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교수 인터뷰 (1)
퇴임교수 인터뷰 (1)
  • 대학신문
  • 승인 2003.09.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된 스승이 되고 싶어 - 이상택 교수(인문대ㆍ국어국문학과)

“이제서야 자료를 판독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 생겼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조 대하소설의 작품 해제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며 겸손한 자세를 보이는 이상택 교수(국어국문학과). 이 교수는 “퇴임 후에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문제 의식을 가지고 학문을 정리해 나갈 생각입니다. 또 정작 읽어야 했던 책과 꼭 보고 싶었던 책을 여유를 가지고 읽어나가며 삶의 존재론적 측면을 천착해 나가야죠”라며 학자로서, 삶의 구도자로서의 길을 계속 걸어갈 것임을 밝혔다.


이 교수는 「춘향전 연구」, 「명주보월빙 연구」 등의 논문과 『한국고전소설 연구』 등의 책을 내는 등 고전소설 연구에 매진해 왔다. 68년부터 이화여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해 81년부터 서울대에 재직했으며, 91년에 한국문화연구소 소장과 96년에 규장각 관장을 역임했다.


40여 년 동안 강단에 서온 이 교수는 “제자들이 각 분야에서 자기 몫을 하고 있는 것이 가장 보람됩니다. 지식전달자를 넘어서 참된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며 후학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또 역사나 현 상황을 조급하게 판단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독선적 태도를 경계하고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할 것을 당부했다.  

안현재 기자 nonow2@snu.ac.kr

삶을 위한 학문에 관심 가져주길 - 황동규 교수(인문대ㆍ영어영문학과)

「즐거운 편지」와 「어떤 개인 날」, 「비가」 등의 시로 잘 알려져 있는 황동규 교수(영어영문학과)는 “근 36년 간 정들었던 공간을 떠나지만, 학교는 젊음이 들끓어야 하는 공간이기에 시원하지도 섭섭하지도 않고 담담하다”라고 퇴임소감을 밝혔다.


“여타의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고 학문과 작품 활동에 충실할 수 있었다”며 지난날을 떠올린 황 교수는 하지만, “『대학신문』의 주간으로 재직한 92∼3년은 힘들었기에, 더욱 보람있었다”고 회상했다.


“힘든 일이 나중에 더욱 가치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만 얽매여서 진정한 공부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안타깝다”는 황 교수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서울대 학생들이 삶을 풍성하게 하는 학문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퇴임에 즈음한 요즘 헬레니즘 철학과 관련한 책을 읽고 있다는 황 교수.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힘닿은 데까지 최선을 다해 계속 시를 쓰고, 다시금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며 식지 않은 학문에의 열정을 보였다.                                      

정윤홍 기자 j122333@snu.ac.kr

꾸준한 학자의 삶 이어갈 터 - 한영우 교수(인문대ㆍ국사학과)

군데군데 비어있는 책장이 퇴임 교수의 연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잠시 서가 정리를 멈춘 한영우 교수는 “정든 인문대 교정과 연구실을 떠나는 것이 섭섭하다”며 퇴임의 아쉬움을 표현했다.


서울대 사학과 4학년 시절 4·19를 맞아, 자유로운 사상적 분위기와 민족주의의 열기 속에 그간 묻혀 있던 한국 역사를 연구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의 저서 『다시 찾는 우리 역사』는 4·19세대 역사학자의 대표적 통사로 손꼽히고 있다. 이를 다시 손 봐 9월 중 출간할 예정이며, 영어 판, 러시아 어판도 곧 펴낼 계획이다.


한 교수는 92년부터 4년 간 서울대 규장각 관장으로 재직하면서 의궤(儀軌)의 가치를 발견,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9월내에 의궤를 고증자료로 한 창덕궁, 창경궁의 궁궐사 집필도 마무리해 출간할 예정이다.


스스로를 우공(愚公)과 같은 인물로 평하며 게으르지 않게 연구실을 지킨 꾸준한 학자로 기억되고 싶다는 한 교수. 정년 퇴임 후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역사가 정신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성적 뿐아니라 정신도 일류가 되어야 한다”며 서울대 학생들에게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잊지 않는 그릇이 큰 인재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김남희 기자 candy82@snu.ac.kr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길 - 정종률 교수(자연대ㆍ지구환경과학부)

“고성군 해안가에 해양연구소 건립 등 추진하던 사업이 많았는데 끝을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섭섭한 마음이 앞섭니다.”


정종률 교수는 이렇듯 아쉬움이 묻어나는 퇴임소감을 밝혔다.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해양학을 전공한 정 교수는 30여 년간 해양 연구에 몸담아 왔다. 동해시에 해양연구센터를 건립한 정 교수는, 재직당시 교육부에 해양연구를 위한 투자를 주장하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정부와 국민들이 해양 산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 교수는 “이제 공부 욕심은 없고, 다만 국민들이 바다에 대한 애정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개발하는 데 힘쓸 예정”이라고 퇴임 후 계획을 내비쳤다. “해양연구센터는 경관이 수려해 연구활동 뿐 아니라 학생들의 여름캠프 장소로도 적절하다”고 귀뜸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후학들에게는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즐기며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남겼다.

변진경 기자 alm242@snu.ac.kr

 

서울대를 세게적인 대학으로 - 이기준 교수(공대ㆍ응용화학부)

“서울대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때를 보냈으며, 가장 중요한 일들을 이 곳에서 했다.”

71년 화학공학과의 조교수로 교수생활을 시작해 98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이기준 교수는 그간의 대학생활을 ‘자부심’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러나 “각종 보직을 맡아 학문에 좀더 시간을 투자하지 못했고, 실수했던 것들도 있었다”며 대학을 떠나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전 총장으로서 “다음 총장은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인기보다는 서울대를 세계무대에 올려놓을 업적을 내고 싶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또 “총장이 제대로 대학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임기를 10년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학문적으로 이 교수는 물질의 흐름과 변형에 관한 학문인 ‘유변학(rheology)’을 국내에 처음 도입하고 89년 ‘한국유변학회’를 설립해 초대 부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 유변학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한편 서울대 학생들에게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생운동 등의 활동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며 “서울대 학생들은 결국 우리 사회의 리더이기 때문에 세상을 넓게 보고 리더로서의 소양을 갖추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다슬 기자 xanoc02@snu.ac.kr

Lead! Not follow! - 정기형 교수 (공대ㆍ원자핵공학)

“‘생각하는 사람 만들기’를 평생 직업으로 삼았지만 ‘생각의 실마리’를 만족스럽게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며 퇴임소감을 밝히는 정기형 교수. “다른 대학에 비해 자유를 향유할 수 있어 좋았다”고 교수 생활을 회고했지만 “신임 교수들의 연구 공간 마련이 늦어지는 아쉬움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퇴임 후에도 “연구·개발을 즐기는 사람들과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라며 공부 욕심을 숨기지 않는 정 교수는 1970년부터 서울대 강단에 서 왔고, 75년 실험·물리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줄곧 서울대에 재직해 오다, 99년 이후 천안의 ‘생산기술연구원’을 거쳐 2001년 말부터 현재까지 철원의 ‘물리기술연구소’에서 연구중이다.

         
정 교수는 “특히 이공학부 학생들일수록 폭넓게 책을 읽고 유연하게 생각하라”고 당부하며 사마천의 『사기』 정본, 괴테의 『파우스트』, 까뮈의 『이방인』의 일독을 권했다. 그는 또 “서울대생이라는 기득권에 안주하거나 대중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고 덧붙이며 학생들에게 주도적인 삶을 강조하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Lead! Not follow!”  

이다람 기자 oops03@snu.ac.kr


100년된 거목을 잘 부탁한다 - 남중희 교수(농생대ㆍ생물자원공학부)

“100년 된 거목을 옮기는 일입니다. 잘 살려내십시오.”


남중희 교수는 “농생대가 100년 가까이 거목으로 성장해 왔는데, 이전하게 되면 풍토가 달라져 거목이 죽어버릴 수도 있다”며 농생대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당부했다. “이전 계획이 확정된 이후 농생대에 대한 투자가 없어 지방대 농대보다 뒤쳐졌다”고 말하는 남 교수는 또 “수원 부지만이라도 학교측에서 계속 보존해 농업연구기지로 만들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제사학』, 『견직물』 등의 저서와 함께 「제사공정에서의 silk sericin의 이화학적 변성에 관한 연구」 논문 등을 발표한 남 교수는 38년 간 천연섬유의 한 종류인 실크에 대해 연구해왔다. 그는 “우리나라는 쓸모있는 물건들은 물론, 가치있는 학문, 소재를 보존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실크 신소재로 만들어진 양말을 직접 꺼내보이며 “최근 천연섬유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 중 특히 실크는 공해를 야기하는 합성섬유보다 훨씬 값진 소재”라고 주장했다. 

퇴임 이후 남 교수는 수원 농생대 근처 ‘가림(加林)’이라는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작정이라고 한다. 자신의 호도 ‘가림’이라고 지을까 고민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기창 기자  ratsgo84@snu.ac.kr

배울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람 되길 - 강찬균 교수(미대ㆍ디자인학부)

“앞으로도 서울대 정문 앞을 지날 때마다 기분이 남다를 겁니다.”


강찬균 교수는 75년에 서울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정문을 제작한 주인공이다. 강 교수는 “교문을 만들 철판이 부족해서 공대 공사장에 가서 구해오기도 했다”며 당시의 열악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피렌체 미술학교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강교수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금속공예 유물이 많고, 그걸 국학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는데, 현대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너무 작아 아쉽다”며 “그래도 미개척 분야였던 금속공예를 내가 조금이나마 발전시킨 것 같다”고 뿌듯해 했다. 강교수는 84년 종로2가 보신각종의 재건사업 때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퇴임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강교수는 자신을 개구리로 비유하며 “지금까지 자하연에서 살았지만, 이젠 바다로 나가 헤엄치고 싶다”고 창작과 예술의 세계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강 교수는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후학들에게 조언을 잊지 않았다.

변진경 기자 alm242@snu.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