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노동자들을 위해 제 몸을 불살랐다. 그가 분신한지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의 많은 노동자는 근로기준법과 노동 3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특수고용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청소년 노동자의 실태를 르포로 담아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을 다시 한 번 짚어보고자 한다.

“8시간 노동문제는 다 무엇이며, 주휴제, 야간작업금지, 시간 외 근무수당, 월차휴가, 생리휴가, 해고수당 따위가 다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법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법이란 말인가?”
- 『전태일 평전』 303쪽 중

청년 전태일은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익을 보장하는 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분개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에는 ‘노동자’임을 인정받지 못해 노동 3권을 비롯한 근로기준법의 보호 대상에서 배제된 이들이 있다. 이들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화물차 운전자, 택배 기사, 학습지 교사 등의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정난숙씨(45)는 대교에서 학습지 교사로 15년간 일했다. 그는 시흥3동과 5동에서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학생들을 가르친다. 정씨는 시흥3동의 가파른 언덕을 쉴 새 없이 오르내린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일이 10시에 끝날 때까지 수업이 연달아 있기 때문에 한 수업이 끝나면 다음 집으로 쉬지 않고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학생에게 사정이 있지 않은 한 수업이 끊이지 않아 쉴 시간은 거의 없다”며 “12시에 점심을 먹으면 밤 10시까지는 아무것도 못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일해서 버는 수입은 한 달에 120만원 남짓이다. 이는 정씨가 벌어들인 돈에서 회사에 보내는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이다. 정씨가 학생들에게 학습지 구독료를 걷고 본사에 송금하면 이 금액의 반 이상을 회사가 수수료로 가져간다. 최근 들어 학습지 회사들이 경기 침체를 이유로 수수료를 상향 조정하고 있어 정씨의 수입은 더 줄어들게 됐다. 이렇게 그가 벌어들인 돈은 올해 법정 최저임금인 시급 4,110원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적다. 게다가 회사 측이 다음 달 구독 여부를 매달 15일에 통보하도록 정했기 때문에 학부모가 15일 이후에 구독을 중지하면 남은 기간의 구독료를 정씨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이를 학습지 교사들은 ‘휴회 홀딩’이라 부른다. 정씨는 “안 그래도 적은 월급에 휴회 홀딩까지 여러 개 걸리면 수입을 고스란히 회사에 넘겨줘야 하므로 수입은 더 줄어든다”고 말했다. 여기에 본사에 의해 정기적으로 판매 실적을 평가받고 주말에 대형 할인매장에 학습지 홍보를 위해 파견되는 일도 잦아 그의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정씨는 “학습지 교사가 처한 열악한 상황에도 사측과 소통할 통로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지난 2000년 학습지 교사들의 노조가 잇달아 설립됐지만 사측이 학습지 교사가 특수고용직임을 들어 노조를 인정하지 않아 실제적인 협상력은 없는 상태다.

정씨는 생리 중이거나 몸이 아프더라도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 학습지 구독 학생에게 학습지 교사 1인 만이 배정돼 있어 정씨를 대체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을 쉬게 되면 휴가 수당제가 없어 일당이 지급되지 않는다. 또 학습지 교사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4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지난 2007년 정부는 사측과 교사가 보험료를 반씩 지불하는 조건으로 학습지 교사의 산재 보험만 인정했지만 비용 부담으로 학습지 교사들은 산재 보험을 신청하지 않고 있다. 정씨는 “학습지 교사들의 수입이 낮아 몸이 좋지 않거나 비교적 높은 수입을 올리는 교사들만 보험을 신청했다”며 “정부는 학습지 교사를 유사 노동자로 분류해 보험비용을 교사에게도 부담시켜 보험 혜택조차도 누리지 못하게 한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정씨는 거의 오후 10시에 가까운 시간에 일을 마쳤다. 늦은 시간에 일이 끝나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오늘 아이들이 사정이 있어 수업을 못해 30분이나 일찍 끝나 기분이 좋다”며 웃음으로 답했다. 매일 같이 밤늦게 귀가하기 때문에 그는 고3 수험생 아들과 중3 딸과 대화를 거의 나누지 못한다고 말했다. 둘째를 낳고 1년 동안 일을 쉰 것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계속 학습지 교사로 일했다는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 아이들은 가르칠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사업주에게 종속돼 있으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이처럼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된 채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다.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다리미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
- 『전태일 평전』 134쪽 중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할 때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 여공들을 걱정했다. 하루 15시간에 이르는 극악의 노동시간에 간식으로 풀빵도 사먹지 못할 만큼 적은 임금을 받는 여공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과거 어린 여공들의 자리를 이제는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신하고 있다.

안산 반월공단은 한 블록에만 수십개의 공장이 밀집한 지역으로 섬유 공장이 몰려있으며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공장지대에 들어서자 화학 약품 냄새가 풍겼다. 점심에 가까운 시간에 공단에 도착했지만 길거리에는 담배를 피우며 쉬는 한국인 노동자들만 눈에 띠었고 공단은 조용했다. 외국인 노동자는 주어지는 휴식 시간이 짧아 공장 밖으로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단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취업비자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이주센터에 요구해 비자를 최장 5년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기한이 만료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공단에서 마주친 앰란 후셴씨(방글라데시)는 “본국에서 같이 온 친구 중에서 본국 송환 명령이 떨어지고도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불법체류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셴씨는 반월공단의 한 염색 공장에서 일한다. 기본적으로 그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2시간을 일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는 밤 12시까지 초과근무를 한다. 기본 근무시간동안 버는 일당은 3만원밖에 되지 않지만 초과 근무는 시간 당 6천원을 주기 때문에 힘들지만 이를 택하는 것이다. 그는 “초과근무를 하면 평소보다 잠을 3시간 정도 줄여야 하지만 시간수당이 많아 다른 동료들 대부분이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택에 의한 초과 근무가 아니라 휴일 근무를 강요하는 사업장도 많다. 고용지원센터에서 만난 사미르씨(스리랑카)는 지난 2년간 안산 시화공단에 있는 열처리 공장에서 일했다. 그가 열처리 공장에서 하던 일을 그만둔 것은 가혹한 주말 근무 때문이다. 사미르씨가 근무한 공장의 사장은 한 달에 두 번씩 일요일마다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하도록 요구했다. 사미르씨는 “24시간 일을 하는데 2시간 동안 잠깐 눈을 붙이는 것 외에 휴식이 허락되지 않아 일을 버티기 힘들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렇듯 외국인 노동자들은 최소한 주 80시간의 과도한 노동을 하지만 한국 노동자 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다. 이들은 초과근무를 하지 않고 12시간을 일하면 130만원밖에 받지 못하며 초과 근무를 하더라도 월급 160만원을 넘기기 어렵다. 이 중에서도 본국의 가족에게 송금하고 저축을 하면 정작 본인이 쓸 수 있는 돈은 30만원 남짓이다. 이 30만원에서 교통비와 휴대폰 요금처럼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돈을 빼고 나면 노동자가 생활하기는 빠듯하다. 외국인 노동자도 근로기준법에 따라 보험혜택을 받게 돼 있지만 의료비를 외국인 노동자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경우도 많다.

가족을 위해 만리타국 한국까지 일을 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처럼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언제 불법체류자로 전락할지 모르는 불안에 떨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푸른 하늘을 쳐다볼’ 권리도 없고, ‘오늘을 생각할’ 시간도 없으며, ‘내일에의 꿈을 키운다’는 건방진 여유는 더더구나 없었다. 하루하루 모진 목숨을 이어나가야 하는 숨 막히는 노동의 질곡만이 있을 뿐이다.”
-『전태일 평전』 109쪽 중

과거 여공들에 비해 오늘날의 청소년의 노동 실태는 상당 부분 개선됐지만 여전히 많은 청소년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있다. 한창 자랄 나이에 어른들이 부과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낮은 임금을 받는 그들의 모습은 청소년 노동문제가 결코 과거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김슬기씨(가명·18)는 두 달 전 학교를 자퇴하고 베트남 음식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김씨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을 일한다. 손님이 많은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김씨는 화장실도 못 다녀올 정도로 바쁘게 일한다.

러시타임이 끝나면 밥을 먹는 시간이지만 손님이 계속 몰리면 그마저도 어려워 손님이 없는 오후 3시는 돼야 20분 동안 급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다. 3시부터 5시까지는 손님이 적은 시간대지만 김씨는 계속 식탁을 닦고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그는 “근무시간 동안 바쁜 러시타임은 물론 손님이 적은 여유로운 시간대에도 사장이 계속 일을 시켜 다리가 아파도 잠시 앉아서 쉴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직 성장기인 여학생에게 쉬지 않고 계속되는 일은 상당히 부담될 것으로 보였다.

김씨가 이렇게 일을 해서 받는 시급은 4,800원으로 최저임금인 4,110원보다 높지만 이를 제대로 받는 것은 아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월급을 15일과 30일에 두 번 나눠 받는데 이 과정에서 하루치 임금이 제외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그는 “아르바이트생 중에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며 “그나마 시급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주는 것에 만족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청소년에게는 최고임금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울 일부 지역이나 지방에서는 청소년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 않는다.

김씨는 사장이 사적으로 시키는 허드렛일도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기자가 가게를 방문했을 때 그는 더운 날씨에 사장의 심부름을 다녀왔다. 사장은 그가 아르바이트생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은행일처럼 사적인 일까지 시켰다. 김씨는 “사장이 어리다고 반말을 하며 무시하고 막내라는 이유로 일을 많이 시켜 힘들 때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정상 업무는 5시에 끝나지만 김씨는 30분이 더 지나서 가게를 빠져나온다. 교대할 아르바이트생이 도착해도 사장이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을 더 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30분간 더 일한 만큼 추가적인 임금은 지급되지 않는다.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오지 않으면 주말에 일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주말에 일하기로 한 아르바이트생이 오지 않으면 사장이 주말에도 일하라고 강요한다”며 “주말에 12시간 동안 일을 대신하고 너무 힘들어 이틀 동안 앓아누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5세 이상 18세 미만 청소년의 노동시간은 1일에 7시간, 1주일에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지만 이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김씨가 장시간 힘든 일을 마치고 나면 스스로를 위한 여유 시간은 거의 없다. 자퇴하기 전부터 청소년 인권 단체에서 활동한 김씨는 현재 아르바이트와 인권 단체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하나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해 그는 밤을 새우는 일이 잦다. 김씨는 “자퇴를 하고 부모님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일을 시작했지만 아르바이트 일이 많아 하고 싶은 일과 병행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인건비가 저렴하고 일을 시키기 쉽다는 이유로 청소년 노동자를 고용하는 업자들의 횡포로 청소년 노동자는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며 꿈을 꿀 여유도 잃고 있다.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은 과거 전태일이 활동하던 70년대에 비해서는 일면 나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서 바라본 노동자들은 여전히 각박한 현실에서 살고 있었다. 노동 문제가 비단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임을 직시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