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의 민간인 사찰 부활
전근대적 권력 남용으로
개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줘
정의 세우는 공권력으로 돌아가야

김효리 학술부장

왕정사회에서는 특정한 인물 혹은 집단이 그들에게 집중된 권력을 사사로이 쓰는 일이 빈번했다. 이때 권력은 누군가가 사유(私有)할 수 있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 권력은 그것을 위임한 국민, 즉 공공을 위한 것이라는 원칙이 확립되면서 ‘공권력’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권력을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린 대가로 얻은, 더는 번복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권력을 사사로이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을 위해 사용하는 관행은 여전히 뿌리 깊다. 한국 정치역사에서 ‘월계수회’, ‘동숭동팀’, ‘연청’ 등 정권들의 ‘사조직’은 임기 후반기에 불거져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재촉했다. 낙하산 인사, 비자금 조성 등 권력을 사사로이 이용한 이들은 정권이 끝난 후 모두 국민과 법정의 심판을 받았다. 지난 민주정권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대통령의 친인척이 법원의 판결을 받고 철창신세를 지는 일들이 반복됐다.

그런데 최근 불거진 ‘권력 사유화’ 논란 상황은 자못 심각하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면서 민간인 사찰이 부활한 것이다. 본래 공직윤리지원관은 행정부 내 공직자의 윤리를 확립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기관이다. 그러나 이름이 무색하게도 그들의 최근 행보를 보면 어디에도 ‘진정한 공직자’와 ‘윤리’를 찾아볼 수 없다. 지원관실은 공직자가 아닌 평범한 사업가를 뒷조사한 후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 그가 사찰 대상이 된 이유는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던 ‘대통령 비판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과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어떤 해명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회사 대표직 해임 등 일방적 조치로 사회적 삶이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특정 집단이 사유한 공권력이 개인에게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논란은 이제 여권 인사에 대한 사찰로 번지고 있다. 사찰 대상 의혹 인사들의 공통점은 대통령의 사조직으로 의심받는 ‘영포회’ 소속 인물들의 권력 남용을 비판했다는 점이다. 특정 개인과 집단을 위해 사용하는 전근대적 ‘사유화’ 관행에 충실한 권력에 어떤 원칙과 정의가 있을까. 공권력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사용될 때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공권력은 누군가에게 ‘부정의’로 구별될 수 있는 원칙이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대통령 비판 동영상을 단지 복사해 올렸다는 죄과로 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과거 한 방송사 내에서 좋은 내레이터로 평가받았던 방송인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같은 방송사에 출연하지 못하는 현실은 오늘날의 공권력이 정의 차원의 논의가 무색하게 단지 권력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상대를 뒷조사하는 수준에 그쳤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 시점에서 민주주의, 인권, 소통 등의 가치는 너무 거창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한 기본적 가치들마저 실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근대적 사용 원칙을 충실히 지키며 나아가 나름의 ‘정의’를 세우는 공권력이 작동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는 ‘정의’가 ‘부정의’로 작용하더라도 무엇이 정의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회가 차라리 낫다. 최소한 권력의 올바른 사용법을 충실히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국민이 국가에 부여한 힘을 사사로이 사용해 역사적 심판을 받는 악순환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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