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기준 없는 사업자 공모전, 자본 논리 집중된 예산안 문제 등 파행 거듭해 온 영진위
정치적 편향성 둘러싼 논란 딛고 다양성과 문화적 의미 존중하는 영화계 기구로 변화해야

지난 8일(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2010년도 상반기 독립영화제작지원 사업 심사 등과 관련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을 위반했다”는 사유로 조희문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위원장을 해임했다. 강한섭 전 위원장 사퇴에 이어 현 정권에서 두 번이나 위원장이 중도하차한 것이다. 잇따른 위원장의 하차와 더불어 불거진 공모전 편파 심사 논란과 색깔 논쟁으로 얼룩진 영진위는 현재 영화계에서 벌어지는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기준 없고 편파적인 심사, 영진위 공모전 논란

영진위는 지난 1월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 공모(독립영화전용관 공모) 당시부터 심사의 공정성 문제로 영화계의 비판을 받아왔다. 독립영화전용관 공모 1차 심사에서 3위에 머물렀던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한다협)가 2차 심사에서는 경쟁단체였던 인디포럼작가회의보다 낮은 자체 자금 조달능력과 인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대학신문』 3월 1일 자) 이에 「워낭소리」(2008)의 이충렬 감독, 「똥파리」(2008)의 양익준 감독 등 155명의 영화감독은 자신들의 작품을 한다협이 운영하는 독립영화관 시네마루에 상영하지 않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영진위의 편파적 심사는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영진위에서 주최한 마스터영화제작지원사업 공모전(마스터영화 공모전) 역시 두 해에 걸쳐 유사한 문제가 반복돼 공모전 심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작년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이자 지난달 29일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시」에 0점을 줘 논란이 된 이 공모전은 올해 다시 의혹을 샀다. 심사위원들이 제작지원 작품으로 뽑은 이장호 감독의 「GEV(God's Eye View)」와 김학순 감독의 「연평해전」을 영진위가 명확한 사유도 밝히지 않은 채 사업 탈락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두 감독은 현재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로 영진위에 대한 영화계의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18일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마스터영화 공모전에서 1차 공모에 참여했던 문화미래포럼의 회원이 2차 심사를 보는 등 심사위원 구성에서부터 결함을 보였다”며 “공모전 시스템에 납득할 만한 객관적인 심사 기준과 원칙이 부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공모전 심사의 공정성 논란에 대해 영화계 일각에서는 그 근본 원인이 구체적 심사 기준이 없고 그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폐쇄적 공모심사 시스템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영화제 지원금 공모의 1, 2차 실무 심사를 통과했으나 이 후 영진위 측의 일방적 통보를 받고 탈락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가 김일숙씨는 “영진위에 정보공개를 요청했으나 영진위 측이 ‘공개할 수 있는 심사 기록이나 회의록 문건조차 없다’고 답해 구체적 사유를 듣지 못했다”며 “영진위가 공모전 심사에 공정한 절차와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대학신문』은 영진위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영진위는 답변을 거부했다.

지원 감축에 허덕이는 독립영화계

한편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영진위의 ‘2011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에 대해 반발하며 지난 7월 30일부터 두달여간 ‘문화체육관광부의 독립영화 죽이기 중단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예산안 중 다양성 영화 지원액 총액은 작년 대비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지원 방식이 영화 제작비에 대한 직접 지원 방식에서 인건비나 장비대여료를 보조하는 간접 지원 방식으로 변경돼 실질적 지원금은 삭감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초기 제작 단계부터 지원되던 독립영화제작지원금(7억원)과 예술영화제작지원금(32억5천만원)이 전액 폐지돼 영화인들의 독립영화제작은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는 “독립예술영화계 사람들은 영화 제작을 시작할 기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초기제작 단계에 직접 지원이 있어야 스태프의 인건비나 장비대여도 가능한 데 지금의 정책은 선후관계가 잘못돼 있다”고 영진위의 실효성 없는 정책을 비판했다.

작년부터 삭감돼 온 국제영화지원금은 올해 총 7억원이 줄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등 6개 국제영화제에 대한 예산 지원도 모두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들 영화제는 길게는 10여년동안 열려 왔으며 영화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제들에 대한 지원이 삭감되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영진위가 영화를 자본의 논리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실제로 조희문 전 위원장은 해임 직전 한 방송에서 영화의 수익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또 영진위는 1년 단위로 영화제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며 해마다 열린 영화제들의 가시적 성과를 평가하고 있다. 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이었던 공공미디어연구소 임순혜 이사는 “6개 영화제는 모두 10여년동안 차츰 자리를 잡아온 의미 있는 영화제이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이 삭감된 것은 영화제 자체의 질적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 해당 영화제가 상업적 기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수익성 높은 영화제에만 지원을 편중하려는 영진위의 결정은 영화를 경제적 가치로만 환원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영진위를 둘러싼 정치성 논란

해를 거듭할수록 색깔 논쟁, 코드 논란으로 얼룩져가는 영화계는 영진위의 파행적 운영 속에서 서서히 곪아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영진위를 둘러싼 정치성 논란을 지적하고 있다. 작년 말 인권운동사랑방의 ‘제13회 인권영화제’와 인디포럼의 ‘인디포럼2009’,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제13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가 공모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 영진위는 납득할 만한 사유를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김일숙씨는 “영진위는 심사 전 탈락한 단체들에 촛불 집회 참여 유무를 조사했다”며 “실질적인 탈락 이유는 ‘불법시위에 참여한 단체’인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동자뉴스제작단 박정미 프로듀서 역시 “영진위가 영화계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며 영화인들의 자유로운 정치 활동을 막고 있다”고 비판을 가했다.

한편 지난 3일(수) 막을 내린 ‘서울 G20 정상회의 성공기원 영화대축제’에서는 개막을 3일 앞두고 일부 작품들이 상영목록에서 제외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상영 예정 영화 중 「반두비」(2009), 「은하 해방전선」(2007) 등 일부 영화의 감독과 영화사들이 자신들의 영화가 G20를 홍보하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영화제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행사를 주최한 한다협은 “일부 감독과 영화사들이 영화제에 정치적 의도를 부여하며 말도 안 되는 논쟁을 하려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신동일 영화감독은 “다양성을 추구해야하는 독립영화전문관이 정부의 행사를 홍보하는 데 나서는 것 자체가 정치성을 더 드러내는 행동”이라며 한다협을 비판했다. 이후 한다협에서 운영하는 시네마루의 공식 블로그에는 “정치 도구화된 변질된 물건은 상영하지 않겠다”는 공지가 오르고 감독들은 반대 성명을 내는 등 팽팽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최근 독립영화계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경계도시2」(2009), 「송환」(김동환), 「땅의 여자」(2009) 등 주목받는 작품들을 내며 활기를 띠어가고 있다. 대중영화계 역시 각종 해외영화제 수상 등 좋은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육성하고 지원해야 할 영진위는 이러한 활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사무국의 활동가 오재환씨는 “영진위가 영화의 문화적 특성들을 경제 논리로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유감스럽다”며 “각종 불명예스러운 논란과 함께 위원장이 공석으로 남은 만큼 위원회의 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할 것”이라며 영진위에 일침을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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