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주관하는 FIFA는 UN보다 많은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다. 발로 하는 공놀이가 그만큼 많은 지구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겠다. 2006년의 사례에 비춰보건대 월드컵 본선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시청하는 누적 인구는 400억명이며, 결승전을 시청하는 인구만 해도 16억명이 될 것이다. 통계를 그대로 믿는다면 지구인의 4분의 1이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공놀이를 한날 한시에 지켜볼 것이다.

『축구란 무엇인가』의 저자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은 축구가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축구가 둥근 공을 발로 다루는 놀이임을 꼽았다. 럭비나 미식축구와 달리 축구공은 완벽한 기하학적 질서를 가지고 있다. 둥근 모양의 축구공은 무게중심이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언제나 움직이기 직전 상태이며 아주 작은 충격으로도 구르기 시작하여 독자적인 생을 전개한다. 그 자체로는 안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운동이 시작될 것 같은 긴장감이 축구공에는 스며있다. 게다가 축구는 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손으로 하는 공놀이에서 공은 문자 그대로 장악(掌握)되어 잡히고 던져진다. 공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동료로서 놀이에 참여하며 길들여진다. 하지만 발로 하는 공놀이에서 공을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공의 말을 들어야 할 지경이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축구공을 억지로 멈추려고 할 때 축구공은 예기치 않은 곳으로 튕겨져 나가고 그때부터 경기는 엉망이 되며 헐떡거리며 뛰어다니는 22명의 거친 사내들만 남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발로 해도 그것보다는 낫겠다’는 폭언에 약간의 변경을 가하여 정치적 가르침을 읽어낼 수도 있다.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 정부 발표의 미심쩍은 점을 지적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협박과 처벌로 응답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표준적 정치 수단으로 굳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치를 발로 하면 그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대중은 고분고분한 태도로 사회적 삶에 참여하지도 않고 정부에 길들여질 수도 없다. 그들을 억지로 멈추려 할 때 그들은 예기치 않은 곳으로 튕겨져 나가고 그때부터 사회는 엉망이 된다. 정치는 손으로 제어하고 장악하는 것이 아니다. ‘발로 해도’ 그것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발로 해야만’ 그것보다 나아질 수 있다. 발로 하는 공놀이처럼, 정치는 우선 대중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하고 장악하려는 자세를 버릴 때에만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제 열흘 남짓 후면 남아공 월드컵이 시작된다. 아마 정치인들도 지구인들이 사랑하는 이 발로 하는 공놀이 축제를 보게 될 것이다. 발로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들도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권희철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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