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토) 공대 학생회와 자연대 학생회가 카이스트 총학생회(총학)의 이공계 연구개발(R&D) 예산 감축 관련 연대 요청에 미진하게 대응한「정오」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문을 게재했다. 이후 총학은 입장문을 통해 해당 사안에 대해 사과하고 관련된 후속 논의를 진행할 것을 약속했다. (『대학신문』 2023년 9월 11일 자) 이에 총학은 지난 11일 열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 보고안건을 통해 지금까지의 행보와 기조에 대한 논의의 시간을 마련했다. 그러나 어느 단과대 대표자도 의견을 제시하지 않아 별다른 논의 없이 빠르게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정치성 기조에 대한 논의가 이번 전학대회에서 진행되지 못한 것에 대해 총학은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공대와 자연대 학생회의 지적 이후 정치성 기조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준비했으며 비판도 겸허히 수용할 계획이었는데, 정작 회의에서는 개선해야 할 문제 등이 지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총학 측은 추가적인 논의의 장이 마련돼도 더 나은 논의가 이뤄질지 모르겠다며 추가적인 의견 청취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총학이 마련한 논의의 장에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에는 총학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 이번 전학대회에서 총학은 의견과 비판을 자유로이 제시해달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치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의 장을 구성하기를 원했다면, 총학은 정치성 판단 기준 등에 대한 정리된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구체적인 논점을 중심으로 학생사회의 의견을 물었어야 한다. 대의원들의 소극적인 태도만을 문제 삼는 총학의 모습은 기조 해석의 책임을 학생사회에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 총학이 ‘정치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은 학외 문제 및 정치적 현안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기조의 타당성을 의심하게 한다. 총학 측은 앞으로 연대 요청 등의 논의 사안을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단과대학생회의 요청이 있을 경우 총운영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성이란 무엇인지, 관여하지 않겠다는 정치적인 현안이 어떤 것인지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건마다 행동 방향을 결정한다면 자칫 자의적 기준에 의한 판단이 될 수 있다. 더불어 개별 사안을 그때그때 판단하는 이런 방식을 총학의 ‘기조’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사실 비정치적인 학생회를 유지하겠다는 입장 자체가 정치적이다. 그런 총학이 아직까지 ‘정치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政治)의 정의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므로, 국가라는 공동체에 속하는 서울대도 그 안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R&D 예산 삭감과 같은 정치권의 조치가 학내 구성원들의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는 만큼 학내와 학외 사안, 정치적인 사안과 비정치적인 사안을 무 자르듯 구분하기 어렵다. 총학은 앞으로 정치성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며 학생회의 기조를 다시 면밀히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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