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우리 대학 교육이 달라졌어요 ① 융합학과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70%를 웃도는 오늘날 한국에서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 이상의 역할을 담당한다. 대학 교육이 변화하면 그 파급이 대학을 넘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대학신문』이 학내외 구성원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하는 대학 교육을 △융합학과 △공유대학 △평생교육 세 차례의 연재로 담아냈다.

 

떠오르는 융합학과

서울대 인공지능 연합전공, 강원대 글로벌한국학과, 이화여대 뇌인지과학전공까지. 언뜻 낯설게 느껴지는 이 학과들 사이에는 ‘융합학과’라는 공통점이 있다. 융합적 사고와 문제 해결력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며 201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학문 분야가 결합한 융합학과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존재했던 학제 간 융합이라는 개념이 최근 부각되는 이유에 관해 미래융합협의회 회장 김상은 교수(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과)는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기존 학문 분류 체계 안에서 단일한 종류의 지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난제가 발생했다”라며 “미세먼지나 기후 위기와 같이 사회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대두한 것도 융합이 강조된 배경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융합학과의 확산은 대학이 이런 시대적 흐름에 부응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이 인공지능·바이오·나노 산업처럼 과학기술 간 융합이 필요한 분야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춘 융합형 인재 양성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대학의 융합학과 신설 및 확대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교육부는 2021년에 ‘신산업분야 특화 선도전문대학 지원사업’을 통해 전문대학 12개교를 대상으로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헬스 △스마트팜 등 신산업분야의 인재 육성을 위한 신생 융합학과들을 지원했다.

대학마다 융합학과를 운영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서울대는 학부 차원에서 융합학과를 연합전공과 연계전공으로 나눠 다전공 형태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연합전공은 둘 이상의 학과가 연합해 독자적인 하나의 전공을 구성한 것이지만, 연계전공은 주관 학과가 다른 학과와 연계해 커리큘럼을 확장 편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최근 새로운 융합학과를 적극적으로 편성한 강원대는 미래융합가상학과라는 명칭 아래 복수·부전공 형태로 융합학과를 운영 중이다. 강원대 교육혁신본부 장혜진 융합교육센터장(강원대 과학교육학부)은 “융합학과는 설치 목적이 학문 간 융합 및 신산업 대응에 부합하고 둘 이상의 정규 학과가 참여하며, 기존 정규 학과의 학문 분야와 상이해야 설치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교육부 지원사업을 계기로 융합학과를 신설한 연암대는 스마트원예계열과 축산 계열을 스마트팜이라는 키워드로 융합한 스마트팜 전공을 복수전공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연암대 스마트팜 융합전공 책임 이현아 교수(연암대 스마트원예계열)는 “농업이 데이터 기반의 패러다임으로 변화함에 따라 스마트팜의 다양한 데이터를 정확히 분석하는 인재가 필요해졌고, 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기존 전공들을 융합했다”라고 소개했다.

 

융합학과의 빛과 그림자

대부분 둘 이상의 정규 학과가 결합해 탄생하는 융합학과는 커리큘럼에 기존 학과들의 수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다양한 학과의 강의를 전공으로 폭넓게 골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손지원 씨(이화여대 뇌인지과학전공·20)는 “뇌인지과학전공은 주전공 외에도 복수전공을 필수적으로 이수하게 한다”라며 “심리학이나 통계학 등 타과에서 개설한 강의를 수강하며 자신이 원하는 분야와 주전공을 연결할 기회가 많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기술경영 연합전공 이덕주 주임교수(산업공학과) 또한 “기술경영 연합전공이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과목은 많지 않다”라면서도 “기술경영의 방향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면 전공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교과목이라도 전공 선택 과목으로 인정해 주는 등 커리큘럼을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존 학과에 의지하는 커리큘럼의 단점도 존재한다. 서울대 금융경제 연계전공을 이수 중인 박우현 씨(생물교육과·20)는 “금융경제 연계전공에서 자체 개설한 강의는 ‘금융윤리특강’뿐”이라며 “하나의 학과로서 정체성을 느끼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물론 융합학과의 형태나 학문의 특성에 따라 독자적인 커리큘럼 확보에는 학과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정보문화학 △글로벌 환경경영학 △영상매체예술 등의 서울대 연합전공의 경우 타 융합학과와 비교해 봤을 때 상대적으로 많은 자체 개설 강의를 운영하고 있다. 강원대는 융합학과 설치를 위한 신청서 제출 시 융합형 교과목을 반드시 5과목 이상 신규 개발해 편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아트&테크놀로지전공의 경우, 대부분의 이론과 실습 선택과목들이 학과 고유 과목이다.

사회적 필요에 발맞춰 등장했다는 특징이 융합학과의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커리큘럼이 실무와 밀접하게 관련된 융합학과의 경우,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실용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현재 디지털 아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준하 씨(서강대 아트&테크놀로지전공·12·졸)는 “현장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던 분들이 전임 교수로 온 덕분에 현장의 전문성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라며 “프로젝트 기반의 커리큘럼과 다양한 예술·기술적 방법론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인공지능 연합전공을 이수 중인 김재민 씨(경영학과·19)도 “실무에서 인공지능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려주는 ‘인공지능 이론 및 응용 세미나’와 연계 기업에 인턴으로 참여하는 ‘인공지능 심화 프로젝트’ 등의 교과목이 전공필수 과목으로 운영된다는 것이 인공지능 연합전공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독립적인 모집단위가 아닌 다전공 형태로 신입생을 선발하면, 학과 내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지적된다. 박우현 씨는 “금융경제 연계전공 학생들 간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부재하다 보니 정보 교류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라며 “합격 이후에도 학과에서 오는 연락이 없었기에 ‘알아서 잘 찾아 들으라’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김재민 씨 역시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진입 학생들 간 소통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라며 “학과 차원에서 전공생 간 교류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프로그램이나 제도가 없어 아쉽다”라고 말했다. 

 

융합학과를 넘어 융합교육으로

대학이 체계적인 융합 연구를 뒷받침하고 학생들의 융합 역량을 길러낸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융합학과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이에 정규 학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행정적 지원이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덕주 교수는 “연합전공 운영 내실화를 위해서는 명실상부한 교육 단위로서의 행정적 자리매김이 필요하다”라며 “전임교수 할당까지는 어렵더라도 하나의 독립적인 교육 단위로서의 자원과 교육 행정상 권리가 있어야 융합 교육이 조금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융합학과의 지위와 관련된 학사제도 개편을 두고 대학 구성원 간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김상은 교수는 “기존의 학과 체계는 그대로 두고 융합을 시도하다 보니 연합 및 연계전공의 형태로 융합학과가 등장한 것”이라며 “쉽지는 않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학 구성원, 나아가 교육 당국까지 융합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기존의 학과 체계를 허물 용기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학과 내 교류 활성화 △체계적인 커리큘럼 제공 △융합학과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 또한 중요한 과제다. 김은미 교무처장(언론정보학과)은 “한때의 유행으로 융합학과를 개설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예측 가능성과 충분한 역량 향상을 약속하기 위해 과정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대는 이미 개설된 연합 및 연계전공에 대해서는 별도의 평가 기획단을 구성해 서면 평가와 현장 실사 등을 통해 종합적인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라며 “새로운 과정의 개설도 신중히 결정된다”라고 밝혔다. 강원대 장혜진 교수도 “미래융합가상학과 학생 대상 만족도 설문 조사 결과를 학사 교육과정 개편에 반영해 교과목을 폐지 및 신설함으로써 학문의 정체성과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학의 융합 교육이 융합학과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상은 교수는 “이공계 학생과 인문·사회계 학생들이 과학기술이나 사회적 가치를 주제로 활발하게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얘기할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라며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전공 간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융합 문화”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주체적인 태도로 수업을 선택하고 자신에 맞는 경험을 디자인해야만 융합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김은미 교무처장은 “연합·연계전공의 개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교내의 여러 선택지를 활용해 다양한 전공과 기회에 능동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학문 간 교류의 장벽을 낮추고 다양한 학문 분야를 접할 수 있도록 학교 측에서도 △협력적 팀티칭 강의 도입 △타전공 S/U 선택 확대 △학생설계전공 확대 △교과인증과정* 도입 △다전공 선발 기준 다면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며 “이를 활용해 학생들이 자기만의 관심사를 잘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융합형 인재를 요구하는 사회의 흐름에 따라 꾸준히 늘어나는 융합학과가 그 기반을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학과 간 단순 결합을 넘어 융합학과만의 개성과 내실을 다져야 한다. 융합이 지나가는 유행에 그치지 않고 대학 교육에 진정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교육과정의 체계화와 학사제도의 유연한 변화, 구성원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필요한 때다. 

 

*교과인증과정: 9학점 이상 15학점 이내로 구성된 교과과정으로 이수 시 그 이수내역을 인증받을 수 있다. 

 

인포그래픽: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삽화: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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