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문화 | 사회대연극당 〈언타이틀드, 퍼펙트 러버즈〉

사랑에 완벽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사회대연극당은 지난달 22일부터 25일까지 성북구 ‘뜻밖의 극장’에서 제50회 정기공연 〈언타이틀드, 퍼펙트 러버즈〉를 진행했다. 극에서는 같은 성(性)을 사랑하는 작가 ‘연재’와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정의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완벽한 연인이라는 연극의 제목처럼 극은 장면 전환을 통해 소설과 현실을 넘나들며 사랑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쓴 웃음을 지으며 상현의 질문에 대답하는 연재. 사진 제공: 사회대연극당
쓴 웃음을 지으며 상현의 질문에 대답하는 연재. 사진 제공: 사회대연극당

⃟  언타이틀드: 극이 말하는 퀴어=명명 행위는 대상에게 가치를 부여한다. 이번 정기공연의 제목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미술 작품 <Untitled: Perfect Lovers>에서 따왔다. 그러나 연출을 맡은 연지은 씨(사회복지학과·20)는 통상 ‘무제’라고 번역되는 작품의 제목 ‘Untitled’를 ‘명명되지 않은’으로 해석했다. 연지은 씨는 사회가 성 소수자에게 그들의 존재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극을 썼다고 밝혔다. 스스로를 규명하고 증명해야만 하는 성 소수자는 애초에 ‘이름조차 없는’ 이들인 경우가 빈번하다. 이는 극에 등장하는 ‘아주 완벽한 연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의 존재가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한 그들의 사랑 역시 이름을 부여받을 수 없고, 동시에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극 중 연재는 이렇게 말한다. “같은 성을 사랑하는 이로 살아간다는 건 그런 거예요. 내 존재가 타인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드는 거.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남들의 시선에 내 근간까지 흔들려버리곤 하는 거.” 그들의 사랑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가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시선은 쉬이 무시하기 어렵다. 

극은 퀴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작품에는 동성 연인이 겪는 사회의 차별에 관한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한다. 연재와 그의 연인 ‘안나’가 덕수궁 돌담길에서 나누는 대화는 좋은 예시다. 극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서술자’는 그들의 만남이 주변 사람의 싸늘한 시선을 의식하느라 언제나 은밀해야 했다고 말한다. 이후 연재는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오래된 전설을 사뭇 유쾌하게 이야기한다. 지금의 서울시립미술관 자리에는 원래 가정법원이 있었고, 이 때문에 이혼하러 가는 부부들이 덕수궁 돌담길을 거쳐 가며 전설이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안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린 거기 해당 안 돼. 결혼은 이성애자의 특권이잖아.” 그녀는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상황을 덕수궁의 전설을 무력화하는 데 사용한다. 곧이어 그녀는 말한다. “대신, 우리는 특권 누리자. 이 길 끝까지 몇 번이고 걸어도, 절대로 이별하지 않는 특권.” 극이 퀴어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듯 처연하지만 안온하다. 

 

⃟  퍼펙트 러버즈: 극이 말하는 사랑=극에 등장하는 사랑의 형태는 단일하지 않다. 연지은 씨는 이번 연극이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이야기하는 극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도 극 중 등장하는 사랑의 다양한 정의 중 하나에 마음이 간다고 밝혔다. 작품에 등장하는 ‘상현’은 “아주 오랜 시간 축적된 좋아하는 마음이 깊숙한 곳으로 밀고 들어가 눌러 앉으면 사랑이 된다”라고 말한다. 연지은 씨는 상현이 정의하는 사랑이 무의식적인 사랑의 동작과 닮았다고 말했다. 꼭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사소한 몸동작, 표정, 습관과 언어 따위에서 알 수 있는 것 모두 사랑의 한 종류라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앞선 상현의 정의는 극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의 사랑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작품의 주요 연인인 연재와 안나의 경우에서도 연재는 연인을 만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확연히 다른 말투를 사용한다. 말투의 변화는 어쩌면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는 표현 방식일 것이다. 연재 역을 연기한 황연우 씨(간호학과·15)는 “내가 분석한 연재는 꼿꼿한 자세로 남들에게 때로는 예민하게, 때로는 거만하게 행동하며 틈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캐릭터”라며 “하지만 사랑하는 안나 앞에서만은 연재가 그런 관념의 형상화를 제쳐두고 꾸밈 없는 자신이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해석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전의 자신과는 확연히 다른 목소리로 말하는 것, 연재의 사랑도 상현이 정의한 사랑과 다르지 않았다.

 

⃟  완벽하게 꽉 막힌 해피엔딩=극은 연재가 자신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연인인 안나와 함께하는 것을 택하면서 마무리된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영원한 사랑과 행복을 약속한다. 다만 이 작품은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당연히 정해진 결말과, ‘그럴 수밖에’ 없어 떠밀리듯 던져진 결말을 비교하며 극에서 등장하는 작가의 선택에 의문을 제기한다. 결말에 가까워지자 안나는 앞에 있던 고난은 전부 없었던 일로 치고 ‘아무쪼록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하고 끝나는 결말을 ‘완벽하게 꽉 막힌 해피 엔딩’이라 말한다. 그러나 연재는 안나를 사랑하면서도 이렇게 끝맺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서서히 흐려지는 조명, 둘의 키스를 덮는 완전한 어둠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이들의 사랑은 정말 안나가 말한 것처럼 완벽한 해피 엔딩이라 할 수 있는가?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연재와 안나의 대화는 퀴어와 사랑이라는 작품의 주제에 또 다른 질문을 제시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연재가 관객석을 바라보며 말했듯 우리의 몫으로 남아있다. 이들의 대화는 우리가 타인에게 스스로를 규명하라고 다그친 적은 없는지, 그들의 존재를 멋대로 단정 짓지는 않았는지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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