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오방색이 화면 밖으로 터져 나오는 듯한 작품 ‘축제’ 시리즈로 유명한 서양화가 이두식. 현재 홍익대 미술대학 학장이자 2010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미술계의 ‘주류’에 속하는 그는 동시에 젊은 시절 이발소 그림, 간판화를 그렸던 미술계 변방의 인물이기도 하다.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 서있는 그가 말하는 미술계의 변방을 들어본다.

젊은 시절 풍경화나 정물화 등을 대량생산해 수출한 일명 ‘이발소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고 들었다. 이발소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큰 아이가 태어났을 즈음에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아버지까지 한 달 만에 어머니를 따르셨다. 이렇게 ‘줄초상’이 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니 돌도 안 된 아들이 급성 폐렴으로 몸이 불덩이 같았다. 입원 보증금이 있어야 입원을 시킬 수 있었는데 주머니엔 말 그대로 땡전 한 푼도 없었다. 막노동이라도 해서 돈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광화문으로 나섰다가 고등학교 선배를 만났다. 그런데 마침 그 분이 수출화, 일명 ‘이발소 그림’을 그려 일본에 수출하는 회사의 사장이었다. 월급 7만원을 받아들고 시작했던 것이 계기였다.

당시엔 이발소 그림이 꽤 번성했을 시기인데 이발소 그림과 이를 그리는 화가를 보는 시선은 어떠했나?

지금은 몇 안 되는 화가들이 삼각지에 모여 있지만 옛날에는 북창동, 광화문, 홍원동 등 여기저기에 화가들이 많이 있었다. 숙련된 화공이라면 월 5만원은 벌 수 있었는데 1970년도 기준으로 봤을 때 괜찮은 수입이었다. 그래서 돈 없는 화가들은 이발소 그림을 많이 그렸다. 사실 대중들은 이발소 그림을 매우 좋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반인들은 이발소 그림을 잘 그린 그림이라 생각해주고 좋아한다. 하지만 주류 미술계의 시선은 좋지 않았다. 당시에도 이발소 그림은 ‘저급회화’였다, ‘상업화’라며 비판받기 일쑤였고 소위 ‘주류’로 편입된 많은 화가들은 자신이 이발소 그림을 그렸던 경험을 숨기며 부끄러워하는 일도 많았다.

이발소 그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비싼 미술, 무게 잡는 미술만이 예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단순히 대중적인 그림이라서 예술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고 본다. 이는 주류 화가들의 작품이 아니고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발소 미술의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옛날의 민화 역시 손재주 있는 상민들이 그리던 그림으로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현재에는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예술이냐의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보통 일반인들은 예술계에서 추상회화다, 미디어아트다 떠들어도 그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그들에겐 이발소 그림이 더 친근하고 좋아 보일 수 있다. 추상회화는 추상회화대로, 이발소 그림은 이발소 그림대로, 모든 미술은 존재의 가치가 있다.

미술계 변방의 경험이 현재 화가로 생활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내 그림 인생에서 이발소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 결코 허송세월을 보내던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에 대여섯 점씩 이발소 그림을 그려내면서 순발력과 화면의 구도를 잡아내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붓을 잡으면 순식간에 그림을 그려내는 ‘직관적인 터치’를 갖게 된 것도 이발소 그림을 그리면서부터다. 또 이렇게 갖춘 ‘기본기’를 통해 작품에 나만의 색깔을 담아낼 수 있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많은 대가들은 다른 대가의 작품을 베끼는 것으로부터 그림을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고흐는 짧은 생애 동안 많은 양의 그림을 그렸고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자신의 방법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명화를 남기기도 했다. 작가는 그것이 모작이든 이발소 그림이든 많은 작품을 그려보고 연습해야 자신의 색깔을 찾는 데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진짜 예술은 이러한 고통과 더불어 번민하는 과정을 통해 잉태되고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발소 그림, 간판화 등을 그리며 보낸 긴 노력의 시간은 예술을 해나가는 원동력이 돼주었다.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으로서 삼각지 미술, 길거리 화가 등 변방의 미술과 주류 미술계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들의 그림은 대중과 대중의 현실을 그린 그림이다. 미술은 특수층의 전유물이 아니기에 이들을 폄하하고 그 발전을 한계지어서는 안 된다. 현대미술가 중 키스 해링이라는 사람은 원래 그래피티를 하던 거리 미술가였는데 앤디 워홀이 발탁해 전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주류 미술계는 미술계의 변방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배척하려고만 해서는 안된다. 개인적으로 나도 이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 앤디워홀이 키스 해링을 발탁했듯 나 또한 그들에게서 가능성을 찾아내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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