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우리가 알지 못한 샤로수길의 뒷이야기

관악로14길, 서울대 정문에서 서울대입구역으로 이어지는 관악로와, 서울대 후문에서 낙성대입구 사거리로 이어지는 낙성대로를 가로로 연결하는 길이다. 600m 남짓한 이 골목은 ‘샤로수길’로 불린다. 10여 년 전, 전통 시장을 가운데에 둔 주택가였던 이 곳이 어떻게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권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을까. 지금의 샤로수길을 일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장 골목에서 전국구 상권으로

비교적 최근까지도 서울대 관악캠퍼스 대학가의 중심은 대학동에 위치한 ‘녹두거리’였다. 사법고시가 건재하던 시절, 녹두는 전국에서 모여든 고시생과 서울대생으로 북적였다. 서울대입구역 근방에도 자취방을 찾는 대학생들이 있었지만, 녹두에 비하면 적은 수였다. 샤로수길에서 40년째 거주 중인 주민 A 씨는 “비는 방을 하숙으로 내주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서울대입구역 주변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다. 처음에는 서울대로 향하는 버스가 정차하는 서울대입구역 3·4번 출구를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했다. 샤로수길 ‘한마음부동산’의 김정수 실장은 “2007년 ‘대우디오슈페리움 오피스텔’이 준공되며 1·2번 출구 근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피스텔이 있는 관악로 대로변을 따라서만 가게가 들어선 탓에, 2000년대 후반까지도 지금의 샤로수길인 관악로14길은 전통 시장을 사이에 둔 골목으로 남아있었다. A 씨는 “식당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전파상, 양복점, 청과상 등이 모여 있었다”라며 옛 모습을 묘사했다.

2010년대 초반부터 관악로14길에 젊은 감각의 식당이 하나둘씩 생겼다. 2010년 2월 샤로수길의 시초로 꼽히는 수제 버거집 ‘저니’가 개업했고, 잇따라 ‘막걸리카페 잡’과 ‘비스트로 모힝’이 들어섰다. 대학로·신촌·홍대·가로수길 등 서울의 유명 상권들이 차례로 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으면서, 아직 임대료가 저렴한 이곳에 음식점을 내려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자생적으로 상권이 형성되자 2014년 관악구청은 이곳에 ‘샤로수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듬해 골목 초입에 안내 간판을 설치했다. 다만 서울대 정문 모양인 ‘샤’에 가로수길의 이름을 따와 만든 샤로수길이라는 명칭이 곧바로 호응을 얻은 것은 아니다. 2013년도에 서울대에 입학한 김진현 씨(에너지시스템공학부 박사과정·17)는 “그때는 다들 샤로수길이라는 이름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상권의 중심은 녹두에서 샤로수길로 차츰 이동했다. 김 씨는 “학부에 입학했을 때는 녹두의 대형 술집에서 모임이 열렸다”라며 “2015년 전후로 학생 모임이 서울대입구역 주변으로 자리를 옮겼다”라고 말했다. 서울대입구역 상권 내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샤로수길이 인기를 얻으며 관악로 대로변 상권이 침체된 것이다. 다양한 맛집이 들어선 샤로수길 상권은 남북으로 각각 관악로12길과 관악로16길까지 확장됐다. 김 실장은 “관악로14길의 임대료가 오르자, 비교적 임대료가 저렴한 인접 지역에 젊은 창업가들이 가게를 내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점포 구성도 변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계정 ‘스누푸파’ 운영자인 이민호 씨(인류학과·17)는 “소품 가게나 즉석 사진관이 새로 들어선 것이 눈에 띈다”라고 말했다. 

샤로수길 성장의 배경에는 막강한 배후 수요가 있다. 김 실장은 “2010년대 초반부터 서울대입구역 3·4번 출구 방면의 모텔 밀집 지역에 오피스텔이 들어서자 직장인과 대학생이 몰려들었다”라고 말했다. 강남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월세가 저렴한 지역을 찾아 교대·사당·서울대입구역 등 2호선 역세권을 따라 유입됐다. 더불어 신림동 지역이 노후화되며 서울대입구·낙성대역 부근에서 자취방을 구하는 서울대 학생도 크게 늘어났다.

2019년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샤로수길이 포함된 서울대입구역 상권을 서울 전체에서 임대·투자 여건이 가장 뛰어난 상권으로 선정했다. 2013년 같은 조사에서는 14위를 기록했으나, 불과 몇 년 사이에 홍대·합정·혜화·명동 등 내로라하는 상권을 제친 것이다. 전통 시장의 기억을 뒤로하고, 샤로수길은 이제 지역 상권을 넘어 전국구 상권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북적이는 거리 뒤의 문제들

샤로수길이 1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급격히 변화한 탓에 성장통이 있었고, 일부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문제가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려다. 공인중개사 B 씨는 “샤로수길 형성 초기와 비교하면 임대료가 5배 이상 오른 점포도 있다”라며 “전반적으로 임대료가 크게 오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금융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입구역 상권의 임대료 상승폭은 2018년 4분기에 서울에서 가장 컸다. 이에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점포도 많다. 2019년 26개, 2020년 14개, 2021년 23개의 식당과 카페가 폐업했고, 폐업 신고를 하지 않고 가게를 넘겨 상호를 변경한 경우도 고려하면 실제 폐업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2019년에는 샤로수길 초입에 ‘스타벅스 리저브’가 입점하고, 골목 안에도 백종원 대표가 운영하는 중식 프랜차이즈 ‘리춘시장’이 입점했다. 이에 대형 자본 유입으로 인한 젠트리피케

이션이 본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직 젠트리피케이션이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정수 실장은 “샤로수길에는 소형 점포가 많아 큰 평수의 매장을 요구하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진출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이 탓에 샤로수길 점포별 매출이 양극화된 것이 잦은 폐업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인중개사 B 씨는 “초창기에 들어선 식당 중에서는 장사가 잘 돼 지점을 확장하는 곳도 많다”라며 “경쟁이 치열한 탓에 폐업하는 점포도 늘어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샤로수길만의 특색이 사라졌다는 문제도 있다. 본래 샤로수길이 처음 SNS에 소개되고 언론에 보도될 때는 ‘시장 골목과 이국적인 식당이 어우러진 거리’로 입소문을 탔다. 그러나 이제는 옛 시장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소디스커피’ 샤로수길점 이정규 사장은 “처음에는 시장과 식당이 섞여 있는 색다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라며 “막상 매장을 열고 시간이 조금 지나니 옛 시장의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한동안은 아파트 재건축 조합이 등장하며 이 지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서울대입구역 편백숲1차 지역주택조합 설립추진위원회’가 아파트 건립을 목표로 2018~19년 사이에 샤로수길 일대 토지를 대거 매입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근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고 토지·건물 소유주와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실제로 재개발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B 씨는 “샤로수길 부동산 소유주 중 실거주 중인 주민이 많은 데다, 임대 수익을 포기하고 부동산을 조합 측에 매각하진 않을 것”이라 예측했다. 

샤로수길 역시 코로나19의 영향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그리고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될 때마다 일시적으로 인적이 끊기고는 했다. 상인들은 특히 영업시간 제한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캠퍼스와 거리가 있는 탓에 서울대 학생들은 주로 수업이 끝난 후 저녁에, 직장인들도 퇴근 후에 샤로수길을 찾는다.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영업을 이어 나가야 하는데, 영업 시간이 제한되며 매출에 타격이 왔다. ‘충청삼겹’ 박성진 사장은 “임대료 등 고정 비용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매출을 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 문제”라고 토로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공실률이 치솟으며 큰 타격을 입은 명동·가로수길·홍대 등 초대형 상권에 비해 샤로수길의 상황은 빠르게 호전됐다. 2019년 12월 샤로수길에 가게를 낸 박성진 사장은 “코로나19 초기에는 장사가 잘 안됐지만 이후 매출이 꾸준히 늘었다”라며 “방역 수칙에 따라 매출이 주춤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매달 최고 매출을 경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가게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다. 이정규 사장은 “코로나19 초기에 급격히 줄어든 유동 인구가 이제는 거의 회복된 것 같다”라면서도 “매출이 일정하게 유지는 되지만, 큰 성장 없이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어 조금 지친다”라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덧붙여 그는 “매출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높은 수수료를 감수하고 배달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일시정지, 그리고 다시 발돋움하는 샤로수길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줄어들고 차츰 일상을 회복해 나가는 지금, 샤로수길은 다시 전진하고 있다. 이민호 씨는 “올해 샤로수길을 오랜만에 찾았는데 코로나19 이전보다도 사람이 많은 것 같다”라며 놀라워했다. 서울대의 전면 대면 수업 실시와 함께 저녁 시간대 샤로수길은 이전처럼 인파로 가득 찬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샤로수길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흐려진 샤로수길의 특색을 재구성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이정규 사장은 “문래동이나 을지로처럼 샤로수길만의 특색이 생기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임대료 동향에도 눈길이 쏠린다. 김정수 실장은 “임대인도 결국 임차인과 상생하는 관계기에 코로나19 기간 동안 월세를 동결한 곳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상권에 다시 활기가 돌면서 임대료가 재상승할 조짐이 보인다. 박성진 사장은 “아직은 월세가 적정 수준이지만 여기서 더 올라가면 힘들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전에 비해 크게 오른 물가로 샤로수길에서 발을 돌리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김진현 씨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찾기에는 부담이 될 정도로 물가가 올랐다”라고 토로했다. 샤로수길이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상인과 임대인, 주민과 학생들이 상생해야 할 시점이다. 

 

‘서울대 상권’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샤로수길. 이 길은 주민들이 간직한 전통 시장의 추억, 한적한 주택가에서 유명 상권을 일궈 낸 상인들의 노력, 골목길에 활기를 불어넣은 학생들의 발걸음을 간직하고 있다. 서울대 상권을 넘어 관악구의 대표 상권이 된 샤로수길, 앞으로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계속되길 기대해 본다.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상권이 활성화되며 임대료가 상승해 소규모 임차인들이 비자발적으로 이동하고, 대형 프랜차이즈에 상권이 잠식되는 현상.

 

글·사진: 김무성 사회문화부 차장

dannykim01k@snu.ac.kr

삽화: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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