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과제

“통진당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있다.” 지난해 12월 헌재가 통진당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정당 해산을 둘러싼 의견 대립은 팽팽했다. 판결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역사적 결정”이라고 평가한 반면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선 “헌재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해산시켰다”는 거센 반발이 일었다. 일각에선 이번 판결로 국가가 사상과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이념논리에 따라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은 논쟁거리는 헌법재판소 밖의 사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에 비교해 헌법재판관들이 8:1의 압도적 찬성으로 정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논란의 중심에 우뚝 선 헌재=기본권을 보호하고 기본권 간의 충돌을 조율하는 최종 기준을 제시해야 할 헌재가 도리어 사회적 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한 헌재의 합헌 판결이 대표적이다. 2004년 대법원과 헌재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대신 대체복무제를 실시해 사회적 활동에 참가시킬 것을 행정부와 입법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헌재는 정작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의 위헌법률심판에서 “양심의 자유는 국가공동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양심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하는 권리”라며 합헌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이제껏 단 한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교사의 정치적 의견 표명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헌재는 설득력 있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해 8월 헌재는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제3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2009년 국정쇄신, 경쟁 만능 학교정책 중단 등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한 전교조 간부 및 교사 88명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검찰에 고발하고, 중징계 처분을 내린 것이 계기가 됐다. 헌재는 교사들의 정치적 의견표명이 “정치적 중립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교육현장 밖에서 이루어진 시국선언에 대해 “학생들의 인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며 합헌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정태호 교수(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는 “OECD 국가 중 교사가 정당에 가입하고 정치자금 기부도 못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대표적인 기본권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에 헌재가 올바른 대처를 못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헌재는 지난해 8월 용산참사 철거민과 쌍용차 노조원의 DNA 채취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려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헌재는 흉악범죄자를 신속히 검거하기 위해 제정된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제정 의도를 무시하고 노동자들의 시위나 집회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법률이 악용될 여지를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문제의 원인은 획일화된 헌법재판관 구성=헌재의 결정을 둘러싼 논란은 헌법재판관들의 획일화된 구성에서 비롯한다. 국회에서 다수의 지배에 의해 법이 제정될 때 배제되기 쉬운 소수자들의 이익이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헌재의 역할이다. 하지만 헌법재판관의 구성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생각을 고려하지 못해 소수자들의 이익이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이 다양한 가치와 생각을 담아내야 하는 이유는 헌법 자체가 갖는 추상성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은 민․형법에 비해 수도 적고 추상성이 강해 해석에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관도 예외는 아니다. 헌법재판관의 인적 구성이 획일화되면 헌법을 해석할 때 특정 집단의 입장이나 가치만 과다하게 반영될 우려가 크다. 통진당 해산에 대한 헌재의 판결문 속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단어가 대표적인 예시다.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해 그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재화 사법위원회 위원장은 “다원주의가 민주주의의 핵심이지만 이번 판결은 반공주의가 민주주의라는 인식에 기초한 판단”이라며 “지금의 헌법재판관들은 유신 시대에 헌법을 공부한 사람들이고 공안검사 출신의 헌법재판관 2명이 포함돼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헌법재판관에게 요구되는 자격요건은 헌법재판관의 획일적인 구성을 부추긴다. 우리나라에서 헌법재판관이 되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법 제5조에 따라 40세 이상이어야 하고, 변호사 자격을 갖추고, 15년 이상 판사 등의 직에 종사한 경력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헌법재판관의 대부분은 50대 중후반의 고위직 판검사 출신이다. 전종익 교수(법학대학원)는 “법관 출신의 헌법재판관들은 업무나 발탁 경로의 특성상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라며 “역사적으로 헌재의 구성원 중 다수가 보수가 아닌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폐쇄적인 자격요건은 1987년 헌법이 제정될 때 사회적 가치에 대한 성찰의 부재가 만들어낸 결과다. 6월 항쟁 이후 짧은 시간 내에 헌법을 제정하다 보니 헌법 해석의 전문성 외에 여성,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 보호 등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다양한 가치에 대해 지혜를 충분히 모을 수 없었던 것이다.

법관의 관료화가 헌법재판관들의 획일성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 일반 법관들의 임명이 대법원장의 손에 달려있는 구조 속에서 법관들은 처음 법관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의 입장과 상충되는 판례를 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정태호 교수는 “소위 튀는 판결을 하는 법관들은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법관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순치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법조계의 승진 계단을 밟아온 법관들이 헌법재판관의 위치에 올랐을 때, 헌법적 가치를 위배한다고 의심되는 법률이 있더라도 법적 안정성을 뒤로 하고 위헌 판결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자격요건 완화로 헌법재판관의 인적 구성 다양해져야=결국 헌재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다양한 세력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을 골고루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치적 성향과 직업적 배경은 물론 성별과 나이 또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화 변호사는 “헌재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하는 역할도 하는 만큼 그 구성에 있어서도 사회의 구성만큼 다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는 헌재의 이상적 형태로 꼽힌다. 두 개의 재판부로 나뉜 재판소는 각각 8명의 헌법재판관, 총 16명으로 이뤄진다. 최소 법관의 자격을 갖춰야 후보가 될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법관 출신을 한 재판부에 최대 3명씩, 총 6명까지만 허용한다. 임지붕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독일의 헌재는 오히려 법관의 숫자를 제한해 법원, 검찰 밖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구조”라며 “공법학 교수 출신 재판관들이 많아 수준 높은 판결을 이뤄낸다”고 평가했다. 또 독일에서는 16명의 헌법재판관 모두 의회에서 2/3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선출된다. 여당이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할 경우를 대비해 적어도 여야가 합의해야 헌법재판관 선출이 가능하게끔 최소 기준을 2/3로 설정한 것이다. 정태호 교수는 “제1당 단독으로 헌법재판관을 뽑지 못하도록 해 헌법재판관 후보에 극단적으로 편향된 이들을 배제할 수 있어 소수자 보호에 보다 용이해진다”고 전했다.

현실적 대안으로 전문가들은 변호사 출신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할 것을 촉구했다. 변호사는 헌법재판관이 되기 위한 자격요건에 엄연히 부합하지만 관행적으로 헌법재판관 자리는 고위직 판·검사들에게 돌아갔다. 노동, 인권 등 활동 범위가 넓고 경력이 많은 변호사를 임명하면 헌법재판관 구성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헌법재판관 구성을 다양화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헌법재판관 자격요건에서 법관 출신 요건을 삭제하거나 법관 출신의 숫자를 제한해야 한다. 임지붕 교수는 “헌재에서 다루는 헌법적 분쟁이 정치적, 사회적 분쟁이니만큼 정치학자나 사회학자, 시민운동가들, 행정부 관료 출신들도 후보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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