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대학 재정구조 문제
경제적 격차와 상관없는
교육의 접근성과 질 보장 막아
교육 재정의 공공성부터 높여야

김창엽 교수
보건대학원
단언하지만, 대학의 교육자와 학생치고 나쁜 교육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물론 좋다는 기준을 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고 다행히 의견일치를 보더라도 항상 성공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 이 시간에도 모두 좋은 교육을 하고, 듣고, 만들어가고 싶어 할 것이다. 나 역시 늘 좋은 교육을 꿈꾼다. 그러나 성공은 고사하고 시도조차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다. 나는 대학교육의 공공성이 무너진 것이 이 상황의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외국기관의 현장 방문이나 교육 참여를 필요로 하는 교과목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현장실습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나도 국제보건이라는 과목을 개설했는데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현장실습보다 더 좋은 형식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아직 궁리만 계속 하는 형편인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의 교육재정 상황에서는 이런 비용을 공식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할 수 없이 학생들이 벅찬 추가부담을 해야 하는데, 막상 희망과 능력이 있는 학생들이 부담을 하겠다고 해도 큰 문제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라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도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결과 돌아온 답은 ‘귀족강의’가 아니냐는 냉소적 반응이었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대학교육의 재정구조에서 발생한다. 우선은 재정의 크기가 빈약하다는 것, 그나마 학생의 주머니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 한계로 작용한다. 사실 전체 구조가 그런 상황이니 강의 하나둘의 경비 문제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대학교육의 개인 부담은 이미 포화상태에 도달해 있다. 얼마 전 발표된 OECD 국가의 대학등록금 비교는 한국 교육재정의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 경향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국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국가보다 등록금 수준이 높았다. 국공립 대학도 마찬가지이고 너덧 나라를 빼고는 다른 나라의 사립대보다 더 높다. 등록금 통계의 뒤에 가려진 전체 교육비 부담액 같은 특성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문제는 아무도 이런 사실에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익자’ 부담이라는 익숙한(?) 원칙은 정책을 넘어 개인에게 내면화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공공성이라는 가치는 우리 사회에서 진작 무력화됐다고 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공공성은 경제적 부담능력에 따라 교육에 대한 접근성과 교육의 질이 결정되지 않아야 한다는 대학교육의 특성 혹은 지향을 말한다. 물론 공공성을 모두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공성에 공정과 정의가 중요한 요소로 포함된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대학교육의 목적과 가치가 무엇이든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교육이 좌우되는 것을 정의롭다거나 공평하다고 할 수 없다. 롤즈(Rawls)가 말하는 ‘기회’의 측면에서도, 그리고 센(Sen)이 주장하는 ‘역량(capability)’의 시각에서도 교육에 참여할 공정한 기회는 정의로운 사회의 토대이자 뼈대이다. 이 시대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개인의 성취를 생각하면 지금 대학교육의 공공성은 더욱 절실하다. 아니, 공공성의 토대 위에 대학교육을 재구성하는 것이 맞다. 그 출발은 재정의 공공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물론 교육재정의 공공성은 따로 떼어서 이룰 수 없다. 교육, 건강, 주거, 복지, 문화 등 마땅히 그래야 할 사회적 활동의 공공성을 회복해 나가는 전사회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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