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체계와 음모보다
일상적 차원의 움직임이 중요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우리들이 일상적 변혁을 이뤄야

박배균 교수
지리교육과
대학에 들어와 사회과학을 막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들이 쉽게 가지는 일반적 성향 중 하나는 일상과는 멀리 떨어진 어떤 큰 것이 우리가 겪는 사회문제의 배후에 있다는 주장에 무척 솔깃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엄청난 힘을 가진 사회 구조, 혹은 거대한 힘을 지닌 세력의 은밀한 거래와 음모에 의해 일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는 해석 등에 젊은 지식인들은 쉽사리 마음이 흔들린다.

필자 또한 대학에 입학한 후 독서모임이나 학회를 통해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공부를 하면서 이러한 주장들에 무척 흥분했었고, 마치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엄청난 비밀을 발견한 듯한 희열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전공하는 지리학이라는 학문은 왜 이러한 큰 이야기를 못하고, 지역이나 도시처럼 작은 것을 설명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일까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특히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시기는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자본주의 구조와 분단 체제의 모순으로 설명하고 그를 바탕으로 사회를 변혁하기를 주장하는 분위기가 대학의 지적 분위기를 주도했기 때문에 사회, 정치, 경제, 자연환경의 지역 간 차이, 도시화의 문제 등과 같은 작은 문제들만 다루는 지리학은 참으로 따분하고 쓸모없는 공부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회과학과 나의 전공인 지리학을 더 깊이 공부하면서 거대한 사회적 구조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지도 않고, 큰 권력을 가진 세력들의 음모적 기획이 그렇게 효과적이거나 완벽하지도 않음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지난 10여년간 필자가 전공하는 정치지리학에서 주요 이론적 쟁점 중 하나가 ‘세계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였다. 세계화에 대한 일반적 설명 방식은 세계화를 우리의 일상과 실천에서 멀리 떨어진 채 글로벌한 차원에서 작동하는 거대한 경제구조 혹은, 강력한 권력에 의해 만들어져 우리가 사는 국가나 지역에 강요되는 거대한 물결로 묘사하는 담론 구조다. 하지만 최근 많은 비판적 지리학자들은 지역과 도시 차원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세계화 과정과 그것에 영향을 주는 장소적 맥락을 민감하게 관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반적 설명 방식을 거부하고 세계화가 여러 장소와 영역에서, 그리고 글로벌, 국가, 지역, 도시, 근린 등 다양한 지리적 스케일에서 활동·작동하는 다양한 사회적 힘들이 서로 교차, 중첩, 상호작용하면서 물질적·담론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해하라고 주장한다. 즉 크고 거대한 힘뿐 아니라 작고 일상적인 과정과 힘도 세계화를 구성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에서 잘 드러나듯 우리 사회는 반드시 거대한 권력과 큰 과정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을과 지역의 작고 소소하며 일상적인 일이 이뤄지는 과정도 우리 사회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프랑스의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도시학자이자 68혁명의 주역인 앙리 르페브르는 일상의 변혁을 통해 혁명을 이루자고 주장했다. 즉 거대한 권력과 힘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의 변화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주변과 일상의 작은 힘에 주목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6월 2일 지방선거가 멀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만큼이나 중요한 정치적 과정이다. 세계경제의 위기,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 민주주의의 위기 등이 걱정된다면 우리 마을과 도시의 대표자를 뽑는 이 작은 정치적 절차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결코 세상은 우리와는 멀리 떨어진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만들어져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변혁을 바탕으로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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