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화 교수

농경제사회학부
얼마 전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에는 “한국에서의 성 차익거래(gender arbitrage)”라는 사뭇 도발적인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내용인 즉, 한국 기업들은 성차별적 관행으로 인해 고학력 여성들이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는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외국계 다국적기업들이 이들 저평가된 여성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경제적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통계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성차별을 노동시장 진입 이전과 진입 이후로 나눠보면 노동시장 진입 이전 단계에서의 차별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자녀에 대한 교육투자에 있어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학업성취도 면에서도 여성이 전혀 뒤지지 않는다. 신규 대학졸업자의 절반이 여성이고, 석사학위 취득자의 절반도 여성이다. 박사학위 취득자 중 여성 비율은 30% 정도이나 꾸준히 늘고 있다. 전공분야별로도 공학계열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고루 분포돼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의 상황은 이와 상당히 다르다. 대학졸업자의 취업률에서는 성별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으나, 정규직 취업률이나 대기업 취업률에 있어서는 성별 격차가 여전히 크다. 노동시장 진입 이후 관리직 비율이나 평균임금 수준을 비교해보면 여성이 기업에서 자리를 잡기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기업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기업이 여성 고용을 꺼리는 이유로 흔히 지적되는 것이 여성 고용에 따르는 추가비용이다.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출산과 자녀양육을 이유로 직장을 중도에 그만 두고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기간 중에 기업이 비용을 일부 부담하거나 대체인력을 고용해야 하는 등 여성을 고용하면 추가비용이 소요된다. 여성이 전문지식이나 어학능력 등은 뛰어난데 소위 근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이 직면하는 이런 문제들이 외국계 기업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외국계 기업이 한국의 고학력 여성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이러한 잠재적인 비용에도 불구하고 여성인력의 활용이 기업에 이익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지적한 여성의 경력단절은 기업이 여성을 꺼리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이 가정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기업조직이나 사회시스템이 미흡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기도 하다. 기업의 조직문화나 인사관리 시스템에 따라 여성 고용이 비용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고 이익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 대학의 게리 베커(Gary Becker) 교수의 말에 의하면 기업이 생산성과 무관하게 특정 근로자 집단을 차별할 경우 기업은 그로 인해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성차별 기업은 차별을 하지 않는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으며 기업 간 경쟁이 심해질수록 차별기업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더욱이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지속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인력의 활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부각되고 있다.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여성 고용에 수반되는 당장의 비용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언제까지나 남 좋은 일만 시켜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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