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신문』 ‘사회부’ 기자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사회에 관심이 많이 없고 정치에 무지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전엔 이에 대한 부끄러움조차 갖지 못했다. 관심이 없으니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관심을 가지는지 여부는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했다. 나라의 주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등 돌린 채, 그것이 혹여나 나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어도, 나만을 생각하기 바빴다.

소란스러울 농성장을 걱정하며 국회 앞에 이르렀다. 생각보다 작고 조용한 농성장에 미처 놀라기 전에 내 눈길을 잡아끈 건 얼핏 보아 중학생 혹은 그보다 어려보이는 이들의 훤히 드러나 보이는 머리였다. 그러나 단연코 눈에 띄는 앳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천막 앞을 지나치는 행인들의 발길은 차갑기만 했다. 취재를 진행하는 동안 농성장에 지지를 보내오는 이는 단 몇 명에 불과했다. 많은 이가 각자의 시간에 갇혀 잰걸음으로 스쳐 지나갈 적에, 아이들은 소리 없는 외침을 지속하고 있었다.

한 아이는 아침에 응급실에 다녀왔다고 했다.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떨쳐내며 취재를 가야한다는 생각에 못 이겨 나온 내가 부끄러웠다. 또 다른 아이는 지친 표정이었지만 내 방문에 반가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단순한 취재만을 목적으로 발걸음을 한 내가 부끄러웠다. 젤리를 나눠 먹던 아이들은 내게도 하나를 건넸다. 그들에게 과연 내가 작은 젤리만큼의 달콤함이 된 적이 있을까. 아니라는 생각에 차마 받아들 수 없었다. 철없이 생각 없이 집과 학교를 오가던 내 16세와 다르게 그들은 자신과 타인의 권리를 위해 거리로 나와 싸우고 있었다. 머리카락 한 줌 쉬이 잘라내지 못하는 나와 다르게 그들은 머리카락을 잘라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집회 한 번 참여하지 않은 나와 다르게 그들은 아직은 봄의 시샘이 매서운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며 농성을 지속하고 있었다.

취재를 준비하기 전까지 개헌안의 관련 법안도, 이들의 농성 여부도 알지 못했던 내가 감히 이런 간절함을 몇 글자에 담아낼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담아내도 괜찮은 것일까. 사실 나 역시도 만 19세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나는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들은 했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선거권이 있고 그들은 없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스쳤다. 정말 나는 정치에 참여할 만큼 확연히 성숙하고 그들은 미숙한 것일까. 지극히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나이라는 잣대가 선거권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18세와 19세 사이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르는 기준에 의문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괜히 머리를 한 번 어루만져보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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