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우리 대학 교육이 달라졌어요 ③ 평생교육

대학의 문이 더 많은 학습자에게 열리고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전 생애에 걸친 학습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 역할은 확대되고 있다. 융합학과와 공유대학에 이어, 대학 교육 변화 연재 마지막 편에서는 대학 속 평생교육의 모습을 살펴봤다.

평생교육, 대학 문을 두드리다

사람들은 보통 ‘교육’이라는 단어에 대해 초·중·고등학교, 교사, 청소년, 대학교수 등의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한다. 직장인이나 은퇴한 노년층처럼 학교와 멀어진 사람을 교육과 연관 지어 떠올리는 경우는 드물다. 평생교육은 이렇듯 학교 제도를 중심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을 넘어서서, 인간의 전 생애에 걸친 학습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교육 개념이다. 평생교육의 이념은 법에도 반영돼 있다. 우리 헌법은 제31조 5항에서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 한다”라고 평생교육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으며, 평생교육법은 교육부 장관이 5년마다 ‘평생교육진흥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대학은 대표적인 고등교육기관으로서 평생교육을 위한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 왔다. 서울대 평생교육원장을 지낸 한숭희 교수(교육학과)는 “방송통신대가 설립된 1970년대부터 각 대학 안에 사회교육원이 존재했다”라며 “재직자들을 위해 야간학부를 운영하는 한편 개방대학과 산업대학이 만들어지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1990년대 들어 학점은행제*와 같은 대안적 고등교육 학위제가 등장했고, ‘평생교육법’을 통해 사이버대학의 설치가 일반화됐다”라고 말했다. 평생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역할은 최근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다수의 대학이 평생교육원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를 통해 대학 강의를 일반에 공개하거나 성인 전담 단과대를 설치해 운영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평생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교육부는 최근 대학에 단과대나 학과를 신설해 성인 학습자들에게 학위 과정을 제공하는 평생교육 방식에 주력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만 30세 이상 성인, 혹은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3년 이상 직장에서 근무한 재직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학의 평생교육체제 지원사업’(LiFE 사업)이 대표적이다. 현재 △가톨릭대 △아주대 △동국대 등 전국 23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으며, 사업을 통해 종래 소수 학과 형태로 운영되던 재직자 전형을 독자적인 성인 전담 단과대 수준으로 확대하고 있다. 서울대 평생교육원장 이찬 교수(농산업교육과)는 “사회나 기술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학창 시절에 배운 지식과 태도, 기술의 유통 기한이 줄어든 것”이라며 “새로운 지식을 학습해야 하는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전문성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며 평생교육에서 대학의 역할이 자연스레 커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학이 평생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배경에는 재정 여건에 관한 현실적인 고려도 있다. 등록금 인상이 어려운 상황에서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신입생 충원율마저 크게 떨어지자, 평생교육 확대를 통한 성인 학습자 유입이 대학의 재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 됐다. 이희수 교수(중앙대 교육학과)는 “대학이 겪는 재정 압박과 학생 모집 난항의 출구는 유학생 혹은 성인 학습자 유입”이라며 “특히 국가 지원이 적은 사립대학의 경우, 자립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평생교육을 확대하기도 한다”라고 짚었다.

 

대학 속 평생교육,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대학의 평생교육은 크게 LiFE 사업처럼 학위가 주어지는 과정과 평생교육원의 시민교양강좌 같은 비학위 과정으로 나뉜다. 학위 과정은 주로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학위 취득이 필요하거나, 단발적인 강좌로는 충족하기 어려운 특정 분야에 대한 심화 학습을 원하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그중에서도 재직자 대상 학위 과정은 학생들의 수강 여건을 고려해 주로 평일 저녁이나 주말 등 한정된 시간대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수강 가능한 과목이 제한되다 보니 재직자 학생들을 위한 수업 선택권 확대를 희망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대 평생교육원 주말학사과정을 수료한 박은영 씨는 “학교에서 강의를 지정해 시간표를 제공하다 보니 원하는 교수님의 수업을 선택하지 못해서 아쉬웠다”라고 토로했다.

직장과 대학을 동시에 다니는 것에 어려움은 없을까. 회사원인 박은영 씨는 “수강 당시 거의 모든 수업을 대면으로 진행했는데, 후반부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어 일부 과목은 중앙대 원격미래교육원 수업으로 대체하기도 했다”라며 “교양수업은 원격수업과 병행한다면 부담이 줄어들 듯하다”라고 말했다. 직장의 지원도 학습자에게 중요한 요소다. 아주대에서 재직자 과정을 수강한 박예린 씨(아주대 글로벌경영학과·18·졸)는 “직장에서 정시에 퇴근하도록 배려해 준 것이 도움이 됐다”라며 “자녀 등록금만 지원하고 재직자 본인의 등록금에 대한 지원은 없는 회사도 있는데, 재직자의 대학 교육비 지원도 확대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생교육원의 교양강좌, K-MOOC 온라인 공개강좌 등 별도 학위를 제공하지 않는 비학위 과정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서울대는 평생교육원을 통해 학내 교수자가 강사로 참여하는 시민교양과정과 더불어 △온라인 한국어교육 전문지도사 양성과정 △음악교육 전문지도자과정 △산림치유지도사 양성과정 등의 전문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평생교육원과는 별개로 각 단과대별 최고위 과정, 박물관 교양 강좌 등이 운영되고 있다. 한편 고등교육에 대한 성인 학습자들의 수요가 다변화됨에 따라 대학의 정규 수업을 활용하면서도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비학위 학점교육’도 확대될 전망이다. 특정 대학의 소속 학생이 아니어도 개설 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제 등록생 제도가 대표적이다. 성인 학습자의 전문성에 대한 학습 수요가 대학을 중심으로 충족되기 위해서는 시간제 등록에 관한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숭희 교수는 “현재 원격대학을 제외하면 총 입학 정원의 10% 이하로만 시간제 등록생을 받을 수 있다”라며 “이는 학위까지 바라지 않고 특정 분야의 과목만 수강하기를 원하는 학습자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대학 교육을 학위 중심에서 학점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라며 “앞으로의 대학은 개방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지식공원 같은 개념으로 이해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평생교육, 대학에 뿌리내릴 수 있을까

대학 내에 평생교육 체계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학내 평생교육원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찬 교수는 “평생교육원의 자체 예산 범위 내에서 우수한 교수진을 활용한 강의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학사 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라며 “평생교육원 강좌를 책임 강의 시수에 반영한다면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교육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내 비학위 과정 간의 연계도 추진해야 할 과제로 지적됐다. 이 교수는 “현재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이후 지속적으로 학습을 이어갈 체계가 없다”라며 “각 단과대의 최고위 과정과 평생교육원 프로그램이 연계될 수 있도록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학을 둘러싼 여러 규제가 평생교육 확대에 걸림돌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고려대 평생교육원장 신창호 교수(고려대 교육학과)는 “대학이 교육부가 허용하는 조건에만 매달려 각자 특성에 맞는 교육을 펼치기 어렵다”라며 “각 대학이 평생교육원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제를 해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부 규제는 점차 완화되는 추세다.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에는 평생교육과 관련해 학사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이 다수 포함됐다. △학기당 시간제 등록 가능 학점 상한 자율화 △일반고 졸업생까지 재직자 특별전형 확대 △평생직업교육 우수 대학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적용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이희수 교수는 “학점은행제와 같이 학위를 수여하는 경우 고등교육법의 규제를 받지만, 지식 계발 등을 목적으로 하는 평생교육은 교육 기회의 확대를 추구하는 평생교육진흥법의 취지에 따라 규제가 완화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대학 인프라를 활용해 평생교육을 내실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평생교육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과 교수자들은 입을 모아 대학이 전문성과 깊이를 갖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때 타 평생교육기관과 차별화되는 고유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박은영 씨는 “대학 평생교육 프로그램 수료 외에도 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더 쉬운 방법이 많았지만, 대학에서 더 깊게 제대로 배웠다고 생각해서 평생교육원 진학에 후회는 없다”라며 “대학의 특성을 살려 우수한 교수자를 활용하고, 전문성을 갖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학내에 성인 학습자가 유입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평생교육원이나 성인 전담 단과대의 경우 기존 대학의 이름 아래 운영되지만, 입시 절차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박은영 씨는 “입시 문턱이 다른 만큼 이와 관련해 차등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라며 “기존 학생들은 평생교육원 학생들이 ‘학벌 세탁’을 시도한다고 생각해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 2019년 모 대학교의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 학생들이 대학 학과 점퍼를 입는 것을 문제 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대학의 평생교육 역할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각종 학위·비학위 과정이 늘어나면서 앞으로 이런 갈등은 더욱 표면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숭희 교수는 “이런 갈등은 결국 학력 사회의 그림자”라며 “우선 사회적 서열화가 아닌 교육의 결과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학위의 기능을 전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전통적 학습자들에 대해 매우 엄격한 절대평가를 적용한다면, 졸업할 때는 기존 학생들과 동등한 학습 결과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갈등 상황을 수세적으로 대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회 분위기를 바꾸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교육부의 4차 평생교육진흥기본계획이 종료되고 5차 계획을 마련하는 2022년, 여전히 대학 내에서 평생교육은 부차적이고 때로는 이질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그 배경에는 기존의 대학 입학 제도와 다른 방식으로 대학에 진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고등교육과 평생학습을 별개로 간주하는 인식이 존재한다. 평생교육이 기존 고등교육 체계와 효과적으로 융화될 수 있도록, 우리는 대학 내 평생교육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숙고해야 할 것이다.

 

*학점은행제: 대학 안팎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형태의 학습 및 자격 교육을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학점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학위를 수여하는 제도.

 

삽화: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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