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의 선택적 강조와 생략으로
발언의 전체 의미 왜곡될 수 있어
언론의 신뢰는 팩트 여부뿐 아니라
팩트를 ‘어떻게’ 보도하는가에 달려

우지숙 교수
행정대학원
최근 모 일간지에서 ‘광우병 촛불 집회 2주년’ 특집을 기획해 당시 촛불 집회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밝혔던 사람들의 근황을 보도했다. 당사자들과 직접 인터뷰한 내용이 적지 않은데, 발언이 왜곡됐거나 의도와 반대로 짜깁기 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 인터뷰 대상자는 관련 기사가 ”소설과 다름없다”고까지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해당 일간지는 사설을 통해 ‘이들의 반박을 살펴보니 ‘팩트(fact)’가 틀렸다는 얘기는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내용의 전문을 그대로 받아써 주지 않으면 모두 왜곡이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인터뷰 내용을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가? 이번 예를 보면 강연을 위한 미 방문 중 안전한 쇠고기를 사용하는 햄버거 가게들을 찾아가 보았다는 인터뷰 내용을 “‘65만명 광우병 사망’ 외치던 그가… “올해 햄버거 먹으며 美 여행””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맥락을 달리하여 인용했다. 또한 “인터넷에 나온 말을 진짜라고 믿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부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도 있으나 전부 틀린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닐 것이고 가능성이 있는 사실이라 생각한다”고 답한 것을 “당시 인터넷에 떠돌던 말들이 과학적 사실은 아닌 것 같다”로 인용했다. 인터뷰 발언 중 일부 내용을 생략하고 선택적으로 강조하거나 화자의 의도와 반대의 뉘앙스가 전해지도록 발언을 배치한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실제로 하지 않은 얘기가 ‘창작’됐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즉, 기자가 주장하는 ‘팩트’ 보도 원칙에서는 어긋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는 것인가?

팩트, 즉 사실에 근거한 보도는 저널리즘의 기본이다. 그러나 저널리즘의 원칙과 윤리는 거짓을 보도하지 않는 것, 사실을 보도하는 것 이상을 종종 요구한다. 기사란 온갖 사실들을 단순히 나열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실 중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배치해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기사다. 그러므로 언론은 어떠한 사실을 얼마만큼 어떻게 보도해야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할지를 항상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번 논란에서 ‘팩트’란 인터뷰 대상자들이 말한 내용이다. 팩트가 틀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어떤 내용을 선택해 인용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러나 발언 중 무엇을 어떻게 인용해야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잘 전달하는 것인지를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터뷰의 당사자들이 발언의 의미가 왜곡됐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기자가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거나 취재원이 하지 않은 말을 꾸며내지 않더라도, 특정 부분을 강조하고 다른 부분들을 배제하거나, 발언을 기자 나름대로 해석해 인용부호를 붙이거나, 제목을 특정한 방향으로 뽑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이런 경우라도 팩트에 근거한 보도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진실에 어긋나는 보도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언론에 대한 독자의 신뢰는 단순히 팩트를 보도하는지 여부만이 아니라 팩트를 어떻게 보도하는지에 달렸다.

특히 이번에 논란이 된 일간지는 국내에서 최대의 발행부수와 영향력을 자랑한다. 우수한 인재들이 취재와 기사작성 훈련을 받는 곳에서 인터뷰 기사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칫하면 우리 언론 전체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해당 일간지는 그동안 인터넷에 허위 정보와 근거 없는 소문이 많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그러나 전통 언론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수록 국민들은 다른 매체에서 대안적 정보를 찾으려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담론이 활발한 것은 정통 언론의 부재와도 맞물려 있다. 이념적 지향과 관계없이 저널리즘의 측면에서 정론지라고 평가되는 일간지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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