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울대人(in) 연구회

생물학 진화론, 물리학 복잡계 이론과 사회과학의 학제적 연구로
인간본성과 사회현상 분석뿐 아니라 사회 발전 방향까지 모색

인간의 심성이란 본래 어떤 것일까. 선악의 낡은 구도를 넘어 새로운 인간본성 연구를 지향하는 이들이 있다.

인간본성연구회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성과를 결합해 인간과 사회의 본성에 대한 통섭적 연구를 진행해 왔다. 다양한 분야의 참여자들은 인간을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생물학적·사회문화적 존재’로 인식한다. 오현미 연구원(사회과학연구원)은 “인간의 본성을 단순히 ‘선하다’ 또는 ‘악하다’로 말하는 것은 홉스, 루소 등 철학자의 주관적 통찰에 근거한 것”이라며 “현대 생물학의 발전과 학제적 연구 덕분에 철학의 전유물이던 인간 본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생물학을 심리학에 접목한 진화심리학은 연구회의 이론적 분석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기존의 백지 가설은 인간에게 결정된 본성이 없어 사회화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달라진다고 주장하지만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 본성을 설명하는 보편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박순영 교수(인류학과)는 “인간의 마음은 오랜 진화를 거치며 ‘디자인(design)’된 것”이라고 말한다. 진화과정에서 수렵·채집·짝짓기 등 생존과 자손 번식을 위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인간의 본성이 특정한 정보 처리 기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이 단맛을 선호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단지 ‘맛있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다. 박순영 교수는 “현대의 인간은 영양분이 풍부한 단 열매를 채집하여 생존해온 인류의 후손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단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연구회는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자연과학의 성과를 이용해 인간과 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통섭을 시도한다. 지난 8월 ‘이진경’이란 필명으로 알려진 박태호 교수(서울산업대 기초교육학부)의 발제를 통해 생물학과 코뮨주의를 논의한 워크숍이 대표적인 예다. 인간을 ‘이타적’으로 규정하는 진보이론이 유효한지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현대 생물학 연구에 의해 인간은 생존에 유리한 ‘협동’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이타적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워크숍에 참가한 오현미 연구원은 “이타적 행동의 발현 조건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통해 다시 마르크스가 언급한 ‘노동의 협업’이 어떤 조건에서 잘 나타나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리학의 복잡계 이론을 인간본성 연구에 원용한 시도 역시 통섭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우희종 교수(수의학과)는 “복잡계에 존재하는 ‘창발현상(emergence)’이 인간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창발현상이란 개별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생명 현상과 질서로 창출되는 것을 말한다. 새롭게 생성된 질서는 다시 개별 현상의 주체에 영향을 미쳐 또다른 패턴을 형성하는데 이 패턴을 활성화시키는 요인이 ‘양성 피드백(positive feedback)’이다. 연구회를 주도해 온 김세균 교수(정치외교학부)는 “군중 행동은 서로 무관한 사람들이 결집해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 내는 창발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복잡계 이론은 거리응원, 촛불시위 등 창발적 집단 행위를 설명하는 데 광범위하게 적용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월드컵 시즌 한국팀의 선전은 거리응원 인파 증가를 촉진했으며,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촛불 시위 당시 군중을 탄압한 정부의 조치는 시위를 더욱 과격하게 했다는 점에서 각각 창발현상을 증폭시킨 양성피드백이다.

학제적 연구와 여러 학문에 대한 개방적 시각을 견지해온 연구회의 최종 도착지는 단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아니다. 오현미 연구원은 “사회란 결국 인간의 모임이므로 인간본성 연구를 통해 사회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까지 모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그들의 야심찬 통섭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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