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가난을 엄벌하다

가난을 엄벌하다

로익 바캉 지음│류재화 옮김│참언론시사인북│240쪽│1만2천원
일반적으로 형벌은 죄지은 자를 벌준다는 점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장치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자가 겪는 것은 정의 실현의 당위성이 아니라 사회에서 격리됐다는 좌절감이다. 이처럼 모든 현상에는 야누스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외적으로는 타당한 것도 그 이면에는 모순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형벌의 강화를 추진하는 의도에는 선명한 야누스의 얼굴이 숨어있다. 

지난 20일(목) 출간된 『가난을 엄벌하다』는 20세기 말 약 20여년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에서 ‘형벌 강경책’이 유행처럼 번져간 양상을 다뤘다. 저자 로익 바캉은 미국 버클리대의 교수이자 프랑스 출신 사회학자로서 1980년대부터 서구에서 감옥이 갖는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연구해왔다. 그는 미국에서 고안돼 순식간에 전 세계로 뻗어간 형벌 강경책에 숨은 기득권 논리를 폭로하며 신자유주의, 복지국가의 후퇴, 빈곤층 문제를 형벌주의가 떠오른 배경으로 꼽는다.

미국 기득권층은 범죄 척결과 사회 안정이 보장된 안전한 국가에서 삶을 영위하려면 형벌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득권층의 탄탄한 논리와 선전의 물결을 타고 미국에서 촉발된 형벌 강경책은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졌다. 기득권층은 빈민, 하층민을 걸러낼 수 있는 촘촘한 ‘그물망’을 들고 형벌 강경책을 수행해 나갔다. 경찰 인력 증강, 정보의 체계화와 통계화 등을 통해 만취, 풍기문란, 구걸과 같은 가벼운 소란에도 강경한 형벌을 적용해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 교도소에 수감된 인원은 점점 감소했으나 이후 15년간 수감 인구는 약 3배나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등 이례적인 현상을 보였다.

빈민을 보듬을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대신 기득권층은 형벌이라는 편리한 수단을 강화해 빈민층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형벌 강경책의 확산은 복지를 축소하는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이어 등장했다. 형벌 강경책의 확산에 힘입어 감옥과 관련된 경제활동은 활성화됐다. 늘어난 수감자를 감옥에서 관리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노동 가능 인구의 일부인 하층민을 감옥에 수감시켜 실업자 목록에서 제외해 실업률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기득권층은 수치를 들어 가시적으로 실업문제가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이 형벌주의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고용증가, 사회안정이라는 목적이 일시적으로 달성된 것처럼 보일 뿐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말한다.

형벌 강경책이라는 눈속임을 통해 가난을 엄벌하려는 미국발 계략에 저자는 일침을 가하며 진정한 복지사회를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난 빈곤층은 여전히 사회적 그늘 속에 숨죽이고 있다. 점점 각박해지는 복지를 바라보며 우리사회가 엄벌하는 가난이 무엇인지 곰곰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야누스적인 형벌 강화 정책과 그 배후에 있는 기득권층의 논리를 다각적으로 판단하는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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