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유다예 기자 dada@snu.kr
대문을 열자마자 만나는 곳, 어디를 가도 거쳐야 하는 곳, 주택과 상점들이 나란히 서 있는 곳, 거리. 거리는 도시와 공동체의 본원적인 공간이다. 거리를 아름답고 쾌적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항상 존재했고 최근 그 노력이 ‘특화거리’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조성되는 특화거리의 상당수가 해당 지역의 특색을 살리지 못한 채 단순히 도로를 정비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고 일부는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름 따로, 거리 따로인 전국 팔도 특화거리의 문제점을 짚어보자.

지자체의 특화거리 바람
무엇을 위한 특화거리?

지역 문화가 숨 쉬는 특화거리는 마을과 거리의 재생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몇 지자체들의 ‘특화’ 없는 특화거리 사업은 지역의 독특한 거리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다른 특화거리들의 노력을 무색케 만들고 있다.

최근 조성된 수많은 특화거리들은 거창한 이름에 걸맞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필리핀, 태국, 베트남 음식 등을 파는 외국인 관광코스를 목표로 올해 4월 완공된 종로구 낙원동의 ‘다문화 거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외국음식을 준비한다는 것도 선뜻 납득이 가진 않지만, 다른 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떡볶이나 순대를 파는 노점상으로 가득한 거리를 둘러보면 거리의 이름이 진정 ‘다문화 거리’인지 의심스러워진다. PC방을 찾기 위해 잠시 다문화 거리에 들렀다는 영국인 로사 아담씨는 “사실 이 거리에선 어떤 것을 특화한 흔적이 보이지 않아 이곳이 다문화 특화거리인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특화거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인천시는 그동안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중구 인현동, 연수구 옥련동 등 시내 6곳을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해왔다. 차량 통행을 줄이고 탄소배출을 감소시켜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차량을 통제할 시설물이나 관리 인력이 부족해 차 없는 거리엔 여전히 차들이 마음껏 드나들고 있다. 불법 주차 차량까지 거리에 늘어서 있어 ‘차 없는 거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한편 전라남도 영광군에서는 전국 3대 태양초 시장의 명성을 되살린다는 목적으로 조성한 ‘고추 특화거리’가고추 상인들과 농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고추 특화거리에는 주차장과 조명, 비가림 시설 등이 모두 갖춰져 있지만 기존의 5일장에 더 친숙한 상인들과 농민들이 5일장에만 물건을 내놓고 있어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이 특화거리는 고사위기에 처해있다.

한편 특화하려는 대상 자체가 없는 특화거리도 있다. 성동구 독서당 특화의 거리나 부산 서면의 특화거리는 ‘젊음의 거리’, ‘문화의 거리’ 등 그럴듯한 명칭만 달아놓은 채 조형물 설치, 도로 정비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울상짓는 상인들, 내몰리는 주민들
누구를 위한 특화거리?

특화거리 조성 사업으로 인해 오히려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낙원동 ‘다문화 거리 ’는 종로 3가에 있던 노점상들을 이전시켜 인위적으로 조성한 거리다. 그런데 원래 낙원동 거리는 먹거리를 파는 상점이 많던 곳이라 노점상들이 들어온 후 상권 경쟁이 심화되고 매출이 급감해 새로 이주한 노점상들과 기존 상인들 간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낙원동 거리로 옮겨와 도넛 장사를 하는 한 노점상은 “좁은 지역에 점포만 많아진 꼴이라 기존 상점, 노점들이 장사를 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노점상 중에는 아예 장사를 포기한 사람도 생겼다”고 한숨을 쉬었다.

올해 4월 초에 개장한 ‘화훼·묘목 특화거리’ 역시 기존 종로5가 화훼거리를 종로구 양사길로 이전해 조성한 곳이다. 종로5가 화훼거리는 양재동 화훼단지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화훼거리였다. 그러나 양사길 특화거리로 이전한 후 급감한 매출 때문에 상인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화훼·묘목거리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현정씨는 “대로변에서 장사할 때보다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며 “옮겨온 골목은 원래 유동인구가 적은 구석진 곳이라 장사가 잘 될 리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거리를 찾는 손님들의 불만도 늘었다. 30년째 종로5가 화훼거리의 단골이었다는 송정자씨는 “이렇게 좁은 골목에 꽃집들이 위치해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기도 어렵고 차를 댈 수도 없어 불편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거리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종로5가의 화훼거리가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아예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며 화훼거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올해 2월부터 빈집과 골목에 문화 공간 조성 사업을 진행해 온 부산시 감천2동의 태극도 마을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파스텔 톤의 자그마한 집들이 열을 짓고 있는 태극도 마을은 ‘한국의 산토리니’라 불리며 많은 외지인들이 찾던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한 특화거리 조성 사업이 시행된 후 지역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주민의 99%가 무허가 주택에 살고 있는 이곳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무허가 주택에 대한 단속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주민 윤정중씨는 “지금까지 무허가라도 어쨌든 각자의 집을 갖고 살아왔는데 최근 특화거리 사업으로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 관청에서 단속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태극도 마을에서 44년간 살아온 한 아주머니 역시 “벽화를 그린다든지 예술품을 놓는 것이 보기는 좋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마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공미술 사업 홍보로 인해 관광객이 많아져 거리에 쓰레기가 많아지고 집 사진을 허락 없이 찍어가는 등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특화거리에 특화가 없는 이유

이처럼 특화거리에 ‘특화’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특화거리 사업이 특화된 거리문화를 만드는 것보다 다른 목적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낙원상가연합회 박상석 회장은 “종로구 다문화 거리는 대로변에 있던 노점상들을 골목으로 밀어넣기 위해 조성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골목을 조성한 이후 종로구청에서 어떠한 홍보나 관리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의 장금석 차장 역시 “최근 조성된 인천시청 앞 ‘차 없는 거리’는 주민들의 보행권과 친환경을 위해 조성됐다기보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공약”이라고 비판했다. 지역의 특성과 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없이 정치적 목적을 앞세워 추진된 특화거리 사업은 정책 자체의 진정성도, 특화를 위한 전문성도 결여돼 알맹이 없는 특화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거리를 특화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된 정책이 특화 없는 특화거리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박상석 회장은 “지난해 다문화 거리 사업 설명회에서 절대다수의 상인들이 이 사업을 반대했지만 서울시는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기 식 정책을 펼쳤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종로구가 낙원동 상가 주민들의 동의를 구한 적도, 여론조사를 실시한 적도 없었을 뿐더러 설명회에서 제시했던 상설공연장 설치나 지역주민들의 복지·권리 향상을 위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렇게 특화 없는 특화거리들이 늘어가는 상황에 대해 권영걸 교수(디자인학부)는 “각 지역들은 특산품, 신화, 전설, 노래 등 지역을 활성화 할 수 있는 소재를 갖고 있다”며 “지역 특성을 가장 잘 아는 해당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돼 각 지역의 문화가 담긴 거리를 특화할 때 진정한 특화가 완성될 것”이라 말했다. 이정원 연구원(건설환경종합연구소)은 “특화거리라는 명칭을 붙이고 과도한 물리적 개입을 하는 것은 거리의 역사와 기억 자체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근래에 전국 곳곳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각종 특화거리가 과연 무엇에 대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화거리 사업이 점차 번져가는 가운데 특화거리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거리 조성을 경계하고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각 지역의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진정한 특화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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