 무관심 역시 안타까운 부분이었습니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본부는 시종일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2010년, 올해는 5·18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5·18 기념탑 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다시금 학생회와 본부, 생활협동조합, 교수님들을 만났습니다. 또한 「경향신문」, 「연합뉴스」, MBC, 『대학신문』, 「서울대저널」 등이 이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학우들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지지의 뜻을 밝혀 주셨습니다. 여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했는지 본부와 생활협동조합은 다시 탑을 원래 자리로 옮겼습니다. 버려진 지 대략 3년 만입니다.

30년 전 수백의 광주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됐습니다. 광주의 진실은 청년들의 심장을 거세게 두드렸고, 이는 87년의 거대한 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이들의 피에 빚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선배들의 소중한 노력을 망각한 것에 대해 학생사회의 자성이 필요합니다. 5·18 기념탑, ‘새벽출정’의 복원은 분명 우리 모두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끝이 아닌, 또다른 시작을 위한 작은 상식의 귀환에 불과함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서울대 5·18 기념탑 ‘새벽출정’ 복원추진위원회 위원장 박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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