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것 같지 않던 한 학기를 마감하고 여름을 맞이할 때면 이런저런 여행 생각이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자 떠나는 여행이 다른 이들의 어깨 위에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닐까. 트레킹 코스를 만끽할 때 현지인 포터(poter)의 등에 메어진 무거운 짐들과 조련된 코끼리의 다리에 묶인 사슬을 보며 우리의 여행에 물음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대안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최근 대안여행을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감에 따라 다양한 대안여행 프로그램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번 방학에는 기업에 여행수익이 돌아가고 현지인들이 착취당하거나 동물이 학대받는 여행 대신 여행지의 사람과 자연을 생각하는 ‘대안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쓴 여행비용은 어디로 갈까, 현지인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공정여행'

희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간 길의 끝자락에는 캄보디아의 한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 반띠아이 츠마에(Ban-teat Chhmar)는 화려한 호텔도 무희들의 공연도 없다. 대신 양초로 불을 밝히고 빗물로 샤워를 해야 하는 현지 홈스테이를 통해 마을 사람들과 정을 나눌 수 있다. 홈스테이 비용은 기존의 관광 수익처럼 외국계 기업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의 생활비와 마을의 발전기금으로 쓰인다. 이렇게 모인 마을 공동체의 기금은 30여년에 걸친 내전으로 폐허가 된 캄보디아의 복지, 의료, 교육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패키지여행에서 빠지지 않던 쇼핑센터 방문 역시 화려한 무늬의 실크 스카프와 색색의 반합에 담긴 향신료가 즐비한 재래시장에서의 자유 시간으로 바뀌었다. 여행자들은 자신의 소비가 바로 현지인들에게 돌아가는 과정을 보며 공정여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바로 트래블러스맵(www.travelersmap.co.kr)에서 준비한 ‘신들의 도시, 앙코르 캄보디아를 가다’로 8월 16일부터 5박 7일의 일정이다.

외국으로의 일정이 부담스럽다면 ‘청춘의 섬, 울릉도’ 프로그램(ww-w.tour4us.net)에 참여해보자. 경사가 있는 등산로를 지나면 화산섬 울릉도의 유일한 평원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녹음과 야생화를 즐기고 나면 민박집에서의 아늑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다. 3대째 울릉도에 머물며 옛길 트레킹 코스를 만들 정도로 섬을 속속들이 아는 주인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울릉도 전통 음식이 준비돼 있다. 섬의 바다내음을 닮은 음식들을 맛보며 울릉도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시간은 현지인과 직접 살을 맞대는 이 여행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여행 동안 지급하는 렌트비, 숙박비, 식대 등은 현지인들과의 직접 연결로 기업이 아닌 현지 주민에게 돌아간다. 8월 16일부터 3박 4일간의 일정.

아름다운 여행지의 경관을 지키고 싶다면, 지속 가능한 '생태 여행'

여행을 통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무려 13억 7만 톤에 육박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 도보와 자전거를 이용해 탄소발생량을 줄이는 여행이 있다. 바로 착한여행(www.goodtravel.kr)과 발리 마을생태관광네트워크렌터카가 연계해 만든 ‘섬 시리즈’가 그것이다. 렌터카의 매연 없이 발리의 약 28km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 짙푸른 녹음이 더욱 눈이 시리게 다가온다. 원숭이 자연보호구역인 ‘몽키 포레스트’ 방문 역시 인상적이다. 이곳에선 우리에 갇혀 있거나 사람들 손에 길들지 않고 자유롭게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원숭이들을 통해 순수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 텡가난 원주민 촌에 방문해 전통 힌두교를 신봉하는 발리 원주민을 만나고 전통 음식을 만들다 보면 8월 4일부터 시작되는 4박 6일의 일정이 짧게만 느껴질 것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다랭이마을 체험’도 색다른 생태 여행이 될 것이다. 문화유적을 보거나 레포츠를 즐기는 데 급급한 기존 여행과는 달리 이 프로그램에서는 자연과 함께하는 이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경상남도에 있는 다랭이마을에는 삿갓 크기만큼이나 작아서 삿갓배미 논이라고도 불리는 작은 논들이 많다. 이 논에는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마을의 전통 농업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행자들은 손 모내기와 쟁기질, 써레질을 직접 체험하며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땀을 씻으려 고개를 들 때 보이는 쪽빛 바다와 유려한 산세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삶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할 것이다. 농촌진흥청과 다랭이마을(darangyi.go2vil.o-rg)이 함께 기획한 이 프로그램은 수시로 신청을 받으며 1박 2일로 진행된다.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며 여행의 즐거움을 찾는 '윤리적 여행'

거대한 설산(雪山)과 금사강을 지나는 차마고도를 찾는 것은 인도와 티베트, 중국의 오랜 역사와 마주하는 것과 같다. 험준한 산을 지나는 여정은 수천 년을 이어져 왔지만 이제 이 역사의 길은 중국 서남부 개발과 함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기획된 ‘나시족과 함께 차마고도를 걷다’ 프로그램은 차마고도를 지키는 중국 운남 지역의 소수민족과 함께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기억하고자 하는 여행이다. 가파른 산등성이의 밭들과 외세 침략에 대비해 바위산을 깎아 만든 석두성의 모습에서 여행자들은 소수민족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여정에서 맛보는 나시족의 전통 음식과 전통 가옥에서의 밤은 여행자들을 나시족의 산 문화로 인도할 것이다. 트래블러스맵과 나시족이 함께 준비한 이번 여행의 일정은 8월 21일부터 7박 8일이다.

베트남 문화의 정수를 맛보고 싶다면 트래블러스맵이 기획한 ‘퐁당~빠져들다!베트남의 맛’ 프로그램을 따라가 보자. 북적이는 인파를 따라가다 보면 베트남 북부의 재래시장인 박하시장을 만날 수 있다. 이 박하시장에선 베트남 소수민족들의 삶과 문화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한편 고산지대 사파(Sa Pa)에 위치한 계단식 경작지와 대나무 숲을 따라 걷다 보면 전통적 삶을 고수하는 소수민족인 자오족의 마을이 나온다. 그들의 삶의 방식이 처음엔 낯설지만 살을 맞대며 보내는 시간을 통해 이내 그들의 삶을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노이에는 식당과 요리학교를 운영해 거리의 아이들을 돕는 비정부기구 KOTO와의 만남이 준비돼 있다. KOTO가 준비한 ‘쿠킹 클래스’에서 베트남 전통 요리법을 체험하고 나서 여행객들이 지급한 비용은 다시 하노이 거리의 아이들을 돕는 데 사용된다. 일정은 8월 11일부터 8박 9일.

떠나는 발걸음이 나눔의 실천으로 '나눔 여행'

여행을 떠나는 발걸음을 통해 나눔까지 실천할 수 있는 여행을 원한다면 동북아평화연대(www.wekorean.or.kr)의 ‘Pack for purpose 프로젝트’를 눈여겨보자.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으로 여행을 떠나는 배낭여행자라면 누구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여행용품들로 꽉 찬 짐가방을 조금 비우는 대신 현지 아이들에게 선물할 반창고, 청진기, 바람 뺀 공, 연필 등으로 채워 떠나는 여정은 줄어든 가방의 무게만큼이나 가벼울 것이다. 이렇게 채워진 선물들은 현지에서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기관을 거쳐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여행자 한명에겐 가방 속 작은 공간을 내어준 것일 뿐이지만 이러한 실천들이 모여 1톤이 넘는 선물 가방이 만들어진다고 하니 여행가방 속 나눔 공간을 준비해보자.

나눔의 보람을 한 아름 안고 여행지에서 돌아오고 싶다면 아름다운 재단의 ‘책 날개를 단 아시아’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자. 아시아 각지를 여행하고 나서 국내에 거주하는 아시아 이주민들에게 그들 나라의 책을 전달하는 특별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날 시간이 없다면 기부를 통해 나눔에 동참할 수도 있다. 이렇게 모인 책들은 각 지역의 다문화 도서관에 비치되고 기부금은 새로운 다문화 도서관 건립에 쓰이게 된다. 여행의 즐거움 속에서도 낮은 곳을 살피는 나눔의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한여름의 산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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