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인터뷰 | 정치외교학부 15학번 윤민정 씨

인간은 스스로 사유하고 서로 교류하며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는 윤민정 씨(정치외교학부·15)가 학교를 다니면서 얻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윤민정 씨는 자신의 이런 믿음을 인간을 향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번 졸업생 인터뷰에서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놓지 않으려 노력했고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대학생 윤민정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 제공: 윤민정 씨)
(사진 제공: 윤민정 씨)

광장의 에너지, 그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윤민정 씨는 2015년 정치외교학부에 입학했다. 이후 윤 씨는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 본부점거본부장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공동대표 △제36대 사회대 학생회장 △학생인권특별위원회 회장 △제61대 총학생회 「NOW」 선본 정후보 등의 직책을 맡으며 학생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학생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묻자, 윤 씨는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가면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입학 이후에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해 실망했고 외로웠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대학교 1학년 첫 여름방학이 찾아왔고, 여느 때와 같이 중앙도서관 터널을 걸어가고 있었던 윤 씨는 대자보 한 장을 발견했다. 총학생회 산하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를 모집하는 대자보였다. 윤민정 씨는 학소위에 지원했고, 그렇게 첫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여기에는 내가 대학에 와서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라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윤민정 씨가 2018년 사회대 전체학생총회 홍보 티셔츠를 입고 있다. 당시 전체학생총회가 성사돼 △16동 24시간 개방 △최다수요 전공 수업 2개 추가 개설 △과·반방 추가 확보가 이뤄졌다. (사진 제공: 윤민정 씨)
▲윤민정 씨가 2018년 사회대 전체학생총회 홍보 티셔츠를 입고 있다. 당시 전체학생총회가 성사돼 △16동 24시간 개방 △최다수요 전공 수업 2개 추가 개설 △과·반방 추가 확보가 이뤄졌다. (사진 제공: 윤민정 씨)

2016년 윤민정 씨가 학생운동을 향한 결심을 굳힌 사건이 있었다. 바로 시흥캠퍼스 사안을 다루는 전체학생총회(총회)였다. 윤 씨는 총회 기획 및 조직에 참여했고 홍보에도 열성을 다했다. 그는 “셔틀버스 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돌렸고, 가을 축제라 총장 잔디에 앉아있던 학생 한명 한명에게 다가가 총회의 존재 사실을 알렸다”라며 “그때는 정말 이유 없이 열심히 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모두가 총회 성사 가능성을 반신반의했고, 나조차도 학생 2,000명을 모으는 것이 가능하리라 자신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런 우려와 정반대의 현실이 윤민정 씨 눈앞에 펼쳐졌다. 정족수 1,610명을 넘겨 총회가 개회됐고 2,0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본부점거 투쟁안이 가결되자 학생들은 곧바로 문을 뜯고 들어가 본부를 점거했다. 윤민정 씨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자신의 뜻에 따라 비표를 드는 광경이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다”라며 “그곳에는 진정한 광장의 에너지가 있었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끔 했다”라고 당시 분위기를 떠올렸다.

윤민정 씨가 학생사회에서 제일 열심히 활동했던 시기는 한국 사회가 급변했던 때와 맞물렸다. 윤 씨는 “페미니즘 리부트(Reboot)부터 시작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도 있었다”라며 “이전에는 문제를 느끼더라도 언어화되지 않던 것들이 광장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오던 시기”였음을 기억했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 따라 윤민정 씨 또한 노동자와 소수자의 권리, 페미니즘과 같은 의제에 관심을 갖고 투쟁을 시작했다. 윤 씨는 “‘내가 나로서 살아갈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일상적 폭력 뒤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큰 이슈였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들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에 옮겨온 윤 씨는 서울대를 두고 ‘쟁점이 많은 공간’이라 칭했다. 윤 씨는 “학교에는 최저 임금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는 반면, 학생들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차별적 대우를 당연시하기도 한다”라며 “이질적 가치가 공존하는 서울대의 현실을 돌파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해 더 열심히 활동했다”라고 답했다.

윤민정 씨는 구조를 변화시키는 개인의 힘을 믿는다. 무엇보다 시민이 참여하는 광장의 에너지를 사랑하고 그로부터 힘을 얻는 사람이었다. 윤 씨는 “학생 사회에서 활동하고, 내게는 ‘인간에 대한 긍정’이라는 믿음이 남았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알고, 말하고, 생각하고, 교류할 수 있으며,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시민이 되고 시민으로서 더 나은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윤 씨는 총회 당시를 떠올리며 “2015~2016년에는 원자적이었던 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선한 의지를 내보이는 것을 봤다”라고 말했다. 그는 “견고한 세계는 변화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나, 구조 속에서 태어난 개인이 모이면 결국 그 구조를 결정하고 바꾸게 된다”라며 광장의 힘을 강조했다.

 

사회와 인간에 관한 새로운 배움

윤민정 씨는 정치외교학부에서 정치학 전공을 택했고 사회학을 복수 전공으로 이수했다. 윤 씨는 “정치학에서는 정치철학, 공화주의,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었고, 사회학에서는 산업노동사회학, 성과 사회처럼 손에 잡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흥미로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김주형 교수(정치외교학부)의 ‘근대정치사상’을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수업으로 뽑았다. 윤 씨는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며 사람의 의지를 믿는 공화주의적 시민을 만들어 간다는 메시지가 와닿았고, 그때 썼던 글들을 다시 들춰볼 정도로 그 수업을 좋아했다”라고 전했다. 유난히 많은 배움을 가져다준 전공 외의 수업으로는 박종소 교수(노어노문학과)의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꼽았다. 윤 씨는 “『안나 카레니나』와 『죄와 벌』 같은 러시아 문학을 읽으며 삶의 고뇌와 격정이 굉장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답했다.

또한 윤 씨는 기억에 남는 수업 외 활동으로 관악 여성주의 학회인 ‘달’을 꼽았다. “여성 혹은 페미니즘 문제가 남녀 간 제로섬 게임처럼 소비되는 행태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래서 본질이 정확히 무엇인지 말해주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라고 말문을 뗀 윤 씨는 “달이 그것을 제대로 알려줘 내 사고의 지평을 넓게 만들어 줬다”라고 기억했다. 더불어 그는 현대 가족 제도가 안겨주는 괴로움과 같은 문제들이 우리 공동의 문제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고통을 유발하는 구조에서 내가 자유로워진다면, 이를 공유하는 타인 또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달에서 배운 희망이다.

 

앞으로 펼쳐질 미실현의 미래

졸업 이후의 계획을 묻자, 윤민정 씨는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이 되는 것’이 당장의 목표라고 답했다. 윤 씨는 2019년부터 휴학계를 내고 스타트업에서 인턴 일을 시작했고, 2개의 스타트업을 거쳐 ‘토스’에 정착했다. “이제는 완전한 직장인이 된 것 같다”라고 말한 윤민정 씨는 토스의 조직 문화가 자신과 잘 맞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토스는 본사가 내세우는 핵심 가치 외의 규칙은 최소한으로 줄여 구성원들의 자율성에 많은 것을 이양한다”라고 말했다. 윤 씨는 “이 조직이라면 사람들과 함께 미친 듯이 몰입해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잘 맞는 직장을 찾아서 만족하고, 늘 더 잘 하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전했다. 다만 윤민정 씨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은 늘 있고, 그 답은 미실현된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라고 밝혔다.

기자는 ‘미실현된 가능성’에 정치에 도전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는지 물었다. 그가 학생운동에 오래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의 열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니만큼, 정치는 그와 매우 잘 어울리는 키워드 같았기 때문이다. 이에 윤 씨는 “제도권 정치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광의의 정치까지 ‘정치’라고 부른다면, 대학 생활 말미에는 정치가 무척 하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지금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윤 씨는 “활동가로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힘든 것은 물론, 거절당하거나, 생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과정을 평생 겪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윤 씨는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두려움과 대중에게 받는 미움을 모두 이겨내면서도 행동해야 한다”라며 “소명 의식과 의지가 정치인의 자질”이라고 본인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윤 씨는 “그렇게 살고 싶은지 물어본다면 ‘예스’(Yes), 살 수 있는지 물어본다면 ‘노’(No)다”라고 솔직히 답했다. 그는 “나도 정치인의 자질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소명 의식과 의지로 그 일을 평생 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윤민정 씨는 “분명 정치에 나설 기회도 있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겠지만 그만큼의 권력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라며 “지금은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이 목표지만, 권력의지가 생긴다면 정치인을 꿈꿀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대답을 마무리 지었다. 

 

대학생 윤민정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불꽃’이다. 윤민정 씨는 농담처럼 “학생 때는 거의 광인이었다”라며 “정말 열심히 살았고 새하얗게 불태웠다”라고 본인의 대학 생활을 묘사했다. 윤 씨는 ‘조금 틀리면 어떻고, 모자라면 뭐 어떤가’라는 생각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고 말했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뒤끝 없이 부딪쳐보자는 메시지를 학우들에게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 인터뷰를 읽을 누군가에게도 그의 강한 에너지가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유예은 기자 eliza72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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