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장애인과 예술 ③ 영화감독 주명희 씨

 사람들에겐 각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변하기 마련이다.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시선은 큰 차이가 난다. 아무렇지도 않게 올랐던 계단이 걸음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겐 에베레스트로 보이고, 평범한 길이더라도 휠체어를 쓰는 이들에겐 험난한 ‘오프로드’가 되기도 한다. 이 시선의 차이를 극복하고, 장애인의 시점을 느껴볼 수 있는 영화를 찍는 주명희 감독을 만났다.

▲ 인터뷰 중 주명희 감독이 환하게 웃는 모습
사진: 김희엽 기자 hyunkim416@snu.kr

◇영화, 구원의 손길을 내밀다=주명희 감독은 지난 2007년 교통사고를 당해 골반을 다치고,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오른쪽 다리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다리를 잘라내고 의족을 착용해야 했다. 결국 그는 절단장애 판정을 받게 됐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장애는 주명희 감독에겐 큰 충격이었다. 주명희 감독은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태권도장을 운영했을 만큼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며 “다리를 절단하면서 외부 활동에 큰 제약이 생기자 절망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힘들었던 시기를 회상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주명희 감독은 장애인으로서 좌절하기보단 새로운 삶을 살자고 다짐했고, 이를 위해 절단장애인 모임에 참여했다, 비슷한 처지의 절단장애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주명희 감독은 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짤막한 동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법을 알려주는 ‘정보화협회 영상교육’에 참여했다. 교육을 통해 영상 제작에 관한 기초지식을 얻은 주명희 감독은 첫 번째 영상으로 ‘절단장애 멘토링 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멘토링 영상을 통해 절단장애인들이 의수, 의족 착용법을 비롯한 일상생활에 필요한 요령을 배우길 원했다”며 영상 제작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더 이상 짧고 단순한 내용의 멘토링 영상이 아닌 장애인의 시점을 경험해볼 수 있는 장편 영화를 제작하고 싶어졌다”고 영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파인더로 들여다본 장애=주명희 감독의 데뷔작 「파인더」는 사진기에서 촬영 범위나 구도, 초점 조정의 상태 따위를 보기 위해 눈으로 들여다보는 카메라의 부품에서 제목을 따왔다. 그는 “‘파인더’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사진을 배우는 과정을 빗댄 말”이라며 “동시에 장애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제목의 의미를 설명했다.

▲ 영화 '파인더'의 한 장면
사진제공: 주명희 감독

영화는 자동차 생산 라인에서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주인공 ‘성준’이 장애인 사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마침내 전시회를 열게 된다는 이야기다. 성준과 그의 절단장애인 동료들을 통해 사회가 장애인에게 보내는 편견의 시선들을 영화는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세 사람은 장애 때문에 사회에서 차별받았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집들이 장면이다, 사진관 스튜디오 보조를 지원한 성준에게 감독은 “다리가 불편하면 다른 어시스턴트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동안 너는 뛰는 시늉이라도 해라”고 말한다. 자신은 장애로 인한 작업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도와줄 수 없으니 성준이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이에 성준은 동료들에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도와가며 해결해야 하는 사항까지 무조건 장애인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사회의 편견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주명희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진짜 장애인의 모습’이다. 그는 “흔히 영상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장애인들은 자신의 장애를 스스로 극복했다는 점이 강조된다”면서 “역경을 극복했다는 이야기보단 장애인들이 현실을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장애인의 삶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다큐멘터리 방식을 채택했다. 따로 연출을 하지 않고 성준과 주변 인물들의 일상을 그대로 담아 최대한 자연스러운 장면이 나오도록 노력했다.

촬영이 쉽지는 않았다. 의족 사용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움직이면서 촬영하는 무빙샷이 불가능했다. 다리가 몸을 충분히 지지하지 못해 무거운 카메라를 들 수 없었고 소형 카메라만 사용해야 했다. 주명희 감독은 “산행을 하는 장면을 도저히 같이 올라가며 촬영할 수 없어 비장애인의 도움이 필요했다”고 떠올렸다.

▲ 영화 '파인더'의 장면
사진제공: 주명희 감독

많은 어려움이 따랐지만, 오히려 주명희 감독의 장애는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인 배우들과 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장애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회의 모습을 영화에 녹여낼 수 있었다. 그는 “같은 장애인이다보니 차별대우를 받고 힘겨워하는 모습에 비장애인보다 깊이 공감할 수 있다”며 “장애인의 불편한 점을 배우와 서로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주명희 감독의 영화는 장애인의 심리와 일상을 솔직하게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아 2013년 제1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상영됐다.

◇장애영화,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첫 작품이 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지만, 장애인 영화감독으로서 주명희 감독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그는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장비, 인력 면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데 지원금을 받는 일이 만만치 않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주명희 감독은 많은 예술기금 단체에 제작비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장애인 예술에 대한 지원금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거나, 비장애인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파인더」를 촬영하는 데 지원된 금액도 영화제 측에서 지원했던 100만 원뿐이었다. 주명희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 천만 원에서 삼천만 원대인 것을 고려해 볼 때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고 말했다.

주명희 감독은 “열악한 환경이지만 관객들이 장애인의 시점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만큼은 관객들이 장애인이 되어 볼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인권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주명희 감독. 오늘도 그는 가장 진실된 시선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영화를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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