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 공익을 위해 울려 퍼지는 호루라기 소리
내부고발: 공익을 위해 울려 퍼지는 호루라기 소리
  • 대학신문
  • 승인 2016.03.13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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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내부고발의 현주소

1974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임기 도중 사임했다. 이 사상 초유의 사태는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 사건은 기자들의 끈질긴 탐사 보도 끝에 실상이 공개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건 해결의 일등공신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내부고발자다. 당시 한 익명의 내부 고위관리는 「워싱턴포스트」의 기자에게 닉슨 대통령이 도청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제보했다. 이 내부고발자의 신분은 줄곧 비밀에 부쳐지다가 지난 2005년에 이르러서야 당시 미연방수사국(FBI)의 2인자였던 마크 펠트 부국장이었음이 밝혀졌다. 수사당국 핵심 관계자로서 사건의 전말을 소상히 알고 있던 그의 제보가 없었다면 워터게이트 사건은 지금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공익 지킴이, 내부고발의 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보듯 내부고발자는 조직 내부의 일을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기에 은밀한 범죄를 적발하는 데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2년부터 2014년까지 구(舊) 부패방지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접수한 공익신고 중 조사기관(검찰·경찰 등)으로 이첩(移牒)한 1,271건의 사건 가운데 내부고발에서 비롯된 사건은 637건으로 전체의 50.1%를 차지했다.

내부고발의 부패혐의 적발률은 74.2%로 이는 내부고발자의 신고가 부패 적발에 상당히 효과적임을 드러낸다. 내부고발은 추징금액 면에서도 두드러지는 성과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내부고발 사건의 추징·환수금액은 약 4,500억여 원으로 같은 기간 전체 사건의 추징·환수금액(5,530억여 원)의 81.4%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고발은 주로 국가기관, 기업 등에서 발생한다. 내부고발은 개인이 조직을 상대로 하는 행위지만 결과적으론 사회 전체의 공익을 증진하는 역할을 한다. 공익증진에 기여한 대표적 내부고발 사례로는 군 부재자투표에서의 부정을 고발한 사건과 공무원의 출장비·연구비 횡령을 제보한 사건이 있다. 내부고발이 있고 난 뒤 군 부재자투표 장소는 영외로 바뀌어 군 부정선거 시비를 끝냈고, 공무원 여비 규정은 강화됐다. 이처럼 내부고발은 단순히 ‘조직구성원이 조직 내부의 비리나 불법행위·부당행위 등을 고발하는 행위’의 사전적 의미에서 나아가 사회를 개선하는 공익 신고로서 역할을 한다.

 

내부고발이 직면한 난관

◇공익침해행위 제한의 문제=현재 우리나라엔 내부고발만을 규정하는 법은 없다. 대신 ‘공익신고자 보호법’(공신법)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공신법은 공익침해행위를 신고하는 자와 그 협조자를 보호함으로써 공익신고의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로 제정됐다. 공신법과 더불어 공익신고를 규정하고 있는 법엔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법)이 있다. 부패방지법은 부패행위 신고와 관련한 조항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신법과 의도를 같이한다. 하지만 공신법이 민간까지 범위를 넓혀 공익신고자를 보호하는 반면 부패방지법은 주로 공공기관의 부패 행위를 다룬다.

법의 제정과 권익위의 설립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내부고발을 하려면 여러 가지 장애물에 직면한다. 공신법은 공익침해행위를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및 공정한 경쟁을 침해하는 분야’로 한정한 뒤 그 아래 하위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유동림 간사는 “공익침해행위가 나열로 제시되다 보니 법에 규정되지 않는 것은 공익침해로 인정받지 못해 문제가 발생한다”며 “법에 없는 공익위반행위는 신고해도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충암고의 급식비리를 제보한 교사는 최초 신고 당시 신고의 내용이 공익신고에 해당하지 않아 보호를 받지 못하다가 개정법에 학교급식에 관한 조항이 추가된 후에야 보호받을 수 있었다.

◇신고기관 제한의 한계=현재 공익신고를 받는 기관은 권익위, 경찰과 같은 수사기관, 공익침해행위에 대한 조사 등의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 등으로 한정돼 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에 제보한 고발은 공익신고로 인정받지 못해 신고자 보호가 이뤄지지 않는다. 유동림 간사는 “일반 시민들에게 수사기관은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시민단체나 언론 같은 곳인데 신고기관이 아니라 제보를 받아도 처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던 국무총리실 장진수 전 주무관은 “공무원으로서 떳떳하게 국민에게 밝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언론에 제보했다”며 “그러나 좀 더 보호받을 수 있는 형태를 취하면서 준비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해 신고기관 제한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내부고발자 신분 노출의 위험=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고자의 신분 노출과 그로 인한 피해다. 공신법과 부패방지법엔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해 공익신고자의 비밀보장의무, 불이익조치 금지 등의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직 내부의 중요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나 내부의 자체적인 해결을 바라며 내부에 먼저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쉽게 고발자로 특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고자 보호를 소관하는 권익위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호루라기재단 이지문 상임이사는 “권익위는 거의 모든 사건을 다른 기관에 이첩한다”며 “이첩한 뒤 사건 해결까지 심한 경우 1년 이상이 걸릴 때도 있는데 이 경우 신고자가 그사이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 부족은 오롯이 신고자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하나고의 입시비리를 폭로한 전경원 교사 역시 고발 사실이 드러나 피해를 본 당사자다. 전 교사는 “특권화돼가는 학교를 보고 문제의식을 느껴 처음엔 학교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며 “하지만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권익위에 양식을 보냈다”고 말했다. 전 교사는 “학교 측은 징계위원회를 열고 동료들은 자신을 외면했다”며 “공익제보자들은 조직의 배신자라고 인식돼 주위로부터 고립된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박흥식 교수(중앙대 공공인재학부)는 “내부자가 신고해서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현행법상 자신의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문서로 작성해 신고해야 보호를 받을 수 있는데 자기 신분이 드러난다고 생각해 사실상 신고를 잘 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내부고발 후 겪는 현실적 어려움=내부고발자의 신분 노출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신분이 노출된 내부고발자는 같은 조직에서 근무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장진수 전 주무관은 “내부고발은 다시는 자신이 속했던 세계에 발을 못 붙일 각오를 하고 하는 일”이라며 “생업과 전문기술을 뺏기는 격이며 인맥도 사라져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박흥식 교수팀이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108명의 내부고발자를 조사한 결과 108명 가운데 70명이 직장에서 해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상당수의 내부고발자는 고발 이후 해고, 감봉 등의 처우를 겪으며 경제적 어려움에 노출된다.

설령 신분이 노출돼 조직에서 퇴출당하더라도 생계만 유지할 수 있다면 내부고발자가 겪는 어려움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실상 내부고발자들은 신고 후 피해만 입은 채 방치되고 있다. 공신법과 부패방지법에선 모두 보상금 및 포상금의 조항을 두어 공익 신고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박흥식 교수는 “현행법상 보상금은 (환수액 등에 따라) 한도가 있는 비율제로 운영되고 있다”며 “이런 보상금 제도는 불이익에 대한 보호가 완전하지 못해 한계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이지문 상임이사는 “실제 보상금 한도가 20억이지만 20억을 받으려면 400억 이상이 환수돼야 하는데 이는 극히 드물다”며 “대개는 100만원에서 200만원 정도를 보상으로 받는데 이런 보상금 체제는 인센티브 효과가 없다”고 구체적인 실상을 밝혔다.

 

공익보호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현행법이 공익침해행위의 범위를 제한한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흥식 교수는 “미국의 경우 부패뿐 아니라 권한 남용, 예산 낭비, 행정과오 등에 대한 신고에도 보호를 제공한다”며 “우리나라는 신고대상의 범위를 나열하는 것으로 협소하게 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동림 간사는 “공익침해행위를 나열하는 형식으로는 공익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며 “공익침해행위를 포괄적으로 정의해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내부고발은 공익 증진에 기여해 사회적으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내부고발로 인한 피해는 개인에게만 집중돼 오히려 내부고발 의지를 꺾고 있다. 박흥식 교수는 “현재의 기명 제보는 신고를 가로막는 한계가 있다”며 “대안으로 익명, 대리 신고가 주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문 상임이사 역시 “서울시 조례의 경우 변호사를 통한 대리신고를 인정하고 있다”며 “이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신고자 신분 보호 방법을 제시했다.

내부고발자가 겪는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에 관해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유동림 간사는 “내부고발 후엔 그 조직이나 기업에서 더 근무하기가 힘들다”며 “제보자가 다른 곳에 재취업할 수 있게 지원하는 재취업 지원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훈 교수(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미국의 경우 인사조치 등 보복행위의 피해를 본 내부고발자를 위해 복직에 준하는 손실보상, 변호사비용 등의 소송비용을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며 “현재의 제도로는 내부고발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현실”이라 꼬집었다. 이지문 상임이사는 내부고발자가 겪는 소외문제에 대해 “정신적 불이익에 대한 치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권익위 차원에서 적어도 분기별로 한 번 정도 신고자를 상담해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내부고발에 대한 인식이 성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내부고발자가 공통으로 호소하는 어려움은 바로 주변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다. 전경원 교사는 “투명한 사회를 위해 내부 고발은 필요하며 장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학습돼야 한다”며 “제도적인 보완책도 필요하지만 의식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공익제보자들이 겪는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명한 사회를 위해=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고발자가 신고한 비리를 제대로 수사하는 것이다. 이지문 상임이사와 유동림 간사는 모두 “더욱 실효성 있는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유동림 간사는 “공익침해사건 또는 부패를 전담하는 수사기관이 필요하다”며 “신고자들은 신고한 사건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에 가장 힘들어 하는 만큼 부패사건이 제대로 밝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내부고발은 조직의 부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공익적 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이지문 상임이사는 “공익신고는 궁극적으로는 공익침해행위의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며 “신고된 사건이 적발되고 개선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회가 개선될 수 있는 만큼 예방 차원에서의 신고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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