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원자력 정책의 미래를 검토하다

‘탈원전’은 핵분열 원자로를 사용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 중지나 폐기를 추진하는 정책이다.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 탈원전 논의는 문재인 정부 시기 정책 의제로 대두됐으나, 현 정부는 지난 7월 탈원전 폐기를 공식화한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이는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탈원전이 논의된 배경을 알아보고, 원전이 미래에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지 점검해 봤다.

 

탈원전 논의, 어떤 과정을 거쳤나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에너지 전환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은 28.1%였고, 환경운동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국가의 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은 2040년에 64%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녹색연합 임성희 기후에너지팀장은 “에너지 전환이란 탄소 중립이라는 목표를 내포한 채 전력 공급원과 발전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며 생태계에 정의로운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순진 교수(환경대학원) 또한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전력 소비의 감소가 필요하나, 완전히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생 에너지라는 대안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이에 탈원전 또한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세계 원전정책 동향 업데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원전 설비 용량은 2018년까지 증가하다 이후에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기준 원전 운영국 33개국 중 22개국에서 총 199기의 원자로가 폐쇄됐다. 반면, 유럽연합(EU)의 녹색분류체계와 같이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계획과 자금·부지가 있는 경우에 원전을 친환경으로 간주하는 등 규제를 통해 원전을 유지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그럼에도 원전의 감소세는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탈원전은 국제적인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정책 기조도 전 세계적 원자력 발전의 감소 추세와 맞닿아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확정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은 탈원전·탈석탄 기조와 더불어 재생 에너지 이용을 확대하고 에너지 전환을 추진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한국의 에너지원 발전 비중은 석탄(34.3%), LNG(액화천연가스, 29.2%), 원자력(27.4%), 신재생(7.5%) 순으로, 원전은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2005년 원전 비중이 전체 발전의 41.1%였던 것과 비교하면 그 비중이 감소했지만, OECD 국가 중 그 비율이 가장 높다.

원전이 전체 에너지원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문주현 교수(단국대 에너지공학과)는 그 이유를 “안정적이고 고품질의 전기를 공급해줄 수 있는 핵심적인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초연결된 디지털 사회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전기 수요가 늘어나는데, 이때 원자력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이라고 덧붙였다. 이덕환 교수(서강대 화학과) 또한 “발전 설비의 이용률을 고려하면 태양광 발전 시설은 원전의 169배, 풍력 발전 시설은 37배의 면적이 필요하다”라며 “지금의 원전은 획기적인 경제성과 효율성을 갖추고 있다”라고 밝혔다.

 

국내 원전 정책, 그 의의와 한계는

경상북도 울진에 위치한 한울 원자력 본부.
경상북도 울진에 위치한 한울 원자력 본부.

원전의 친환경성은 늘 논란이 된 부분이다. 원전은 발전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해 탄소 중립에 가까이 갈 수 있지만, 폐기물의 위험성 때문에 친환경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임성희 팀장은 “핵발전은 기본적으로 발전 과정에서 방대한 오염 물질과 방사성 물질의 발생을 전제한다”라며 “발전 과정뿐 아니라 발전 이후의 폐기물을 고려하면, 환경과 생명의 상징인 ‘녹색’이라는 말을 붙이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지난 9월 정부에서는 유럽처럼 원자력 발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로 편입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안전 관리 규정을 충족해야만 원전을 ‘녹색’으로 분류한다고는 했으나, 여전히 안전성을 향한 전문가들의 우려는 적지 않다. 이렇듯 친환경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운데, 원자력 발전이 갖는 효율성을 포기하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는 정책적 시도가 있었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던 탈원전은 크게 △신규 원전 6기의 건설 계획 백지화 △2084년까지 60년가량에 걸친 원전 비율 감소 △월성 1호기 폐쇄를 주요 골자로 했다. 현 정부에서도 에너지 전환이라는 목표는 유지됐지만, 에너지 정책 기조는 변곡점을 맞이했다. 주한규 교수(원자핵공학과)는 “윤석열 정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탈원전 정책 폐기지만, 결국 신재생 에너지와 원자력을 조화시켜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현 정부는 △원전 비중 30%가량 확대 △원자력 산업 생태계 강화 △소형모듈원전(SMR)을 비롯한 차세대 원자력 혁신 기술 개발 등을 에너지 정책의 주된 기조로 삼았다.

국내 원전 관련 정책을 각계 전문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윤순진 교수는 문 정부가 시행한 탈원전 정책의 의의와 한계를 짚으며 “탈원전의 정의에 따라 달리 볼 수 있겠으나, 목표가 완전 폐지가 아닌 단계적 감축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목표가 달성됐다”라며 “대폭 변화가 있지는 않았음에도 시민 참여를 통해 공론화 과정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성원기 명예교수(강원대 전자정보통신공학부)는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정책은 운영 중인 원전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되,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금지하는 선에 그쳤다”라며 “대형 원전을 신규로 건설하지 않고 원전을 서서히 줄이자는 매우 소극적인 변화”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탈원전 폐지 정책에 대한 평가도 다소 비판적이다. 재생 에너지 개발과 원자력 발전소는 그 특성에 큰 차이가 있기에, 두 에너지원 개발이 동시에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임성희 팀장은 “재생 에너지는 햇빛과 바람 등 자연 상태에 따른 변동성이 내재된 발전 방식이므로, 그 변동성을 때에 따라 보완할 수 있는 발전 방식이 필요하다”라며 “원자력 발전은 상황에 따라 켜거나 끌 수 없는 등 재생 에너지와는 서로 상충하는 특성이 있어 병존이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윤순진 교수 또한 “원전을 함께 가동하는 대안은 예측 불가능한 전력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는 위험성을 잠시 늦춰두는 것에 불과하다”라며 “재생 에너지 시장을 발전시켜 재생 에너지의 간헐성을 해결하는 것이 낫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원자력 산업의 관점에서는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이후 가져온 결과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주한규 교수는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는 원자력 발전을 포기해 생긴 부작용이 크다”라며 “제대로 가동되던 기존 원전의 이용률이 급락하며 한국 원전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화력발전소의 가동이 줄어듦에 따라 원전 대신 LNG의 비중을 늘렸는데,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이 전기 요금 상승에 영향을 줬다”라며 탈원전 정책에는 경제적 맹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덕환 교수는 해당 정책이 원전 생태계를 일방적으로 중지시켰다고 설명하며 “에너지 정책의 4가지 요소인 △경제성 △환경성 △안보 △안전 중 안전과 환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안보와 경제성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안보란 사회·경제·군사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에너지의 자급자족을 의미한다. 더불어 문주현 교수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라도 기저 전원(電源)으로서 원자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에너지 전환과 원자력의 미래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탈원전 정책은 완전한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탈원전 백지화 또한 온전히 녹색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사용 후 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미결 상태로 남아 있다. 발전 후 방출되는 ‘사용후핵연료’는 보통 열과 방사능의 절대량이 줄어들 때까지 원전 내에서 임시 저장되며 관리 단계를 거친다. 이후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내 저장 수조에서 약 5년간의 습식저장과정을 거치며 건식저장시설에서 한시적으로 관리된다. 원전 외부로 운반돼 중간 저장 단계를 거친 사용후핵연료는 지하 500~1,000m에서 영구 처분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저장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폐기물을 처리할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방폐장)이 건립될 부지를 찾는 일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지질학적 조건을 충족해야 함은 물론, 방폐장 설치를 향한 지역 주민의 반발도 넘어서야 한다. 

탈원전 기조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이런 위험을 안고 가는 한 원전과 방폐장 건설에 대한 지역 주민의 공감대를 모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012년 이명박 정부는 삼척 근덕면을 원전의 건설 예정 부지로 지정했으나, 지역 반발이 심해 결국 7년 만에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를 역임한 성원기 명예교수는 “위험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한 원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뤄지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윤순진 교수 역시 사회적 공감대 미비를 언급하며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하면, 원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적인 기준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원전을 유지하면서 탄소 중립을 실현하려면, 주민 공론화는 물론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위험 방지 시설과 핵연료 처리 시설의 준비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이런 준비가 미흡함에도 탈원전 정책 폐지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원전의 존폐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의제로 다뤄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문주현 교수는 “에너지 정책에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발전 방식에 관한 정책은 거시적인 환경 및 에너지 정책 목표에 입각해 결정돼야 한다. 정치적 논쟁의 대상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에너지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포그래픽: 장순주 뉴미디어부장 

soon071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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