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갈 곳 잃은 연구자의 양심, 서울대 연구윤리의 길을 묻다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은 연구자들에게 연구윤리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이에 따라 이듬해 「서울대학교 교수윤리헌장」이 선포되고 연구윤리의 체계적인 관리·감시를 위한 제도가 마련됐다. 그러나 2016년 서울대는 36개 국공립대학을 대상으로 시행된 연구 및 행정 분야 청렴도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인 5등급을 기록했으며 최근까지도 연구 조작, 표절 사건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연구윤리 연재를 통해 연구윤리의 3대 하위분야인 △연구진실성 △동물실험윤리 △연구안전의 순서로 실태를 돌아보고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향을 찾아본다.

동물실험윤리는 실험 과정 중에 사육되는 동물들의 고통과 불필요하게 희생되는 동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윤리다. 서울대는 2006년 동물실험윤리위원회(동실위)를 설치하고 동물 실험을 진행하는 연구자들의 윤리의식 고취와 윤리적인 실험 진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생명동물자원연구센터장 강병철 교수(의학과)는 “서울대의 경우 ‘동물보호법’에 실험동물 관련 조항이 생기기 전부터 국제적 기준에 맞춰 동실위를 운영해왔다”며 “2008년에 ‘동물 실험의 3R 원칙’이 법제화되며 동실위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고 전했다. 동물 실험의 3R원칙은 △동물 실험을 대신할 방법을 고민하는 대체의 원칙(Replacement) △최소한의 개체 수를 실험에 사용하는 절감의 원칙(Reduction) △절차를 정교화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정교화의 원칙(Refinement)이다.

◇고통받는 동물들, 외면하는 사람들=현재 학내에는 수의과대학, 약학대학 등 6개 단과대학과 유전공학연구소, 의생명동물자원연구센터 등 2개 연구소에서 동물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 동실위 위원장 박재학 교수(수의학과)는 “기관 실험실 외에 연구자 개인적으로 수행하는 동물 실험을 위한 실험실까지 포함한다면 학내 총 18개소에서 동물들이 실험을 목적으로 길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교내에 많은 동물 실험실이 운영되고 있지만 동물실험윤리를 위반하는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반기별로 동실위에서 실시하는 정기 점검에서 지적되는 대표적인 문제엔 동물 실험실 관리 소홀이 있다. 일부 실험실에서 실험계획서와 운영 매뉴얼을 제대로 갖추지 않거나 처치실*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실험을 진행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동물을 사육하는 실험실은 사육환경과 동물의 특성에 맞게 특화된 SOP(표준행동절차)*를 문서화해서 보유하고 있어야 하지만, 이를 따르지 않는 실험실도 있다. 의생명동물자원연구센터 사육부장 제정환 교수(의학과)는 “일부 실험실은 범용 표준행동절차를 그대로 베껴서 보여주기식으로만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며 “동물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표준행동절차를 자세히 작성하고 지속해서 최신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일부 시설에서 실험동물의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비윤리적인 사육이 이뤄지는 문제도 제기된다. 동물의 특성과 실험 목적에 맞게 동물에게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고 동물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서는 전담 수의사가 필요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대다수의 실험실에 수의사가 배치되지 못하고 있다. 관악캠퍼스에 있는 15개 동물 실험실 중 전담 수의사가 있는 곳은 실험동물관리원과 약학대학 2곳에 불과하다. 박재학 교수는 “예산 지원이 없다면 소규모의 개인 실험실은 현실적으로 실험 동물의 관리만을 위해 따로 수의사나 직원을 채용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잘못된 사료관리, 활동량이 많은 비글 견을 위해 필요한 운동 프로그램의 부재 등으로 실험동물의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 위반 사례가 매 학기 확인되고 있다.

수의대처럼 동물 실험이 자주 이뤄지는 곳이나 실험동물자원관리원(69동)과 같이 실험동물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곳에서조차 공간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강병철 교수는 “실험용 쥐 3,000마리당 관리 인력이 9명이 필요하다고 할 때, 현재는 그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본부는 공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험동물자원관리원 확장 재건축 공사를 하고 있으나 여전히 인력 부족 문제는 남아있다. 제정환 교수는 “기반 시설 투자가 이뤄진 것은 바람직하지만 인력 확충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소한의 희생을 위한 노력=전문가들은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동물 실험을 전담하는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실험 관리를 위해 체계적인 지원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강병철 교수는 “동물 관리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연구 당사자가 실험시설을 직접 운영하는경우 동물 실험 윤리 준수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며 “연구자와 동물 관리 전문 담당자가 관련 업무를 명확하게 분담하는 체제가 정착돼야 한다”고 연구와 실험동물 관리 업무의 분리를 강조했다. 실제로 연건캠퍼스에 위치한 의과대학 실험동물실이나 의생명동물자원연구센터에선 동물을 특성과 연구 목적에 따라 전문적으로 관리하며 연구팀의 요청에 맞춰 적절히 실험동물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전임상실험부는 동물실험을 위한 전문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다.

업무 체제 정비와 별개로 실험동물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임상 실습모형을 도입하기도 했다. 2014년 수의대는 5,000만 원을 투입해 구매한 개와 고양이 등의 임상 실습모형을 학부생 실습 강의에 사용하고 있다. 박재학 교수는 “아직 동물을 실제로 진료해 본 적 없는 학생들이 실습 모형을 이용해 채혈, 기도 삽관 등의 실습을 해보는 데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모형이 실제 동물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다양하고 실제적인 교육에 모형 사용을 확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수의대에선 실험동물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실습모형을 활용하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대동물병원)

동물 실험 윤리는 실험 동물의 생명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당위만으로도 필수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윤리다. 더불어 동물실험윤리는 실험 결과의 신뢰성, 정확성과도 직결된다. 동물이 건강하게 살기에 적합하지 못한 환경은 동물의 건강에 악영향을 초래할 뿐 아니라 실험군과 대조군의 비교를 어렵게 하고 연구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강병철 교수는 “불가피한 희생이지만 그나마 동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하고 결과물에 대해서 헛된 희생이 되지 않도록 투자하는 것이 최소한의 윤리”라며 “윤리를 준수하는 것은 정확하고 객관적인 실험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전했다.

*처치실: 병원이나 실험실에서 주사, 소독, 봉합 따위의 치료나 실험에 필요한 처치를 하는 공간
*SOP(표준행동절차): 한 조직에서 업무 시 발생 가능한 상황에 대해 미리 대응 절차를 정리한 것

사진: 윤미강 기자 applesour@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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