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스페인 유토피아 마을 ‘마리날레다’ 르포

(▶1929호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첫 번째 연재에서 『대학신문』은 고르디요 시장을 만나 마리날레다의 역사를 듣고, 무상 주거를 실현하는 주민들의 삶을 살펴봤다. 이번 연재에선 마을의 동맥인 리베르타드(Libertad)로를 따라 걷는다. 길 위에서 기자가 만난 주민들은 경찰 없는 자신의 마을을 자랑스러워하며 지난주 의회에서 손들고 발표한 내용을 늘어놨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올리브유 조합과 채소통조림 공장에선 효율의 논리를 거부하는 마을의 일꾼들을 만났다. 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보자.

 

연대와 협동, 푸에블로의 힘

매년 7월 마리날레다에서는 거리 축제 페리아(feria)가 열린다. 수백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축제를 기획한다.

사진제공: 마리날레다 시청

리베르타드로를 따라 걷다 보면 스페인 남부 지방의 푸에블로(pueblo) 전통을 엿볼 수 있다. 푸에블로는 마을, 읍, 시를 뜻하는 동시에 사람을 뜻한다. 이는 마을이 곧 사람이고, 사람이 마을 속에서 성장하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토지는 넓은데 사람은 적어 역사적으로 작은 공동체를 꾸릴 수밖에 없었다. 자그마한 푸에블로에 모인 하루살이 노동자들은 바깥세상과 관계없이 그들만의 언어와 전통을 형성해 나갔다. 즉 푸에블로는 외부의 모든 권위나 간섭을 거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강한 유대감으로 뭉쳤던 것이다.

리베르타드로의 거리에서는 마을을 순찰하는 치안대 차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치안대는 마리날레다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 에레라(Herrera)에서 온 것이지만 실질적인 기능은 없다. 국가의 개입을 혐오하는 마리날레다에서는 주민들이 돌아가며 자체적으로 치안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마을의 공공서비스 역시 주민들의 품앗이로 제공된다. ‘빨간 일요일’은 돈이 아닌 이유로도 일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마을의 전통이다. 마리날레다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아침 8시 노동조합 앞에 모인다. 하는 일은 그때마다 다르다. 투표를 통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공공의 일을 정한다. 거리를 청소하거나 공원을 가꾸고, 우모소 농장에서 수확을 돕기도 한다.

마을 주민들은 축제를 통해 신뢰를 쌓고 관계가 두터워진다. 매년 7월이면 리베르타드로는 거리 축제 페리아(feria)로 떠들썩해진다. 평생 마리날레다에서 살았다는 한 주부는 “마리날레다 사람들에게 집은 밥을 먹는 곳이고, 즐기고 노는 것은 문밖 거리”라며 “페리아는 내가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축제”라고 말했다. 페리아 때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먹거리와 무대를 준비하고,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동이 틀 때까지 춤춘다. 먹고 마시는 가운데서 정치적 주제를 갖고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사실 지금의 페리아는 프랑코 시대의 축제를 의식적으로 거부한 형태다. 프랑코 시대의 축제는 높은 담이 쳐진 운동장에서 소수의 사람끼리 폐쇄적으로 치러졌다. 줄리안 로메로 카르모나 씨(52)는 “과거엔 의사, 치안대, 소지주가 아니고서는 축제에 들어갈 수 없도록 비싼 입장료를 받았다”며 “그러나 지금은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모여들 정도로 열려있다”고 전했다. 안달루시아 노동자조합(SAT)의 법적 투쟁 기금을 모으기 위해 열린 지난 2013년 2월 콘서트에서는 5천장의 표가 팔렸다고 한다. 마리날레다 인구가 3천명이 되지 않음을 고려하면 이웃 마을 그리고 그 너머에서부터 사람들이 몰려온 셈이다.

페리아에서 볼 수 있듯 삶의 질에 대한 마리날레다의 철학은 꽤 확고하다. 1985년 토지 투쟁이 한창이던 때 고르디요 시장은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에 “모든 사람에게 빵이 있고, 시민들 사이에 자유와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고르디요 시장의 이상은 이제 마리날레다 시민들의 일상이 됐다. 리베르타드로 위 각종 스포츠·문화시설은 그의 신념이 실천에 옮겨졌음을 보여준다. 마을의 가장 큰 공원인 나투랄(Natural) 공원에는 테니스코트, 야외 체육관, 석조 원형 극장이 있다. 여름날 밤 영화를 상영할 때면 주민들은 방석과 먹을 것을 챙겨와 영화를 감상한다. 공원 옆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하얀 건물은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포츠 센터로 농구, 체조, 핸드볼, 배구 등을 즐길 수 있다. 길을 가로질러 보이는 야외 수영장은 1년 입장료가 3유로, 우리 돈으로 4천원이 되지 않는다. 마리날레다에서 나고 자란 학교 선생님 세르지오 고메즈 레이스 씨(30)는 “극장이나 스포츠센터가 거의 공짜라서 누구나 이용하기 쉽다”고 말했다.

리베르타드로에 위치한 공용 운동장. 마리날레다 주민들은 저렴한 요금으로 문화체육 시설을 이용한다.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의회에서 투표할 수 있어요”

섭씨 38도를 웃도는 지난 8월의 어느 오후, 리베르타드로의 벤치에서 만난 카르모나 씨로부터 마리날레다 의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의회라고 하면 엄숙하고 무겁게 다가오지만 결국 하는 일은 마을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평균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마리날레다 의회의 핵심은 ‘누구나 참여하고 발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표권은 16세 이상에게만 주어진다. 의회가 열리는 날이면 확성기가 달린 밴이 리베르타드로를 달리면서 개회 시간을 알린다. 장소는 농업노동자조합에서 운영하는 바의 큰 홀이다. 평균 매회 마을 인구의 6분의 1인 약 400명이 참여한다. 주민들은 차례로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자기 자리에서 즉시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의회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주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들이다. 마리날레다 역시 스페인의 다른 도시처럼 지방정부로부터 현금 지원을 받는데, 이 예산을 어떻게 쓸지 주민들이 직접 결정한다. 레이스 씨는 “마리날레다는 세계 그 어느 곳과도 다른 정치 형태를 갖고 있어 특별하다”며 “주민들의 살림, 주거지, 공공서비스, 노동과 관련된 제안들이 의회에서 논의되고 발전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의회에 참석했던 호세 씨(30)는 “우모소 올리브 농장을 쟁취하기 위해 어떻게 투쟁할지를 토의했다”며 “직접 민주주의 의회는 합의에 이를 수만 있다면 (그 결과를) 추진력 있게 행동에 옮길 수 있다”고 평했다.

마리날레다에서 직접 민주주의 의회가 운영되는 것은 기존의 정치체제가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없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20세기 스페인의 선거 정치는 안달루시아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했다. 못 가진 자를 대변한 후보는 없었고,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면 매표와 부정 선거에 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고르디요 시장은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 결정을 내리는 푸에블로 하나가 선출된 지도자 집단보다 ‘실수를 덜 할 것’이라 믿었다. 설사 실수를 하더라도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최근 수년간 스페인 전역에서 발견되는 정치 체제에 대한 경멸을 떠올리면 그의 이야기가 솔깃할 법하다.

주민들이 마리날레다 협동조합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주민들은 모두 똑같이 하루 6시간 반 일하고, 한달에 1,200유로를 받는다.

사진제공: 마리날레다 시청

일할 수 있는 땅이 있다는 것

리베르타드로 끝 지점의 올리브유 조합과 채소통조림 공장은 마리날레다 사람들이 먹고사는 방식을 보여준다. 1991년 1,200헥타르의 땅을 손에 쥐게 된 마리날레다 협동조합은 고민에 빠진다. 저 광활한 농장에 어떤 종류의 농작물을 심을지에 관해서였다. 지금 우리 사회의 관점으로는 기계로 수확할 수 있고 몇 사람만 관리하면 되는 밀을 택할 것이다. 투입 대비 산출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력이 가장 많이 필요해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작물을 찾으려 했다. 그 결과 통조림을 생산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올리브 나무와 피망, 아티초크, 토마토 등을 심었다. 그들의 목적은 이윤이 아닌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었다. 카르모나 씨는 “마리날레다의 가장 큰 장점은 일할 수 있는 땅이 있다는 것”이라며 “많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급여가 적더라도 일자리가 있는 게 우리 마을이다”고 전했다.

일자리를 공유하는 이곳 협동조합에서 모든 사람은 똑같이 하루에 6시간 반 일하고 한 달에 1,200유로(약 147만원)를 받는다. 적어 보여도 스페인 최저 임금의 두 배 정도 된다. 또 협동조합에서 잉여가 발생하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모두 쓰인다. 이를 통해 마리날레다는 실업률 5%, 사실상 완전 고용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마리날레다가 이윤보다 서로 돕고 사는 걸 중시한다고 해서 사익을 허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실제로 현재 마리날레다에서는 개인 소유의 술집과 카페가 영업하고 있고, 투기 목적의 프랜차이즈 기업이 아니라면 쉽게 문을 열 수 있다. 오히려 자율은 마리날레다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마리날레다 주민들이 “경작자에게 토지를”이라는 모토를 외치는 이유도 토지 없는 노동자는 제 일을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삶은 가능하다

언급한대로 마리날레다도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지방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 2014년 9월 스페인 일간지 「엘 문도」에 따르면 지방정부가 마리날레다 주민 한 사람당 연간 1만2천유로(약1,470만원)의 보조금을 대고 있다. 지방정부의 재정부실이 지난 2008년 스페인 경제 위기의 한 원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을의 유지 자체가 불안정한 외부적 요소에 기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자율성을 최우선시하는 유토피아 마을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재정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마리날레다가 보여주는 삶의 방식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같은 돈을 받더라도 그들은 다른 도시의 주민들보다 더 즐거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2012년 스페인 전국 실업률이 20%대를 넘어서고(EU통계청), 안달루시아 지방 실업률이 30%에 달하던 때에도 마리날레다는 일자리를 나누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위기에 대처했다.

스페인은 오늘날 가사 없는 국가를 가진 두 나라 중 하나다. 프랑코 시대를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가사는 삭제됐다. 이후에도 독재의 여파는 꽤 오래갔다. 가사 없는 국가처럼 스페인 국민은 한동안 갈 길을 잃었고, 더 가난하고 뒤처졌던 안달루시아 지방은 가난의 타격이 배가 됐다. 그렇게 마리날레다는 역사의 아픔을 겪었고, 지금의 땅을 얻기까지 지난한 투쟁이 있었다. 그 결과 지금 마리날레다는 돈과 효율을 최고로 여기는 세상에서 다수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방식이 충분히 가능하며,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강수돌 교수(고려대 경영학부)는 “마리날레다는 사회적 자원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 셈”이라며 “자원을 (활용하지 않고) 놀리고 있거나 양극화된 상태로 낭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즐겁게 사는 데 쓰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원하는 출세의 삶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출세해서 마주한 세상이 경쟁과 독식으로 가득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들보다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나가서 꿈을 펼치고 싶은 세상의 모습은 어떠한가. 마리날레다는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가슴 뛰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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