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공익소송 발목 잡는 소송비용

전윤선 씨(여행작가·56)는 세 번 좌절했다. 휠체어가 올라가기 어려운 지하철역 승강장 앞에서 한 번, 그래서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또 한 번, 승소한 서울교통공사의 소송비용까지 내라는 소송비용 청구서를 받고 또 한 번. 500만 원이 넘는 소송비용 청구서를 받아든 전 씨는 3심을 포기하고 ‘몇 달은 굶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전 씨 혼자만을 위한 소송이 아닌, 장애인의 안전한 대중교통 사용을 위한 공익 목적의 소송이었지만 패소의 부담은 전 씨가 오롯이 떠안게 됐다.

지하철역 승강장 앞에 선 전윤선 씨
지하철역 승강장 앞에 선 전윤선 씨

 

사회 변화의 부싯돌, 공익소송

전윤선 씨가 제기한 소송과 같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기된 소송을 공익소송이라 통칭한다. 공익소송은 아직 제도적으로 정의되지 않아 그 범위와 적용이 일부 모호하지만, 소송의 영향이 사회 다수의 확산 이익을 갖는 소송이라는 넓은 개념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05년 사법개혁위원회에서는 공익소송을 “약자 및 소수자의 인권보호,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구제 등을 통하여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송”이라고 제시했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의 피해 장애인들이 국가와 신안군을 상대로 낸 소송, 남도학숙 성희롱 피해 직원이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운영하는 남도학숙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등이 공익소송의 통상적인 범주에 든다.

공익소송은 소의 제기만으로도 해당 의제에 관한 사회적인 환기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어 가치가 있다. 2011년 3,5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네이트·싸이월드 개인정보 유출 사건 당시 피해자들은 행정안전부 장관과 구청장들을 상대로 주민등록번호 변경신청 거부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하지만 이후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대한 공론화가 일어나 헌법소원이 이뤄졌고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2016년 주민등록번호 변경 제도가 도입됐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미연 변호사는 “사회 다수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보장받지 못했던 부분을 공익소송을 통해 알리고 개선할 수 있다”라며 “공익소송은 사법적 구제 절차인 동시에 사회 운동의 수단”이라고 공익소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소송비용 앞에 작아지는 공익소송

공익소송이 이런 가치를 지녔음에도 전윤선 씨가 많은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했던 것은 공익소송에도 예외 없이 패소자 부담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민사소송법 제98조는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한다’라며 별다른 예외 없이 패소자 부담주의를 규정하고 있으며, 행정소송법에 관련 내용이 없어 행정소송도 민사소송법을 준용한다. 이는 패소자에게 소가 제기된 상황의 책임을 물어 승소자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소가 무분별하게 제기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패소자가 내야 하는 소송비용 중 대부분은 변호사보수*가 차지한다. 실제로 소가*가 1억 원인 소송에서 변호사보수는 2018년 산입 비율이 조정된 후 480만 원에서 740만 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사법정책연구원 유형웅 판사는 “변호사보수가 소송비용의 70~80%를 차지해 온 것을 감안하면 확대된 변호사보수로 인해 패소자의 소송비용 부담이 많이 커졌다”라고 진단했다. 

2018년 변호사보수 확대를 기점으로 패소자 부담주의가 공익소송을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공익소송이 다루는 사안의 특성상 많은 경우 사회적 취약계층이 공익소송의 당사자가 되는데, 이들에게는 소송비용의 증가가 더욱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조미연 변호사는 “장애인 연금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하던 의뢰인이 장애인 등급제와 장애인 연금제도의 괴리에서 피해를 봐 행정소송을 제기하려다 소송비용이 부담돼 소송을 포기한 적이 있다”라고 의뢰인 상담 경험을 전했다. 조 변호사는 “복지제도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꼭 제기됐어야 할 소송이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공익소송의 특성상 패소 가능성도 높아 당사자들은 더욱 망설인다. 조미연 변호사는 “공익소송은 대부분 권력기관에서 보장해야 하는 권리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해 권리 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사안을 다룬다”라며 “선례도 없을뿐더러 침해된 권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진행되는 소송은 원고에게 불리하다”라고 전했다.

이런 와중에 많은 공익소송은 정보력이 월등한 국가나 지자체, 혹은 대기업을 피고로 한다는 사실이 소송 시작의 걸림돌이 된다. 성남시를 상대로 성남시 의료원 감사 결과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패소한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박재만 사무처장은 당시의 소송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했다. 지자체와 지역 병원 간의 유착 관계를 밝혀 이들을 상대로 공익소송을 준비 중인 김인규 씨(제조업 종사자·47)도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패소할 때 청구될 소송비용을 생각하면 선뜻 나서기 어렵다”라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박호균 변호사는 “패소에 따르는 비용 부담 때문에 공익소송이 위축돼 사회 변화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라며 “이는 헌법 제26조에 보장된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패소자 부담주의의 맹점을 보완하고자 여러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 문제다. 대법원 규칙인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변호사보수를 소송비용에 산입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법원이 상당한 정도까지 감액 산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소송비용 확정 절차 실무에서는 이 규정이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유형웅 판사는 “소송비용을 일차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사법보좌관인데, 사법보좌관이 소송비용 감면 여부를 판단하는 재량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라며 “대부분 관습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유명무실한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지자체나 공공기관은 공익소송의 경우 소송비용 회수를 포기한다는 자체 규정을 두고 있기도 하지만, 이 역시도 잘 활용되지 않는다. 일례로 ‘성남시 소송사무 처리 규칙’은 공익소송 등 상대방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 적정하지 않다고 인정해 기관장의 승인을 얻은 경우 소송비용 회수를 포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박재만 사무처장은 “성남시에 공익소송에 대한 소송비용 회수 포기 조항이 있지만 성남시 측은 소송비용을 청구했다”라며 “1년 치 회비에 해당하는 1,300만 원을 내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성남시 법무과는 “소송비용의 회수를 포기 ‘할 수 있는’ 것이지 의무가 아니며, 공익소송을 판단하는 구체적 기준은 없다”라고 답했다. 이는 성남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시 소송비용사무 관계자도 “공익소송이라는 이유로 소송비용 회수를 포기한 사례는 아직 없다”라며 “공익소송에 대한 판단 기준도 아직 논의된 바 없다”라고 밝혔다.

*변호사보수: 실제 변호사 비용과는 별개로 소가에 따라 법적으로 보장되는 변호사 수당. 실제 변호사 비용이 더 많더라도 패소자는 소가에 따른 변호사보수를 지불하게 된다.

*소가: 원고가 소를 제기해 피고로부터 얻고자 하는 금액.

 

돈 걱정 없이 공익소송하려면

소송비용 때문에 공익소송이 위축되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민사소송법에 패소자 부담주의의 예외를 명시하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인권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공정한 경쟁 및 이에 준하는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관한 사건인 경우 패소 당사자의 소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규칙의 상위법인 법률에 소송비용 감면이 가능한 경우를 명시해 일정 정도의 강제력을 부과하고 법원이 적극적으로 소송비용을 감면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개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그는 “소송비용 확정 결정 절차에서 공익성을 판단하고, 공익성이 판단된 경우 승소자의 소송비용은 국가가 책임진다”라고 세부 구상을 이야기했다. 

한편 공익소송에 한해 패소자 부담주의에 예외를 두는 것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익의 개념이 모호할 뿐 아니라 이를 명분 삼아 무분별하게 소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원열 교수(법학과)는 “모든 사회 제도는 공익을 위한 것이고 개인 간의 민사소송조차도 추후 타인의 행위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는 공익적이라 할 수 있다”라며 “공익소송을 어떤 범위의 사건에 적용할지 애매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제도적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결론을 주장하면서 사회적 명분을 내세우는 이들이 소송을 남발하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형웅 판사는 또한 “소가 무분별하게 제기될 경우 실무적인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공익소송에서 패소자 부담주의의 예외를 두는 법제화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답한다. 가령 영국은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패소자 부담주의를 채택하지만, 비용제한제도를 둬 공익소송에 대해서는 패소자 부담주의에 예외를 두고 있다. 이때 영국은 공익소송을 △소송에서 다루는 사안이 일반적인 대중에게 중요한 경우 △공익적인 차원에서 해당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 경우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송이 적합한 수단으로 판단될 경우로 규정한다. 조미연 변호사는 “영국의 경우 오랜 기간 비용제한제도를 실시하면서 소송의 공익성에 대한 판례를 쌓아왔다”라며 “판례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도 어렵지 않게 공익의 개념을 확립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그는 “공익의 개념이 명확해질수록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소송은 소송비용 확정 절차에서 공익소송으로 분류되지 않을 것이기에 공익소송과 남소는 양립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소송비용 때문에 공익소송이 위축되는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환경‧장애인‧소비자 관련 법 등 개별 법률에서 소송비용 면제를 규정하는 등의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는 “민사소송법에 일괄적으로 예외를 규정하기에 앞서 개별 법률에서 패소자의 소송비용 면제를 규정해 그 효과와 부작용을 검토해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공익적 성격의 장애인 권리구제소송에 대해 패소자의 소송비용을 면제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발의안에 따르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공익성을 판단해 소송비용 감면 적용 범위가 보다 명료하다. 

한편, 공익소송 당사자를 제도적으로 금전 지원하는 방안도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전원열 교수는 “공익소송을 지원하는 기금을 만들어서 소송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경기도의회는 지난달 공익소송 지원 조례를 입법예고 하면서 공익소송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윤선 씨와의 송사 이후 서울교통공사는 자동 안전 발판을 확대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전 씨는 “패소했더라도 내 소송이 이런 변화의 계기가 됐다면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공익소송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소수자의 권리와 시민의 이익을 상기시켜 건설적인 변화를 이끈다. 소송비용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공익소송의 가치가 빛이 바래지 않기를 바란다.

 

인포그래픽: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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