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우리 대학 교육이 달라졌어요 ② 공유대학

대학이 변하고 있다. 소속 대학이 제공하는 수업을 듣는 전통적인 형태를 넘어 다른 학교의 강의는 물론이고 나아가 여러 대학이 공동으로 제공하는 커리큘럼을 수강할 수 있는 ‘공유대학’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융합학과에 이어, 대학 교육 변화 연재 두 번째 편에서는 공유대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톺아봤다. 

대학 간 새로운 연결고리, 공유대학

공유대학은 여러 대학이 서로의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교육 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운영하는 사업이다. 기존의 자원 공유는 주로 대학 간 일대일 학점교류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에 비해 공유대학에서는 참여 대학들의 강의는 물론, 공동 개발한 커리큘럼을 제공해 수업권을 더욱 확대한다. 공유대학의 초기 모델은 서울총장포럼이 2018년에 서울시 지원을 받아 만든 ‘공유대학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을 통해 △학점교류 전산화 및 확대 △새로운 융합과목 제공 △창업지원 인프라 공유 등이 계획됐다. 시행 이후 수업이 온라인으로 제공됐으나, 현재는 예산 부족과 참여 저조로 사업이 중단됐다. 서울총장포럼 전 사무국장 김대종 교수(세종대 경영학부)는 “각 학교의 좋은 수업들을 제공해 상생하자는 취지였다”라며 “서울시 예산으로 플랫폼을 만든 후 교육부 지원 없이는 1년에 3억 정도 드는 운영비를 조달할 곳이 없어 운영이 중단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유대학을 향한 교육계의 움직임이 멈춘 것은 아니다. 신기술 분야의 인재 양성이나 지역사회 내 대학의 역할 확대와 같은 사회적 필요에 부응한 공유대학 사업들이 새로이 출범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디지털 신기술 인재양성 혁신공유대학’(혁신공유대학) 사업을 시작하며 공유대학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혁신공유대학 사업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차세대반도체 △미래자동차 △바이오헬스 △실감미디어 △지능형로봇 △에너지신산업의 8개 신기술 분야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각 분야를 담당하는 8개 혁신공유대학에 서울대를 비롯해 총 46개교가 참여했으며, 서울대는 빅데이터와 차세대반도체 혁신공유대학의 주관 대학, 에너지신산업 혁신공유대학의 참여 대학으로 선정됐다. 본부 혁신공유대학 총괄사업단장인 여정성 교육부총장은 “이전에도 대학 간 교육 자원을 공유하는 플랫폼은 존재했지만, 혁신공유대학 사업은 개인의 관심사를 넘어 신기술을 중심으로 대학과 사람을 연결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뿐만 아니라 산업체, 연구기관, 학회를 포함한 민간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에서는 공유대학을 위한 학사제도 개편도 동반됐다. 입학 시 모집단위가 아닌 교육조직은 둘 수 없던 기존의 학칙을 개정해 ‘혁신공유학부’를 설치한 것이다.

특정 지역의 대학들이 주도적으로 연합해 운영하는 공유대학 사업도 확대되는 추세다. 울산광역시와 경상남도가 함께 주관하는 USG공유대학, 대전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충청남도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DSC공유대학이 대표적이다. 해당 지역의 혁신플랫폼 산하에서 운영되는 이 공유대학들은 지역 산업체의 수요에 맞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또한 공유대학은 지방 소멸 극복 방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방에 자리 잡은 기업체가 수도권에서 인재를 채용하면 그들이 오래 머무르지 않고 다시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상황 속에서, 지역 산업체들을 지탱하기 위해 수요에 맞는 지역인재를 양성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울산·경남지역혁신플랫폼 대학교육본부장 손정우 교수(경상국립대 물리교육과)는 “학생들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한 대학의 쇄신만으로는 부족했다”라며 “공유대학을 통해 기업에 필요한 신기술 분야 인재를 양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공유대학,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USG공유대학과 혁신공유대학은 새 학기를 맞아 더욱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USG공유대학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각자의 학교에서 공유대학 과목을 수강신청한다. 공유대학 커리큘럼상의 과목이 여러 대학에 동일하게 개설되고, 실제 수업은 타 대학 교수자가 진행하는 식이다. 혁신공유대학에서는 학점교류신청을 통해 타 대학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공유대학 수업은 주로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중이다. USG공유대학 지능로봇 전공을 수강 중인 곽동욱 씨(경상국립대 전자공학과·17)는 “학생들이 먼 거리를 이동해 타 대학에서 수업을 듣기 어려워, 정규학기 수업은 전반적으로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공유)제너레이티브 디자인’ 과목을 가르치는 정승영 강사(디자인과)는 “코로나19나 거리 문제로 출석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하이브리드 수업을 계획 중”이라며 “공유대학을 통해 비대면 수업 시스템이 계속 발전한다면 수업의 질도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의 구성과 전달 방식을 혁신하려는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빅데이터 혁신공유대학은 평소라면 한꺼번에 진행됐을 강의를 15~30분 단위의 동영상 콘텐츠로 쪼개 구성하도록 요구한다. 이런 독립적인 교육 개체 콘텐츠를 모듈이라 하며, 각각의 모듈은 공유대학 시스템 내에서 데이터화될 예정이다. 빅데이터 혁신공유대학 사업단장인 김홍기 교수(치의과학과)는 “콘텐츠가 많이 누적되면 레고 블록을 쌓듯이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는 내용의 모듈을 조합해 새로운 교과목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교수자도 필요한 부분마다 모듈을 활용해 강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의 이목을 끄는 부분은 학위다. 공유대학 전공 이수를 추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아직 공유대학 과정을 완전히 이수한 학생이 나오지 않았기에 그 학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확실치 않으나, 개인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학위를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존 다전공 이수 방식뿐 아니라 비교적 적은 학점으로 마이크로디그리(Micro Degree)*를 취득하는 방안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서울대는 마이크로디그리와 같은 교과인증과정을 둘 수 있도록 학칙을 개정하기도 했다. 차세대반도체 혁신공유대학은 인문사회계 학생들을 위한 9학점짜리 ‘반도체 입문’ 마이크로디그리 등 폭넓은 수준의 인증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기업체와의 능동적인 협력은 공유대학의 또 다른 강점이다. 빅데이터 혁신공유대학은 지난 1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네이버 등의 기업과 연계한 비교과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BC카드 및 KT와 MOU를 맺어 학생들이 양질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김홍기 교수는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것처럼 ‘계약 마이크로디그리’도 생각해 볼 수 있다”라며 “기업체도 실무에 필요한 교과과정을 설계함으로써 적합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체와 함께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취업 연계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대학과 기업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어려움도 존재한다. 손정우 교수는 “교수자의 수업이 기업체의 수요와 완벽히 일치하기 어렵고, 기업체도 특정 과목을 이수하면 채용 연계를 완전히 보장하는 것에는 부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흐릿해지는 대학 간 경계, 앞으로의 전망은?

공유대학이 불러온 변화의 바람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공유대학에 관한 정보가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가령, 수강신청을 앞두고 학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혁신공유학부의 정체를 묻는 글들이 올라오고는 했다. 이번 학기 신설된 빅데이터 혁신공유대학 사업단의 ‘(공유)빅데이터 개론 1’ 수업을 듣는 염우진 씨(사회학과·22) 역시 “홈페이지에도 설명이 잘 안 나와 있어서 구체적으로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작년 2학기 한양대에 개설된 에너지신산업 혁신공유대학 강의를 들은 민현호 씨(에너지자원공학과·17)는 “공유대학이 성공적으로 운영돼 입소문을 타게 된다면 가장 좋은 홍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혁신공유대학 내에서 선호하는 대학이 편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정성 교육부총장은 “타 대학 학생도 강의를 듣고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정보가 투명해진다고 볼 수 있다”라면서도 “소위 ‘인기 대학’으로 학생이 쏠려 본래 취지인 교육 자원 공유의 의미가 옅어질 수 있다는 점은 앞으로도 주시하려 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민현호 씨는 “대학 서열에 따라 선호도 차이가 발생한다기보다 관심 분야와 개설과목에 따라 선호가 좌우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가령, 에너지신산업 혁신공유대학의 경우 강원대는 수소 에너지, 전북대는 풍력 에너지, 서울대는 지열 에너지를 중점적으로 담당한다.

각 대학이 개별적으로 공유대학을 운영하는 방식에서 더 나아가 일원화된 제도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교과목 이수와 학위 취득이 통일된 체계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오헬스 혁신공유대학에 참여하는 이수현 씨(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20)는 “타 대학의 교과목을 자유롭게 이수해도 학점과 졸업에 불확실함이 없을 때 학생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공유대학의 새로운 교육 방향이 대학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도 작지 않다. 이번 학기 ‘(공유)디지털 스토리텔링과 게임’ 과목을 담당한 홍진호 교수(독어독문학과)는 “강의의 모듈화로 인해 지식이 파편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도 하지만, 기존의 교육 체계에 효율적인 학습 선택지가 하나 추가됐다고 생각한다면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처음으로 혁신공유대학 강의를 듣는 김지훈 씨(컴퓨터공학부·17)도 “공유와 협동을 통해 대학 간 불필요한 경쟁이 아닌 공동의 큰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공유대학이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과 산학 협력을 통한 연구 성과는 차후 혁신공유대학 미참여 대학은 물론, 일반 국민에게도 공유될 예정이다. 일례로, 차세대반도체 혁신공유대학은 자체적으로 성과확산센터를 운영하며 취업 및 재취업을 준비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반도체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POLAR Expert’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김홍기 교수는 “빅데이터 혁신공유대학 사업단의 성과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생각”이라며 “서울대가 더불어 사는 교육을 위한 혁신의 중심축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뜻을 밝혔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대학 간 장벽이 공유대학의 이름 아래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지만 앞으로 대학 간 교육 자원 공유는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공유대학이 성공적인 고등교육 혁신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존 대학 체계에 대한 성찰과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안목이 필요한 때다.

 

삽화: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인포그래픽: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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