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대학생의 밥심을 찾아서 ②

매 학기 바뀌는 학생식당 운영 상황. 캠퍼스에서 특정 식당이 사라지거나 생기는 현상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학기 채식 식당 한 곳이 문을 닫으며 갑자기 살기가 팍팍해진 사람들도 있다. 바로 지난 학기보다 곱절로 배를 주리게 된 ‘비건’ 학생들이다. 육류는 물론 해산물, 달걀 등도 입에 대지 않고 식물성 식품만을 섭취하는 사람을 뜻하는 비건. 그들은 캠퍼스에서 어떻게 끼니를 때우고 있을까?

 

감골식당 사라진 빈자리, 비건식 수요 없어 못 메운다?

올해로 개장 11주년을 맞은 학내 채식뷔페 감골식당이 이번 학기부터 휴점에 들어갔다. 운영을 담당하던 삼성웰스토리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 생활협동조합(생협)이 이를 대체할 외부 업체를 구하지 못해서다. 물론 이번이 첫 휴점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감골식당의 운영은 늘 불안정했는데, 특히 2020년과 2021년에는 여러 차례 휴점하면서 운영이 많이 축소됐다. 과거 감골식당은 매일 메뉴가 바뀌었고 학기와 방학 중 평일 점심·저녁에 모두 식사를 제공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로는 학기 중 평일 점심에만 문을 열 수 있었고 메뉴도 일주일에 세 번만 바뀌는 방식으로 달라졌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연달아 감골식당을 찾는다면 전날과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했던 셈이다. 이후 생협이 코로나19의 여파에서 많이 회복하자 구성원들은 감골식당의 정상화를 기대했지만, 현재 감골식당이 아예 휴점에 들어가 버린 상황에서 비건식의 확대는 더욱 요원해 보인다. 생협 측은 “내년 3월 오픈을 목표로 감골식당 재운영을 논의 중이지만 적정한 운영 업체를 찾기 힘들어 난관을 겪고 있다”라고 전했다.

감골식당을 대체할 새로운 비건 식당을 운영할 수는 없을까. 생협 측은 비건식에 대한 충분한 수요가 없어 힘들다고 말한다. 생협 관계자는 “요즘처럼 구인난이 심한 상황에서는 가능한 다수가 이용하는 코너를 운영하는 것이 우선이다”라며, 비건 학식을 마냥 확대하기에는 재정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감골식당의 수요만을 보고 서울대의 비건식 수요 전체를 어림잡을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대 비건 동아리 누비건스(nubegans)의 송태현 회장(경제학부·20)은 “감골식당은 아시아연구소(101동) 건물에 위치해 사회대 학생이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웠고, 가격도 7천 원에 육박해 부담이 컸다”라고 말했다. 학교 중앙의 접근성 좋은 식당에서 보다 저렴한 가격의 비건식을 제공한다면 그 수요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비건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비건 학식의 수요가 그리 적지 않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아직 국내 비건 인구와 관련한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한국채식연합은 2022년 국내 채식 인구를 150만~200만 명 사이로 추산했으며 채식인의 주류는 2030세대인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서울대 학생 내지는 국내 대학생들을 상대로 비건식에 대한 선호를 묻는 통계 역시 아직 없는 만큼 정확한 수요를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학기 비건식 제공, 학생들 “만족 못 해”

그렇다면 감골식당의 공백은 현재 어떻게 채워지고 있을까? 이번 학기 서울대에서 제공되고 있는 비건식은 두 종류. 220동식당의 ‘베지퀸’ 코너와 자하연식당의 식물성 식단 구독 서비스 ‘렛어스’다. 전자는 학식의 형태, 후자는 사전 주문을 받아 제공되는 도시락의 형태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것이 비건식 제공을 위한 임시방편 정도에 그칠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베지퀸에서 판매하는 비건 메뉴 중 하나
▲베지퀸에서 판매하는 비건 메뉴 중 하나
▲영업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남아 있음에도 대다수의 메뉴가 품절된 베지퀸의 키오스크.
▲영업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남아 있음에도 대다수의 메뉴가 품절된 베지퀸의 키오스크.

‘베지퀸’ 코너의 메뉴는 총 12가지인데 크게 샐러드류, 샌드위치류, 덮밥류로 나뉜다. 이 중 온전한 비건 메뉴는 4가지뿐이고 나머지는 유제품이나 해산물 등이 포함돼 있다. 박소이 씨(의류학과·19)는 “감골식당이 있을 때는 식단이 자주 달라졌지만 베지퀸은 메뉴 간 차이가 거의 없어 먹고 싶은 마음이 크게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품절이 잦아 원하는 메뉴를 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가격대도 높은 편이다. 기자 역시 평일 저녁 시간대 베지퀸을 찾았지만 12가지 메뉴가 전부 일시 품절 상태라 먹어볼 수 없었다. 더불어 비건 메뉴는 최소 6,500원에서 최대 8,000원에 육박하는데, 평균 5천 원 내외인 다른 학식 메뉴에 비해 비싸다.

▲렛어스에서 판매하는 비건 도시락 중 하나.
▲렛어스에서 판매하는 비건 도시락 중 하나.

채식 도시락 서비스 ‘렛어스’는 2~3일 전 제품을 주문한 뒤 자하연식당 2층에 위치한 전용 냉장고에서 수령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송태현 씨는 “일정에 맞춰 마음대로 먹고 싶은데, 렛어스 서비스는 편의성이 떨어져 이용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또한 렛어스 서비스도 도시락 하나에 만 원 가까이 할 정도로 비싸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인지 렛어스의 수요는 많지 않다. 생협 관계자에 따르면 3월부터 8월까지 팔린 채식 도시락의 개수는 하루 평균 4개에 불과했다.

드넓은 서울대 캠퍼스에서 현재 제공되는 비건식의 접근성이 좋다고 보기도 힘들다. 가령 제2공학관(302동)에 있는 공대생이 비건식을 먹고 싶으면 자하연식당까지는 30분, 220동식당까지는 40분을 걸어야 한다. 학외로 나가려면 버스를 타더라도 30분 이상이 소요되는 서울대의 특성상 학교 밖에서 비건 옵션을 찾아 식사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서울대에서 비건으로 산다는 것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비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2019년부터 비건을 지향한 신승은 씨(사회학과·19·졸)는 “재학 당시 점심을 아예 건너뛰거나 편의점에서 두유 등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한 끼라도 제대로 먹으려면 일단 학외로 나가야 하니, 저녁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일정을 소화하기도 어렵다.

비건 문화가 잘 정착된 국가에서 온 외국인 비건들은 서울대에서의 식사를 더욱 힘들어한다. 스리랑카 출신의 사마디 페르난도 씨(체육교육과 박사과정)는 “모국에는 값이 싸고 배달까지 가능한 비건 음식점이 많지만 서울대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다”라고 전했다. 콜롬비아에서 온 미겔 푸엔테스 씨(체육교육과 박사과정) 역시 “서울대에서 비건 식사를 찾는 일은 하늘에 별 따기”라며 “비건이라고 판매하는 거의 모든 음식에 유제품이 들어간다”라고 비판했다.

일부 학내 구성원에게 비건식의 확대는 단순한 선택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떠오르는 비건 라이프스타일은 채소만 먹고 사는 일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삶을 살아나가려는 사상에 가깝다. 박소이 씨 역시 동물 착취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비건의 삶을 선택했다. 그는 “우연히 공장식 축산업의 실태를 접한 것이 계기였다”라며, 캠퍼스 생활에 많은 불편함이 있음에도 비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송태현 씨는 “한 교양 수업을 들으며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했던 것이 비건 지향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목축업이 탄소 배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비건을 추구하면 환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이들에게 비건식 섭취는 신념의 문제이기에, 이들은 더욱 목소리 높여 비건 학식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타 대학도 사정은 매한가지

현재 국내 대학가에서 캠퍼스 내에 비건 전용 식당이 있는 곳은 동국대와 삼육대뿐이다. 동국대는 학내 식당 중 하나인 ‘채식당’에서, 삼육대는 모든 학생식당에서 비건식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이 둘은 모두 대학 재단의 종교상 이유로 비건식을 제공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즉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국내에 비건 학생식당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반 학생식당에 비건 메뉴를 조금씩 도입하는 곳도 있지만 현재 많은 대학에서 비건식의 공급 상황은 불안정하다. 성신여대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비건 학식의 명맥이 끊겼고, 중앙대는 2021년 2학기 학생식당에서 비건 메뉴를 제공했으나 이듬해 1월 조리 인력 부족을 이유로 중단했다.

이에 서울대를 비롯해 연세대·서강대·고려대 등에서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비거니즘 모임을 조직해 비건 학식 도입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서울대 누비건스는 “생협 측에 접근성이 좋은 학생회관 식당에서 비건식을 제공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지만, 재정난과 인력난에 막혀 관철되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한편 고려대의 비건 동아리 뿌리:침은 “지난해 총학생회에 비건 학식 도입을 요구해 논의가 시작됐으나 총학생회 집행부가 교체되며 전부 무산됐다”라고 말했다. 현재 고려대 비건들의 선택권은 학생회관 식당의 비빔밥 메뉴에서 계란을 빼달라고 요청하거나 샐러드를 비건 옵션으로 변경해 먹는 정도에 그친다.

반면 해외 대학 중에서는 오히려 육류 메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비건 문화가 발달한 곳이 많다.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는 비건식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늘어나 관련 식단이 확대됐는데, 2021년부터는 메뉴의 96%가 채식으로 전환됐을 정도다. 애초에 국가가 비건식의 도입을 정책적으로 보장하기도 한다. 2017년 대학을 포함한 공공 기관에서 의무적으로 비건 식단을 제공해야 한다는 법률을 통과시킨 포르투갈의 이야기다.

학생들은 해외처럼 비건식을 활성화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비건 학식을 조금씩이나마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송태현 씨는 “정말 먼 얘기겠지만 학내에서 제공하는 모든 학식에서 비건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사마디 페르난도 씨 역시 “서울대 내 모든 학생식당에서 비건 옵션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신승은 씨는 “본부가 주도적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면 비건 학식 도입이 더욱 원활해질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박용규 부총학생회장(경제학부·20)은 “비건 학식을 마냥 확대할 수 없는 생협의 입장에 공감한다”라면서도 “비건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측면에서 비건식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학내 다양성을 존중하는 식문화를 위해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사진: 박선영 기자 leena1208@snu.ac.kr 

최수지 기자 susie2003@snu.ac.kr

인포그래픽: 김예라 기자 siksik092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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