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대학생의 밥심을 찾아서 ①

밥 한 끼 먹으면 2만 원은 거뜬한 고물가 시대. 단돈 천 원이면 밥과 국, 그리고 세 가지 반찬까지 먹을 수 있다고? 그렇다. ‘천원의 식사’(천식) 얘기다. 서울대에서 2015년부터 본격 추진된 천식은 학생들의 얇은 지갑을 달래주는 한 줄기 빛이다. 그런데, 소문으로는 서울대 천식 사정이 좀 안 좋다는데… 천식 계속 먹을 수 있는 거 맞죠?

기자가 배식받은 19일 자 천원의 식사 점심 메뉴.
기자가 배식받은 19일 자 천원의 식사 점심 메뉴.

 

천 원의 행복으로 달래는 허기

햇빛이 쨍쨍한 19일(화) 오후 12시. 학생회관 식당의 줄은 건물 바깥까지 늘어서 있었다. 속칭 ‘천식’으로 불리는 천원의 식사를 먹기 위해서다. 5천 원 가량의 다른 메뉴에 비해 천 원의 메뉴를 받는 코너에는 유독 사람이 붐볐다. 이날의 메뉴는 ‘칠리깐풍 어묵잡채’. 천 원 치고는 풍족한 양에 맛도 있었다. 함께 천식 배식을 기다리던 문준성 씨(기계공학부·23)는 “아무래도 저렴하다 보니 거의 매일 천식을 먹는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서울대 천식의 연원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에 학생회관에서 학생들에게 단돈 천 원에 식사를 제공했던 것이 그 시작이다. 그러나 아무리 천 원이라지만 메뉴가 너무 부실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고, 1997년 이창우 명예교수(경영학과)의 주도하에 본부 차원에서 지원금을 제공해 식사의 질을 높였다. 이후 노동자 임금 인상 등의 문제로 사라졌던 천식은 2015년 6월 다시 부활했는데, 성낙인 총장이 취임 직후 ‘천원의 아침 식사’ 사업을 추진한 덕분이었다. 이후 이 사업은 2016년 3월 저녁으로 확대됐고, 2018년 1월부터는 점심까지로 확대돼 현재까지 이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천식 질 개선을 다룬 1997년『대학신문』기사.
천식 질 개선을 다룬 1997년『대학신문』기사.

천식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다. 이번 달 초 총학생회(총학)가 실시한 ‘관악캠퍼스 학식총조사’에서, 가격 대비 천식의 양·질의 만족도는 여타 학식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전체 응답자 중 약 85.7%의 학생이 가격 대비 천식의 양이 적당하거나 많은 편이라고 응답했으며, 약 93%의 학생이 가격 대비 천식의 질이 적당하거나 높은 편이라고 응답했다. 이용자 수도 더욱 늘었다. 작년 기준 천식의 한 해 이용자 수는 약 27만 명이었는데 올해의 경우 지난 1월부터 7월까지만 합산해 봐도 벌써 약 23만 명이 이용했을 정도다. 장학복지과 관계자는 “대면 캠퍼스 생활이 본격화됐을 뿐 아니라, 올해 천식이 기성 언론에서도 많이 화제가 되며 수요가 증가한 것 같다”라고 전했다.

 

서울대 천식 지원금은 야금야금 고갈되는 중?

이 말도 안 되는 가격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서울대 천식의 제조 원가는 한 끼당 3,361원이다. 학생이 1,000원을 지불하고 대학이 1,700원을 보조하면, 나머지 661원은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생협)이 부담하는 식이다. 대학이 보조하는 1,700원은 다시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차원의 지원금과 서울대 발전기금지원금의 후생복지기금에서 지출되는 금액으로 나뉜다.

그런데 이 후생복지기금의 수익 항목은 생협이 출연하는 적립금이 전부다. 즉 생협이 돈을 기부하지 않으면 천식이 어려워진다는 것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생협의 재정에 타격이 컸다. 코로나19로 매출이 줄어들며 생긴 적자 때문에 생협은 지난 2년간 적립금을 내지 못했다. 「2023년 대의원총회 회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에는 다소 회복돼 약 6억의 흑자가 나기는 했다. 그러나 2020년과 2021년의 적자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생협 측은 당분간 추가적인 적립금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장학복지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20억이었던 후생복지기금이 현재는 16억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천식을 위해 평균적으로 요구되는 예산은 1년에 약 5억. 그런데 올해 이용자 수의 증가 추이를 살펴볼 때 앞으로는 적어도 6억 이상의 예산이 필요할 전망이다. 게다가 후생복지기금은 학사과 행사 지원 등 다른 장학복지사업에도 사용된다. 이대로라면 천식을 위한 지원금은 1~2년 내 고갈될 확률이 높다. 한편 농식품부에서 천식 지원 명목으로 올해 서울대에 지급한 금액은 대략 6천만 원 정도다. 다만 농식품부가 지원하는 것은 천원의 ‘아침밥’ 사업에 대한 금액이기에, 점심과 저녁의 예산 부담은 오롯이 서울대 생협에 전가되고 있다.

 

천식 사업의 빈부격차… 기부금 많은 대학은 상대적 순항

천식을 제공하는 곳은 서울대뿐만이 아니다. 많은 타 대학이 아침 시간대에 국한해 천식을 운영 중이다. 농식품부는 2017년부터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주도하며 국내 몇몇 대학을 지원해 왔으며, 최근 1년 사이에는 이 사업을 더욱 확대하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지난해 9월에는 대학 총학 연대체인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에서 천원의 아침밥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3월과 4월에는 국민의힘 김기현 당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대표가 앞다퉈 천원의 아침밥 사업의 전국적 확대에 대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그 결과 전국 336개 대학 중 41개 대학이었던 천원의 아침밥 사업의 수혜 대상은 이번 학기부터 지원을 신청한 145개 대학 전부로 확대됐다.

그렇다면 타 대학에서는 서울대와 같은 재정적인 애로사항이 없을까?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타 대학 역시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천원의 아침밥 사업에 부침을 겪고 있다. 대학별로 천차만별인 재정 상황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한 끼에 천 원만을 대학에 지원하고, 학생도 한 끼에 천 원씩 낸다. 나머지 적자는 모두 대학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전대넷 김민정 집행위원장(서울교대 과학교육과·18)은 “정부가 모든 대학의 아침밥 사업에 일괄적으로 천 원씩 지원하다 보니 대학의 재정 상황별로 천식의 질에 차이가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재정적으로 열악한 대학들은 적자를 떠안을까 우려해 정부 지원을 아예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천식 사업을 잘 운영 중인 곳도 있다. 가령 성균관대와 고려대가 그렇다. 이곳은 동문들의 기부금을 중심으로 천원의 아침밥 사업 자금을 충당하고 있다. 성균관대는 2017년 2학기부터 학식 지원 모금 캠페인을 시작해 현재까지 약 8억 6천만 원을 지원하는 등 기부의 열기가 꾸준히 높다. 성균관대 천식의 한 끼당 원가는 4,500원. 학생이 내는 천 원을 제외하면 3,500원이 남는데, 농식품부의 지원금보다는 동문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되는 비율이 더 높다. 성균관대 학생지원팀 측은 “천원의 아침밥의 재정은 기부금으로 7~80%, 농식품부의 지원금으로 2~30%가 마련된다”라고 말했다. 고려대 역시 졸업생들의 기부금을 적극 활용한다. 고려대는 천식 한 끼당 4,500원~5,000원의 원가에서 2,500원~3,000원 정도를 모두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두 대학 모두 기부금 외에 대학본부 차원의 재원은 투입하지 않는다.

 

서울대, 천식에 기부금으로 ‘심폐소생술’

학생들이 천원의 식사를 배식받고 있다.
학생들이 천원의 식사를 배식받고 있다.

서울대 역시 천식의 재정 문제를 기부금으로 해결하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일명 ‘천원의 식샤’ 모금 사업이다. 총학 산하의 생협 태스크 포스(TF)는 천식을 위한 재원이 고갈 중임을 인지하고 지난 6월부터 본부와의 협의를 통해 관련 기금을 조성하고자 노력해 왔다. 총학이 (재)서울대학교발전기금과 협력한 결과 이번 달 천식을 돕기 위한 기금 사업이 시작됐고, 학생회관에는 소액기부에 용이한 기부 키오스크도 생기게 됐다. 목표 모금 금액은 총 10억 원. 이에 지난 19일에 ‘천원의 식사 100인 기부릴레이’ 행사가 개최됐으며, 이외에도 총학은 「서울대 총동창신문」을 통한 홍보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금 확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기부금에만 기댈 수는 없다. 기부금은 그 본질상 유동적이기에 재원을 안정적으로 예측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생협 TF를 총괄하는 박용규 부총학생회장(경제학부·20)은 “안정적인 기금 마련을 위해서는 본부의 금전적인 지원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부금이 모이는 정도를 확인한 후 천식 운영 자금 구조 확정을 위한 논의를 다시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학생들은 재정이 넉넉해지면 천식의 영양적인 측면이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관악캠퍼스 학식총조사’에서는 1,181명 중 495명의 학생이 천식의 영양 불균형을 지적한 바 있다. 문준성 씨는 “천식의 양과 질에 대체로 만족하지만, 식사에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오경철 씨(정치외교학부·19) 역시 “타 대학과 비교해 우리 학교 천식에는 고기 메뉴가 잘 등장하지 않아 아쉽다”라며 천식의 질적 제고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기자가 천식 줄에서 만난 학생들은 하나같이 천식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유서 깊은 서울대의 천식이 계속되도록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사진: 손가윤 사진부장 yoonpat2701@snu.ac.kr

삽화·인포그래픽: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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