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새벽 1시 30분경 시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어느 대학강사와 대학생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들이 저지른 ‘범행’은 G20 홍보 포스터에 검은색 스프레이로 쥐를 그려넣은 것이었다. 죄명은 ‘재물손괴’. 홍보 목적으로 만든 설치물 위에 다른 그림을 덧대어 본래의 홍보 메시지를 수정해 놓았으니 이들의 행동은 보기에 따라 재물손괴이며 불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이 낙서를 불법이라고 판정한 경찰의 대처도 이해할 수 없는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경찰이 경찰의 할 일을 했듯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기로 하자. 공짜로 제공된 이 그래피티 작품을 예술로서 향유하는 일 말이다. 작가가 직접 밝힌 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를 참조한다면 여기서의 핵심은 말놀이다. G20라는 기호가 넘쳐나는 담론의 서판 위에 ‘G’를 변형한 기호 ‘쥐’를 병치시켜 놓은 것이 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쥐’라는 동물이 연상시키는 어떤 의미가 아니라 그저 유사한 발음의 말들을 늘어놓는 말놀이의 유쾌함이다. 가장 아름다운 영어 문장 소설로 손꼽히는 『롤리타』의 첫 구절,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이 보여주는 경쾌한 리듬 역시 유사한 발음의 말들을 늘어놓는 말놀이에서 탄생한다. 뛰어난 예술 감상자들은 쥐그림의 말놀이를 이어 받아 곧바로 소녀시대의 <Gee>라는 기호까지 그 옆에 세워놓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감상자들은 이러한 가벼운 말놀이에서 훨씬 더 진지한 의미를 읽어내기도 했다. 예컨대 이 작품에서 정부 행사를 방해하려는 조직적이고도 계획적인 범행의 기미를 발견하고 그래피티 작가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경찰과 검찰. 쥐라는 동물이 뻔뻔스러움과 탐욕스러움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감상법에 나름의 근거가 없지 않겠지만, 이 지나치게 심각한 감상이 망상증 환자의 심리상태와 비슷해져 버렸다는 점을 강조해보면 어떨까.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이런 행위를 했는지 또 좌파 단체에 소속돼 있는지 등을 조사하는 검찰과 경찰의 태도에는 있지도 않은 음모에 박해받고 있다고 상상하는 망상증 환자의 심리와 유사한 면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결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망상증 환자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결함이 외부의 사악한 의도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고 상상하면서 어떤 결함이 자신에게 내속돼 있다는 사실을 회피하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함을 직시하면서 그것과 대결할 기회를 언제나 놓쳐버린다. 우리 권력기관의 무의식이 망상증 환자와 닮아 사악한 의도를 가진 외부 세력을 찾아내고 처벌하기에 골몰하면서 자신의 결함에 대해서는 한사코 회피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권희철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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