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라우렌티우스(225~258, St. Laurentius)는 로마의 일곱 부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로 동료 부제 4명과 함께 순교했다. 그는 교회의 재산 관리, 구호품 분배 등을 맡아 봤는데, 박해 당시 로마 총독이 교회의 재물을 내놓으라고 명령하자 이에 불복하고 모든 재산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총독의 병사들이 재산을 압류하러 오자 성자는 불쌍한 이들을 내세워 “이들이 교회의 보물”이라며 거둬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격분한 총독은 불타고 있는 장작더미 위에 석쇠를 얹고 성자를 그 위에 구워 죽이도록 했다. 이런 연유로 성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숭배돼 왔는데 좀 끔찍하게도 도살업자와 요리사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고난스러운 막장생활을 하는 가톨릭 세계의 광부들도 이 성자를 수호성인으로 삼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칠레 광부 구조 작전명이 성자의 스페인어 발음인 ‘산 로렌조’였다. 33명의 광부들 모두 무사히 구조돼 전 세계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매몰 당시 이들이 캐던 광석은 구리였다. 칠레 하면 와인, 홍어 등이 떠올랐는데, 사실 칠레 경제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구리라는 것을 이번 사건을 통해 알게 됐다. 세계에서 구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 칠레이며 세계 구리 소비량의 35% 이상을 공급한다고 한다. 구리가 2009년 칠레 수출의 49.4%를 차지한다니, 칠레의 젖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리가 칠레인에게 마냥 축복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중반까지 칠레 광산업은 외국자본이 지배하고 있어서 많은 이익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70년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아옌데 대통령은 구리광산과 은행 등을 국유화하는 경제개혁에 나섰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수호신인 미국은 자신의 뒷마당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미국은 창고에 있던 구리를 있는대로 풀어 ‘칠레의 월급’이라 불리던 구리의 국제가격을 떨어뜨렸다. 결국 아옌데의 개혁정책과 뒤이은 혼란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 장군에게 쿠데타 명분을 제공했다. 1973년 9월 11일 폭격과 화염에 휩싸인 대통령궁에서 아옌데는 비장한 최후를 맞이했으며 이후 들어선 군부독재 정권은 무자비한 폭압통치를 통해 시민사회의 저항을 잠재웠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제3세계의 광물자원을 노리는 투기자본의 횡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전 세계적으로 고조되는 자원전쟁이 더해져 환경파괴와 인명손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웃나라인 중국에서는 지난해 탄광사고로 4,7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난방이 돌아간다. 칠레 광부 사건을 계기로 인류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순교의 길을 떠난 모든 이들을 추도한다.


장준영 간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