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일 교수, 인생을 말하다
라종일 교수, 인생을 말하다
  • 김용훈 기자
  • 승인 2019.05.1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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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만나드립니다 | 라종일 교수를 만나다

만나고 싶어도 개인적으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학기 『대학신문』은 독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독자가 직접 만나보고 싶은 사람에게 독자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대신 만나드립니다’를 운영한다. 이에 지난 3월 한 달간 독자의 제보를 받아 인터뷰를 준비했으며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영상 콘텐츠를 구비했다.

한 학생이 『가장 사소한 구원』의 저자 라종일 교수의 연륜을 엿보고 싶다는 제보를 남겨 『대학신문』이 그를 만났다. 라 교수는 경희대, 한양대의 교수였고, 우석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국가정보원 차장,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보좌관, 주일본 대사를 지냈다. 이처럼 라종일이라는 이름 뒤에는 수많은 이력이 따른다. 인터뷰에서는 학문에 대한 라종일 교수의 애정을 확인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잘 알려지지 않은 면면 역시 볼 수 있었다. 『대학신문』은 학자 라종일이 아닌 학생, 정치인, 동화 작가로서의 라종일을 조명한다.

*기술적 문제로 현재 영상 업로드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학생, 라종일=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라종일 교수 또한 한때는 학생이었다. 1960년대의 라종일은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청년이었다. 그는 “학부생 때 문리대*에서 철학, 인문학, 자연과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어 공부할 수 있었다”며 영문학, 독일 철학 등 다양한 학문에 흥미를 가졌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라종일 교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책이었다. 그에 따르면 여학생과 데이트를 나가 헌책방에서 좋은 책을 구하러 다닐 정도였다. 라 교수는 “인사동이나 청계천 근처 헌책방에서 책을 뒤지거나 유학을 간 형, 누나에게 책을 보내주길 부탁하곤 했다”며 보고 싶은 책을 찾는 데 열중했던 때를 추억했다.

그럼에도 라종일 교수는 학창 시절에 아쉬움이 남는다며 “읽고 싶은 책을 구하려 애쓰고 장학금을 받아 유학을 갈 방법을 찾는 등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라 교수는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라는 존 F. 케네디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는 “특권을 누렸음에도 다른 이에게 국가를 위해 봉사하라고 한 케네디의 모습이 못마땅했다”면서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국가라는 거대한 차원이 아니라도 공동체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20대로 돌아간다면 빈부 격차나 환경 파괴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후배들이 자신과 같은 후회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20대 젊은이들에게 시야를 넓히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정치인, 라종일=라종일 교수는 공공의 문제를 고민해야 했다는 후회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선거 캠프에 참여한 것이 그 시작이다. 정치에 참여한 계기를 묻자 그는 “당시 한국 사회에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행하려 했다”고 답했다. 이어 라 교수는 “민주화가 뿌리내릴 사회적인 여건이 무르익더라도 이를 현실로 구현할 리더가 필요했다”며 “그 리더에 적합했던 사람은 김대중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현실적으로 선거에서 당선돼 민주화를 이끌 역량을 가진 이는 호남, 중산층, 민주화 운동 세력의 지지를 받는 김대중 후보밖에 없었기에 그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라종일 교수는 “다음 대선에서도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고 그가 선거에서 승리하도록 도왔다”며 “김대중,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치에 참여했고 그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렇듯 라 교수가 정치에 입문하게 했던 뚜렷한 목적은 국회의원직과 관련한 그의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국회의원을 하라는 주변의 권유가 많았지만 국회의원직을 사양했다”며 “대통령 당선을 돕고도 국회의원 직 하나 못 얻을 바엔 그만두라는 말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에 따르면 실제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자 화를 내며 김대중 대통령을 떠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라 교수는 “국회의원을 하려고 정치에 참여한 것이 아니었기에 내심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또는, 동화작가=정치인이 동화 작가일 것이라고는 쉬이 상상하기 어렵다. 라종일 교수는 “내가 일본 대사를 지내던 때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 역시 이에 궁금증을 표하기도 했다”며 “그는 내게 정치인임에도 동화를 쓰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고 말했다.

라종일 교수는 용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에서 동화를 시작했다. 그는 서양과 동양이 용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꼈다. 일반적으로 서양은 용을 대결의 상대로 인지하는 데 반해 동양은 용을 숭상하고 두려워한다. 라종일 교수는 “이내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설화처럼 동양에도 용과 맞서 승리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며 “설화에서 마을 사람들이 용을 물리치기 위해 서양처럼 창을 들고 맞선 게 아니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 점이 독특했다”고 말했다. 설화에서 흥미를 느낀 그는 삼국유사엔 몇 줄에 불과한 수로부인 설화를 동화로 재창조했다. 이 외에도 라종일 교수는 처용 설화에서 착안해 처용의 유서를 창작했고, 그를 비롯한 동화 몇 개를 한 데 묶어 『Fairy Tales of Ra Jong-Yil』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출간했다. 그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나를 동화 작가로 알아주지 않는 게 유감”이라고 전했다.

라종일 교수는 “공직 대신 학문을 업으로 삼으라고 종용해주신 아버님의 은혜가 크다”며 “일생 동안 공부를 할 수 있어 참 좋았다”고 지난 삶을 반추했다. 여러 직업을 가진 라종일 교수지만 결국 그는 학자로서의 본질을 잊지 않은 것이다. 라종일 교수는 “세상에 좋은 책이 참 많다”며 “아마 죽는다면 그 책들을 다 못내 읽은 게 유감일 것 같다”고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문리대: 문리과 대학을 줄여 이르는 말로 인문학과 사회 과학, 자연 과학을 가르치는 단과 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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