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민정 (정치외교학부 15)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이곳 관악은 무인도들이 둥둥 떠 있는 스산한 밤바다처럼 느껴졌습니다. 차가운 바람 속에 모두는 각자의 일로 바빠 보였고, 서로 말 한마디 없이 강의동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저는 길 잃은 혼자였습니다. 어느 단위에도 마음을 붙이기 힘들었고 누구와도 제대로 된 교류를 하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곤 했습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저는 이곳 관악이 파편이 아닌 ‘공동체’임을 믿으며, 그 공동체의 문화와 지향에 큰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새내기 시절 그렇게 방황 아닌 방황을 하며, 반이든 과든 단과대든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던 저를 공동체로 이끌었던 것은 선배님들이었습니다.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며, 술잔을 부딪치며, 같은 강의실 책상에 건너 앉아 수업을 들으며 당신들과 알아가는 것이 좋았고, 대화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저에게는 처음인 것들에 대해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당신들과의 대화는 저에게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줬고, 새 지평을 열어줬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넘어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해, 사회에 대해 나누던 대화들을 기억합니다. 저와 교류했던 선배님들 한 분 한 분이 이렇게 기억되는 것처럼, 떠나는 선배님들 모두 누군가에게 이렇게 기억되실 것으로 믿습니다.

모두에게 대학이 마냥 청춘의 아름다움으로 수놓인 공간이었던 것은 아닐 줄로 압니다. 많은 이들에게 이곳은 차갑고 우울한 곳, 사회만큼이나 치열했던 곳일 것입니다. 졸업이라는 이름을 빌려 대학시절을 무조건 아름답고 찬란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떠나시는 당신이 이곳을 살아냈던 자신을 스스로 밀어내기만 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이곳을 돌아볼 때, 아름답지 않은 기억 속에서도 결국 사랑스럽고 찬란했던 자신을 발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답지 못한 시간이었더라도 그 시간을 살아낸 자신은 아름답고 대견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을 지우고 잊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대학을 떠나서도 이곳 관악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서울대’라는 이름이 어떤 유기체로서 존재함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 시간을 살아냈던 자신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했던 생각들, 나눴던 대화들, 함께 했던 시간들, 공동으로 간직하는 기억이 선배님들의 대학시절을 돌아보도록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선배님들께서 대학을 떠나시더라도 그때의 자신을, 사람을, 공동체를 떠나심은 아님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대학을 돌아볼 때, 결국 돌아보면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 자신도 그대로, 사람들도 그대로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대학을 떠나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수없이 많은 다른 이름들로 호명되시겠지만, 여전히 선배님들께서 저희와 기억의 조각들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기억을 간직하신 분들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없이 많이 회자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곡 「졸업」의 후렴 가사입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위 구절만큼 많이 회자되지는 않지만, 이어서 류지(‘브로콜리 너마저’의 보컬)는 노래합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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