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문화 | 의류학과 패션쇼 ‘화’

지난 9일(수) 오후 7시 생활과학대학(222동) 앞에서 ‘2022년도 생활대 아카데믹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의류학과 제41회 패션쇼 ‘화’가 개최됐다. 코로나19가 남긴 상흔을 넘어 3년 만에 관객이 가득 모여들었다. 늘 밟는 학교의 보도블록 위에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모델이 서는 순간, 그곳은 찬란한 꿈의 런웨이가 됐다.

‘화’를 주제로 만들어진 의상을 입고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과 3년 만에 가득 찬 관객석.
‘화’를 주제로 만들어진 의상을 입고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과 3년 만에 가득 찬 관객석.

 

팬데믹의 기억을 건너는 런웨이

이번 패션쇼는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이전의 활기를 되찾은 시기에 열렸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지난해 패션쇼에서는 디자이너 한 명당 관객을 두 명씩만 초대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이번 패션쇼는 참석 인원에 제한을 두지 않아 많은 관객으로 북적였다. 패션쇼는 스페셜 스테이지 2개와 본스테이지 4개, 총 6개의 스테이지로 기획됐다. 스페셜 스테이지에서는 의류학과 졸업생인 김종선 교수(수원여대 패션디자인과)와 김고운 교수(덕성여대 의상디자인전공)가 디자인한 의상이 펼쳐졌다. 본스테이지는 ‘화’라는 대주제를 △빛날 ‘華’와 될 ‘化’ △그림 ‘畵’와 꽃 ‘花’ △변화할 ‘化’와 빛날 ‘華’ △덫 ‘擭’와 같이 다양한 한자로 해석한 학생 디자이너의 의상으로 구성됐다.

 

패션쇼 준비를 위해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작업하는 학생들.
패션쇼 준비를 위해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작업하는 학생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무대는 그 뒤에 있었을 수많은 고민과 애틋한 열정을 쉬이 가늠할 수 없게 했다. 의류학과의 패션쇼는 3학년 교과과정으로 편성된 ‘패션디자인발상’과 ‘패션컬렉션’을 각각 1, 2학기에 차례로 수강하며 노력한 1년간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무대다. ‘화’라는 콘셉트 또한 ‘패션디자인발상’ 강의에서 등장한 아이디어였다. 박예린 쇼장(의류학과·20)은 패션쇼의 콘셉트 선정 이유에 대해 “다양한 의미를 담은 한자로 풀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고, 많은 한자 ‘화’ 중에서도 양면적인 의미를 모두 내포할 수 있는 한자들을 선택했다”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연출, 학술, 홍보, 회계팀으로 나뉘어 무대, 음악, 영상은 물론 쇼 당일 배부된 브로슈어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준비했다. 

 

의상이 만들어내는 한 폭의 캔버스

쇼 준비의 핵심은 단연 의상 디자인에 있다. 학생 디자이너들은 적합한 원단을 찾고, 발 사이즈까지 고려해 모델을 선정한 후 여러 차례의 피팅*을 거쳐 쇼 전날까지도 거듭 디자인을 수정한 후에야 무대에서 발표할 의상을 완성했다. 이들은 팬데믹 이전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으로 돌아가 사랑과 화합을 되새기자는 ‘빛날 화(華)’의 스테이지로 시작해, 함께 극복한 팬데믹 시기의 어려움을 잊지 말자는 의미의 ‘덫 화(擭)’ 스테이지까지 패션쇼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의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김효원 씨(의류학과·20)의 의상이 포문을 열었다. ‘빛날 화(華)’를 콘셉트로 해바라기 퀼팅과 자수, 생화 오브제와 여름의 색감을 활용해 따뜻한 시골과 첫사랑의 기억을 표현했다. 그는 “손수 퀼팅을 봉제하고 패턴을 제작했으며, 다양한 색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독특하게 느껴지도록 힘썼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평생 자유롭게 탐험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솔직한 꿈을 담아 ‘탐험가’라는 주제로 ‘될 화(化)’를 풀어냈다는 박예린 쇼장은 세 벌의 의상을 선보였다. 그는 “전반적으로 프레피룩* 느낌과 탐험가의 대담함이라는 특성을 조화시켜 첫 번째 의상에서 세 번째 의상으로 갈수록 학생에서 탐험가에 가까워지는 느낌으로 연출했다”라고 밝혔다. ‘도시 산책자의 사색과 사유’라는 독보적인 콘셉트로 눈길을 끈 디자이너도 있었다. 박대경 씨(자유전공학부·19)는 “패션과 음악 등의 문화를 통해 우울과 불안을 극복하고 건강해질 수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화려한 부분은 더욱 돋보이게, 다른 부분은 화려함을 극단적으로 줄여 우울함 안에서 피어나는 화려함을 드러냈다”라며 디자인 의도를 설명했다.

 

김효원 씨의 의상.
김효원 씨의 의상.
박대경 씨의 의상.
이호준 씨의 의상.
박예린 씨의 의상.
박예린 씨의 의상.

 

의상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

디자이너의 피땀이 담긴 의상을 입고 런웨이에 선 모델은 의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옷을 만들기 전 실험을 거치는 ‘가봉’ 단계의 피팅과 실제 원단으로 구현하는 ‘본봉’ 단계의 피팅에서 디자이너는 모델의 사이즈에 꼭 맞는 의상을 제작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마네킹 위에서 만들던 의상을 모델이 입는 순간, 의상은 더욱 빛난다. 모델은 수많은 관객이 지켜보는 런웨이의 중앙을 당당하게 걸으며 의상을 선보이는 주체다.

이번 패션쇼에 참여한 모델은 대부분 타 학교의 모델학과에 소속된 학생으로, 박예린 쇼장은 “기획사에서 모델의 프로필 목록을 받은 후 디자이너들의 선호도를 반영해 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총 네 벌의 의상을 입은 최지현 씨(서경대 예술교육원 모델학전공·21)는 “서울대 패션쇼는 틀에 잡혀서 정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디자이너, ‘헬퍼’, 연출가 등 함께하는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할 수 있는 무대”라며 극찬했다. 이어 그는 “피팅할 때는 콘셉트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앞서지만, 런웨이에 서는 순간만큼은 의상에 온몸과 마음을 한가득 내맡긴다”라며 직업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런웨이를 걷는 모델의 모습.
런웨이를 걷는 모델의 모습.

 

보이지 않는 곳에서 쇼를 빛내는 이들

모든 모델이 등장한 피날레 무대.
모든 모델이 등장한 피날레 무대.

 

쇼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백스테이지에서 바삐 움직이며 쇼를 뒷받침한 헬퍼도 빼놓을 수 없다. 의류학과 소속 1, 2학년 학생들이 주로 헬퍼로 참여해 패션쇼를 함께 만들어 나간다. 헬퍼로 참여한 안제형 씨(의류학과·22)는 “모델이 워킹 후 백스테이지로 돌아오자마자 모델과 헬퍼는 미리 맞춘 동선대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백스테이지의 매력에 대해 “침착함과 분주함이 공존하는 백스테이지의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는 스릴과 희열감을 선사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선우 씨(의류학과·21)는 백스테이지를 “백조가 물 위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낼 수 있도록 하는 분주한 발의 움직임”에 비유하며 “멋진 쇼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에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 백스테이지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헬퍼들은 내년 혹은 내후년에 열릴 패션쇼의 차기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안제형 씨와 이선우 씨 모두 “선배의 작품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배울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며 다음 패션쇼에는 디자이너로 참여해 멋진 의상을 올리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패션쇼에 임하는 이들의 진지한 열정이 온 관객의 심장을 뛰게 했고, 피날레 무대에서는 이들의 열정에 뜨거운 환호가 쏟아졌다. 박예린 쇼장은 “재봉질하는 순간은 모든 잡념이 사라지는 희귀하고 소중한 순간”이라며 패션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패션에 대한 이들의 사랑과 관객의 응답이 영원히 계속되길 염원한다.

 

*피팅: 모델이 옷을 착용하는 과정.

*프레피룩: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 학교 학생들을 일컫는 ‘프레피’(Preppy)에서 유래해, 단정하면서도 일상적인 느낌의 교복에서 파생된 스타일의 의상을 뜻한다.

 

정연우 기자

foxnwoo@snu.ac.kr

사진: 정연솔 기자

jysno@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