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작은 목소리가 담긴 잡지들 - ② 장애인 잡지 「함께걸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불균등은 곧 담론의 불균등을 낳는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발언권은 충분하게 실현되는 반면, 사회적 약자는 이보다 훨씬 적은 발언 기회를 갖게되기 쉽다. 다수가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인식만이 사회에서 통용된다면 이들의 작은 목소리들은 점점 더 묻히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부터 제도권 밖의 다양한 담론의 유통을 위해 노력해온 잡지들이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소수자의 시선, 다양한 삶의 모습, 그들에 관한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작은 목소리를 담아내온 우리 시대의 잡지들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② 장애인 잡지 「함께걸음」

 

지난 4월 한 SNS에서 40대 여성이 버스 안에서 70대 할머니의 뺨을 때리는 동영상이 게시돼 논란을 일으켰다. 인터넷 여론은 거침없는 욕설을 섞어 ‘청주 버스 폭행녀’를 비난했다. 가해자를 막아선 한 여성에게는 ‘사탕녀’라는 달콤한 별명과 함께 ‘얼굴도 예쁘다’며 칭찬이 쏟아졌다. 경찰은 부랴부랴 가해 여성을 구속했고, 언론은 네티즌이 이끄는 단죄의 진행 상황을 연이어 보도했다. 이어 구속된 여성이 정신장애 3급으로 ‘양극성 정동장애’를 앓고 있음이 밝혀졌지만, 법원은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네티즌 사이에선 형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하지만 오랜 세월 장애계를 대변해온 월간 잡지 「함께걸음」은 다른 관점의 기사를 내놓았다. 기사는 피고인의 행위가 정신 장애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행동 교정을 위해 가해자를 교도소로 보내겠다는 판결에 대해 교정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또 가해 여성에게 약을 챙겨줄 가족이 아무도 없었음에도 그녀를 돌보지 않은 채 내버려둔 제도적 문제를 지적했다.

▲ 「함께걸음」은 독자가 편히 읽을 수 있도록 다른 잡지보다 활자 크기를 키웠다. 7년 전부터 인터넷 페이지를 마련해 기사를 제공하고 있지만 인터넷 접근이 어려운 다수의 장애인 독자를 고려해 종이 잡지를 이어오고 있다.
사진: 권혜빈 기자 snu120724@snu.kr

장애인 매체로서 첫걸음을 떼다

대중의 거센 여론을 등지고 ‘위험천만한’ 글을 쓴 이들은 누구인가. 잡지 「함께걸음」은 1988년 장애인이 인권은 커녕 존재감조차 갖기 어려웠던 인권 불모지 한국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최초의 장애인 언론이다. 당시 기자로 시작해 현재까지 「함께걸음」에 몸담고 있는 이태곤 편집국장은 “개간 당시에는 장애인이 불구자나 폐질자로 불렸고 장애인의 삶은 입 밖으로 내기 부끄러운 것이었다”고 당시 세태를 설명했다.

장애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법고시에 합격한 몇몇 변호사들은 ‘장애우*들에게도 문명의 동반자로서 살아갈 능력과 권리가 있다’고 선언하며 1987년 12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창립했다. 이듬해 3월 첫 사업으로서 폭행과 착취에 시달리는 장애인의 편에서 함께 걷겠다는 의미로 창간한 잡지가 「함께걸음」이다. 장애인 언론의 필요성을 굳게 믿었던 창립 변호사들은 집을 팔아서 발간 비용을 마련했다.

현재는 이 편집장과 세 명의 기자가 잡지를 이끌며 장애인 인권 개선을 위해 글로써 고군분투하고 있다. 기자들은 패기로 똘똘 뭉친 20대부터 경력이 오랜 노련한 4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이들은 연구소에 소속돼 있지만 「함께걸음」의 정체성을 ‘기관지가 아닌 전문지’라고 못 박는다. 「함께걸음」은 일반 기관지와 달리 연구소 사업에 대한 홍보 기사는 쓰지 않으며 대신 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한 알찬 취재 기사로 지면을 채운다.

장애인 인권 위해 잰걸음으로 뛰다

직접 현장을 다니며 취재하는 전문지 「함께걸음」은 소속 기자들이 직접 의제를 발굴한다. 기사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의 뒷면,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 ‘유명무실’ 대책이 필요하다’(2015년 9월호)는 전남의 한 안마원의 제보로 시작됐다. 기자들은 현행법상 불법임에도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공공연히 안마사 행세를 하는 세태를 고발하고자 전남으로 나섰다. 조은지 기자는 “마사지샵 창업 업체에 전화를 걸어 시각장애인을 꼭 고용해야 하는지 묻자 박장대소를 할 정도였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관계자들에게는 비장애인 안마사를 채용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몇 번의 인터뷰 끝에 조 기자는 시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에 밀려 일자리를 잃고 나면, 고객이 ‘아가씨’를 기다리는 동안 안마를 해주는 퇴폐 안마시술소를 찾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당 내용이 보도되자 일반인들도 무심했던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완성된 기사가 ‘인권면’을 빼곡히 채우고 세상에 나오면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 롯데월드의 시각장애인 놀이기구 탑승 제한이 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문제를 제기한 뒤(2015년 5월호) 롯데월드 측은 해당 조치를 재고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최근에는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의 시외버스 탑승이 불가능한 문제를 보도하면서 시외이동권 문제가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함께걸음」과 같은 연구소 내에서 한 팀처럼 움직이는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는 보도된 사건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거나 공익소송을 진행한다.

기자들의 잰걸음은 한차례 기사가 나간 뒤에도 끈질기게 이어진다. 염전 주인들이 갈 곳 없는 장애인들을 섬에 가둔 뒤 노동력을 착취한 ‘염전노예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뒤 「함께걸음」은 일부 피해자들이 염전으로 돌아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했다.(2015년 8월호) 조 기자는 “장애인이 누구한테 맞았다던가 하는 인권 유린 사건은 뉴스에서 깜짝 이슈로 많이 등장하지만 그다음에 그가 어떤 상황인지에는 다들 무관심하다”며 “누군가는 피해를 당하였던 그들이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며「함께걸음」에 유독 후속 기사가 많은 이유를 설명했다.

장애인 편에 가까이 앉다

▲ "누군가는 이 현장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권은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데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거기서 배제되면 안 되거든요. 현장을 지키면서 누가 알아주든 말든 역사를 기록하고 사회를 향해서 목소리를 낸다. 그것이「함께걸음」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함께걸음」 이태곤 편집국장 
사진: 김여경 기자 kimyk37@snu.kr

「함께걸음」을 만드는 이들은 묵묵히 살아가는 수많은 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장애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던 시기 장애인 담론에서 비일비재하게 등장하는 것은 장애 극복 신화였다. 운동선수나 예술가로 활약하는 장애인 한 사람이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으므로 이러한 신화 스토리는 평범한 장애인들의 반감을 샀다. 이를 헤아려 「함께걸음」은 평범한 인물이 살아온 세월을 독자에게 전한다. 지난 8월호 ‘함께면’에서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 강한새 씨를 인터뷰해 장애인이면서 동시에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주변사람들에게 이중의 차별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견뎌온 그의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문화면’에는 홍서윤 씨의 여행기 ‘휠체어로 떠나는 여행’, 지체장애인 변미양 씨가 살아가는 일상의 기록 ‘오사카에서 온 편지’ 등 소소하면서 따뜻한 기고글도 실린다.

비장애인 기자들은 장애에 대해 장애인만큼 이해할 수는 없다는 한계를 인정한다. 그런 그들이 항상 중시하는 것은 ‘인권 감수성’이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별일 아닌 듯 보여도 장애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느끼는지 공감하기 위해 이성보다 감성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지상 점자블록, 이대로 괜찮나? 있으나마나, 믿다간 큰 코 다칠 점자블록’(2015년 3월호)은 기자가 길을 다니면서 “눈 감고 가다가는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엉망인 점자블록의 관리 상태를 포착해 쓴 기사다. 실제 거주지 근처의 점자블록을 촬영해 기사 사진으로 실은 조은지 기자는 “알고 보면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역사를 써내려가며 조용히 자취를 남기다

장애인의 편에 선 「함께걸음」은 많은 장애인 독자의 신뢰와 사랑을 받아왔지만 전체 사회를 향한 목소리는 일반 언론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 3,000명이 넘는 장애인 구독자에 비해 비장애인 구독자 수는 고작 50명 정도다. 많은 기업이 ‘장애인은 소비 여력이 없다’는 이유를 대며 광고 게재를 거절해왔기 때문에 잡지를 낼 때마다 적자가 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한동안 표지사진을 인쇄할 돈이 없어 사진이 실려야 할 자리가 텅 빈 채 책을 낼 정도였다.

그러나 절간된 적 없이 꿋꿋이 버텨온 「함께걸음」의 표지에 적힌 ‘역사를 쓴다’는 작은 문구는 이들이 치열하고 고집스럽게 잡지를 내면서 지키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250만명이 넘는 한국 장애인들의 삶과 우리 사회에서 놓인 상황을 27년간 누구보다 발 빠르고 꼼꼼하게 기록해온 「함께걸음」은 ‘훗날에 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는 잡지’다. 장애인의 편에서 그들이 빈곤의 늪에 빠지거나 인권을 유린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과 동행해온 「함께걸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히 한국 장애인 인권 문제의 현장을 지켜온 잡지의 다음 걸음을 기대해본다.

 

*당시 ‘장애우’라는 말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쓰였으나 현재는 장애인을 동등한 개인으로 인식하므로 쓰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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