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둘러 본 ‘2022 서울대 예술주간’

19일(월)부터 23일까지 ‘2022 서울대 예술주간’이 진행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모든 행사가 오프라인으로 진행된 이번 예술주간은 음악 공연, 동아리 공연, 미술 전시, 시낭송 음악회까지 다채로운 행사로 가득했다.

◇시와 음악이 만들어낸 우연한 축복=지난 22일 저녁 미술관 오디토리엄에서 시 낭송 음악회가 열렸다. 시 낭송 음악회는 매년 예술주간마다 개최되는 행사로, 시 낭송과 음악 연주가 함께 조화를 이루며 잔잔한 감동을 전달한다.

시를 낭송하고 있는 신다솜 씨(미학과·20)
시를 낭송하고 있는 신다솜 씨(미학과·20)

“언어를 예술적으로 사용하는 것의 극치는 시이고, 시의 극치는 낭송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행사의 진행을 맡은 홍승진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시 낭송 음악회를 소개하며 한 말이다. 홍 교수의 말처럼 시 낭송에 참여한 15명의 학생은 시가 어떻게 언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지 보여 주며, 시 낭송회 주제인 ‘우연한 외로움의 축복’을 떠올리게 했다.

 

“누군가 있던 것을 단지 주워든 한 사람은 그 사람이 되겠지”

- 「있고 되고」 (김소연, 2013)

주변의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누군가는 그것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한다. 이 시는 마음에 품은 이가 우연히 놔둔 홍옥을 가져갔으면 하는 마음을 드러내 화자 내면의 설렘에 공감하게끔 한다. 이 시를 낭송한 도연우 씨(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는 “그 사람이 홍옥을 집어 들며 우연이 필연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운명이라 부를 수 있는 모습을 잘 표현한 구절”이라며 “외로움 속 우연한 축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새장 속의 새는 모르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하네”

- 「새장 속의 새」(마야 안젤루, 1983)

우리는 대개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고, 자유가 결핍된 현실을 마주하고 나서야 자유의 가치를 느낀다. 날개 잘린 새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새장에 발이 묶인 채 노래하는 것뿐이다. 새는 자유가 무엇인지 잘 모름에도 자유를 원한다며 간절히 노래한다. 오지은 씨(영어영문학과·20)는 “새장에 갇힌 새가 부른 노래가 바로 이 시가 아닐까 싶다”라며 “우연히라도 다가오기를 바라는 축복을 노래하는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낭송자들은 스스로 선정한 시에 본인만의 감성을 담아내고자 했다. 도연우 씨는 “어릴 때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환경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썼는데, 그런 고민을 이 시에서 잘 담아낸 것 같다”라고 언급했다. 오지은 씨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시를 선정했다”라고 밝혔다.

시 낭송 음악회인 만큼 음악도 이번 행사의 중심축이 됐다. 이번 행사에서는 금관 악기, 피아노, 바이올린도 함께 했다. 봉준수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음악과 시를 연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라며 “이번에는 시선을 외부 세계로 향하게 하는 금관 악기와 내면 세계에 집중하게 하는 시를 결합하려고 했다”라고 밝혔다. 봉 교수는 “금관 악기가 커다란 집을 세운다면, 시는 그 집 안으로 들어가게끔 하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시 낭송에 앞서 연주되는 곡은 시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두 번째 곡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는 뜨겁게 다가온 사랑이 천천히 식어가는 과정을 그린 다섯 편의 시와 맞닿아 있었고, 네 번째 곡 쥘 마스네의 〈명상곡〉은 세 편의 시와 함께 인간이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고요히 일어나는 깨달음의 순간을 느끼게 했다. 이번 행사의 트럼펫 연주자로 참여한 지예성 씨(기악과·22)는 “곡의 주제를 내 경험과 연관시키며 연습하다 보니 풍부한 감성을 담아 본 연주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음악과 시는 경험과 한데 어울려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했다.

◇그림자를 헤아리는 여행의 시간=16일(금) 오후 12시부터 예술계복합교육연구동(74동)에서 우석갤러리 초청 큐레이터 기획전 〈NUMBER THE SHADOWS〉가 진행됐다. 김유민 작가(조소과·18·졸) 외 3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이미지가 쏟아진다’라는 표현이 어느 때보다 잘 들어 맞는 현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쁘게 쏟아지는 이미지 속에서 천천히 그 그림자를 헤아려 보자는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송고은 씨(미술경영 박사과정 수료)는 “최근 젊은 예술가가 작품에 추상적으로 담아내는 이미지의 형태는 온라인에 흩어진 파편적 이미지나 일상의 부산물에서 차용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송 씨는 “디지털 네이티브*로 성장해 온 이들의 감수성을 살피는 동시에, 각 작가의 개별적인 특수성에 비춰 작품을 이해하는 측면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강정현 작가의 〈네오 퓨처리즘〉.
강정현 작가의 〈네오 퓨처리즘〉.

조재은 작가(조소과 박사과정)는 온라인상의 이미지를 일상적 풍경으로 바라보고 이를 작품으로 시각화했다. 조재은 작가의 〈부스러기〉는 온라인에 펼쳐진 것들을 추상화된 선과 면으로 표현했다. 한편 강정현 작가(조소과 석사과정)의 〈네오 퓨처리즘〉은 유리를 활용해 여러 개의 사건도 하나의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깨진 유리 조각은 분절돼 보이는 주변의 일을 더 넓은 시각에서 하나로 연결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렛미스타트, 이제는 창작으로 울림을=19일(월) 문화관 중강당에서는 중앙 뮤지컬 동아리 ‘렛미스타트’의 뮤지컬 연주회가 예술주간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렛미스타트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아서 새빌 경의 범죄〉를 공연했다. 이번 극은 렛미스타트의 첫 창작 뮤지컬로 봉준수 교수(영어영문학과)와 공혜린 작곡가(작곡과 박사과정)가 함께 기획했다. 배우 8인, 연출 10인, 음악 5인, 무대 세팅을 돕는 크루 5인, 디자인 담당자 3인까지 총 30명이 넘는 인원이 제작에 참여했다. 

〈아서 새빌 경의 범죄〉 중 한 장면.
〈아서 새빌 경의 범죄〉 중 한 장면.

〈아서 새빌 경의 범죄〉는 맹목적으로 운명을 믿는 귀족을 풍자하는 극이다.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는 가혹한 운명을 마주한 주인공 ‘아서’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운명보다 한발 앞서 살인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관객은 아서의 모습을 통해 주어진 운명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반복되는 아서의 살인 시도와 실패 속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는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관객이 깨닫게 한다. 김나래 총연출(경영학과·20)은 “운명이란 우연으로 시작된 것을 인간의 힘으로 완성해 내는 결과물임을 느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렛미스타트는 재치 넘치는 대사와 참신한 전개로 관객에게 웃음을 줬다. “베리 베리 스트로베리에 휘핑 크림 두 번 추가 맞으시죠?”, “Oh my gosh, very very 큰일이네요!”와 같은 대사는 지난한 고민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운명이라는 무거운 주제였지만 밝은 느낌의 노래와 배우의 발랄한 안무에 관객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연을 관람한 하현정 씨(언론정보학과·21)는 “학교에서 이렇게 완성도 있는 뮤지컬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라며 렛미스타트의 다음 공연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3년 만에 전면 대면으로 열린 예술 주간은 많은 이들의 열정을 보여줬다. 뜨거웠던 그들의 노력과 열정에 찬사를 보내며, 내년에 이어질 예술주간도 많은 이들에게 뜻깊은 추억이 되기를 기대한다.

*디지털 네이티브: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

사진: 정연솔 기자 jysno@snu.ac.kr

이진서 기자 jsleeint@snu.ac.kr

구민지 기자 grrr0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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