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장, "앞으로 연대 요청 실시간 공유할 것"

총학 내부에서 연대 요청 묵살

카이스트에 공대·자연대만 연대

성명문 통해 합당한 의결 절차 요구

총학, 논의 안건 실시간 공유 약속

 

지난 2일(토) 공대 학생회와 자연대 학생회가 ‘사라져버린 논의의 장, 무엇을 위한 총운영위원회인가’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게시했다. 총학생회(총학)가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전면 삭감 계획에 대응하는 카이스트 총학의 성명 연대 요청을 총운영위원회(총운위)에 상정하지 않고 총학생회장단 내부적으로 반려했다는 것이다. 공대와 자연대 학생회는 다른 비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카이스트의 연대 요청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들은 성명문에서 총운위 안건 상정의 절차적 허점을 지적하며 총학에 개선을 요구했다.

해당 성명문이 게시된 배경에는 지난달 28일 카이스트 총학에서 발표한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 전면 삭감 정책에 대한 성명문’이 있다. 지난달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해 대비 내년 주요 R&D 예산의 13.9%(3조 4,000억 원)에 달하는 예산 삭감을 발표한 가운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 25곳의 주요사업비 25.2%(2,989억 원)와 △카이스트 △유니스트 △지스트 △디지스트의 주요사업비 11.8%(290억 3,600만 원)가 삭감될 예정이다. 이에 카이스트 총학은 성명문에서 “과학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이 수립되고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분야”라며, 정부출연연구기관 및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에 대한 R&D 예산 삭감을 재고하고 정책입안 및 예산안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을 존중할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한편 이번 카이스트 성명문에 여러 대학의 학생회도 연대했다. 우선 학부 총학으로는 △카이스트 △포스텍 △유니스트 △지스트 △디지스트 △고려대가 연대했으며, 대학원총학생회로는 △카이스트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가 연대했다. 서울대 학부의 경우 총학은 연대에 참여하지 않았고, 공대와 자연대 학생회만이 별개로 연대했다.

카이스트 총학의 성명문에 공대와 자연대 학생회만이 따로 연대하게 된 것에 대해 두 단과대 학생회장은 절차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연대 오정민 학생회장(지구환경과학부·20)은 “취업박람회를 준비하던 중 생명과학부 대학원생 자치회를 통해 총학이 안건을 묵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해당 안건을 다음 총운위에 상정해서 논의할 경우 연대 시한을 넘기게 되는 상황이었기에 두 단과대 이름으로 연대해야 했다”라고 경위를 전했다. 

공대와 자연대 학생회가 총학을 규탄하는 성명문을 게시한 이유에 대해 공대 나세민 학생회장(항공우주공학과·21)은 “함께 고민해야 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장단 내부에서 답변조차 주지 않고 총운위에 상정하지 않기로 결정한 지금의 절차에 문제의식을 느꼈다”라고 밝혔다. 성명문에는 이공계 수업·실험·연구 현장에 있어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은 필수적이므로 정부의 R&D 예산 삭감은 학내와 유리된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담겼다. 또한 명백한 사회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교육전문대학원 시범운영 정책과 관련해서는 정책 기획에 사범대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총학이 장을 마련하고자 했던 사례를 들며, 이번 연대 요청 묵살은 총학의 행적과 기조에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학내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기층 단위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하겠다는 총학의 기조와 모순된다는 것이다. 이어 공대와 자연대 학생회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금까지의 실책을 사과하라 △유사한 사안에 대해 합당한 논의 및 의결 절차를 가질 것을 약속하라 △오늘날까지의 행보와 기조에 대해 논의하라는 세 가지 요구 사항을 밝혔다.

이후 지난 3일 조재현 총학생회장(자유전공학부·20)은 공대·자연대 학생회 성명문에 대한 총학생회장 입장문을 게시했다. 조 총학생회장은 앞서 공대와 자연대가 밝힌 세 가지 요구에 대해 △총학생회장으로서 사과하고 재발을 방지할 것 △연대 요청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단과대 학생회 요청 시 안건으로 상정할 것 △2023학년도 전체학생대표회의에서 점검의 장을 만들 것을 밝혔다. 해당 총학생회장 입장문은 공대와 자연대 학생회가 성명문을 게시한 다음 날 열린 제40회 총운위에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한편 입장문에서 조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장의 권한으로 내부 의결 기구를 통해 안건의 상정 혹은 반려를 결정하는 것이 절차상 위반 사항은 아니다”라면서도 “이제부터는 안건을 구글 스프레드시트 등으로 실시간 공유하겠다”라고 전했다. 조 총학생회장이 밝힌 구체적인 스프레드시트 활용 방안은 다음과 같다. 우선 총학생회장단은 △기업에서 온 광고성 안건 △신원이 불분명한 연락 △기타 지나치게 정치적이며 학생들과 관련이 없는 안건 등을 제외하고 내부 의사 결정 기구에서 논의된 안건들을 목록화해 스프레드시트에 수요일마다 업데이트한다. 이후 총운위 위원들은 스프레드시트를 확인하고 안건 상정이 반려된 이유를 총학생회장단에 물을 수 있다. 만약 총운위 위원에 의해 안건 상정의 필요성이 인정되면 해당 안건은 총운위에 상정된다. 나세민 학생회장은 “다음 제41회 총운위와 2023학년도 하반기 전체학생대표회의 등에서 요구 사항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대와 자연대 학생회장 이외의 총운위 위원들도 총학의 이번 대응에 대한 유감을 표했다. 인문대 김철진 학생회장(국사학과·21)은 “학내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것과 사안을 공론장에서 논의할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회대 강민준 학생회장(정치외교학부·21)은 “건강한 학생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체계적인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건설적인 논의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자연대와 공대 학생들의 여론 역시 뜨거웠다. 오정민 학생회장은 “자연대 학생회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한 성명문이 굉장히 큰 관심을 받았다”라며 “일반 학우들의 공유 역시 적극적으로 이뤄졌다”라고 밝혔다. 김선규 씨(물리천문학부·23)는 “총학의 잘못된 안건 묵살로 인해 단과대가 손해를 봤다면 당연히 총학의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세현 씨(조선해양공학과·23)도 “총학은 침묵도 정치적인 행동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라며 “총학이 학생의 목소리를 대변함에 있어 논의 사항을 선택하고 기각하는 과정에 주의를 더 기울였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