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000회째였던 2011년 12월 14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첫 ‘평화의 소녀상’(소녀상)이 세워졌다. 소녀상은 김서경·김운성 부부의 공동 작업 작품으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기억하고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전시 성폭력이 중단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독일에서는 2017년을 시작으로 현재 △비젠트 ‘네팔‒히말라야 파빌리온 공원’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 한인교회 △베를린 미테구 △독일 카셀대에 소녀상이 설치돼 있다. 이외에도 소녀상은 함부르크 도로테 죌레 하우스, 프랑크푸르트대, 드레스덴 국립 박물관 등 독일 전역에서 전시된 바 있으며 볼프스부르크 현대 미술관에서는 내년 1월까지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독일에서 소녀상은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을까.

 

평화의 소녀상, 독일에 오다

소녀상은 어떻게 독일로 오게 됐을까. 풍경세계문화협의회 이은희 대표는 “2016년 경기도 일부 시에서 해외에 소녀상을 건립하는 프로젝트를 여럿 추진했고, 시민들의 모금 활동을 통해 소녀상을 해외에 설치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수원시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소녀상 설치를 추진했으나, 일본 정부가 프라이부르크시에 거세게 항의하며 무산됐다. 이에 몇몇 수원시민은 일본 정부의 외압에 맞서고자 ‘독일 평화의 소녀상 수원시민 건립추진위원회’(수원 건추위)를 결성하고 재독 교포들과 힘을 모았다. ‘독일 평화의 소녀상 독일 건립추진위원회’(독일 건추위)의 사무국장이었던 이은희 대표는 “수원 건추위에서 일본 정부의 외압으로 프라이부르크에서의 소녀상 건립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은 후, 소녀상을 다른 곳에 세우기 위해 독일 전역에서 사람을 모아 독일 건추위를 구성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비젠트 공원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당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안점순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풍경세계문화협의회 이은희 대표)
비젠트 공원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당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안점순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풍경세계문화협의회 이은희 대표)

이후 두 건추위의 노력 끝에 2017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레겐스부르크 인근 비젠트에 위치한 개인 소유의 네팔‒히말라야 파빌리온 공원에 첫 소녀상이 건립됐지만, 제막식 다음 날 곧바로 일본 총영사관의 항의가 빗발쳤다. 일본 정부의 끈질긴 항의로 공원주는 비문 없이 소녀상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고 관련 단체 내 이견 끝에 결국 유럽 최초의 소녀상은 비문 없이 자리하게 됐다. 

이를 시작으로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전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독일 전역에 건립·전시되기 시작했다. 베를린 소녀상 설치를 주도했던 독일 시민 단체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는 “그동안은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가 독일 전역을 돌며 증언하는 행사가 많았지만, 피해 생존자가 매번 방문해 증언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녀상을 통한 메시지 전달이 더욱 중요해졌다”라고 말했다. 

 

다사다난한 소녀상 이야기

그러나 소녀상 설치 과정은 지난하다. 소녀상 설치를 향한 일본 정부의 반발과 그로 인한 독일 내 지자체 및 기관의 부담이 큰 상황이기 때문이다. 소녀상이 설치될 때마다 일본 정부의 집요한 압박은 계속됐다. 대표적으로 2017년 8월 본(Bonn) 여성 박물관에 소녀상이 전시되기로 하자, 일본 총영사관의 압박과 함께 반발성 메일이 쏟아졌다. 이은희 대표는 당시 박물관장이 소녀상 설치 의지가 있었음에도 일본 정부의 압력과 그로 인한 시의 예산 배정 문제 등이 겹치며 전시가 취소됐다고 전했다.

베를린 미테구 평화의 소녀상.
베를린 미테구 평화의 소녀상.

코리아협의회의 주관으로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소녀상 역시 일본 정부의 항의로 철거 위기에 처해 있다. 2020년 9월, 본래 1년 기한으로 설치된 소녀상은 일본 정부의 반대로 2주 만에 철거 명령이 내려왔다. 소녀상 설치가 한일 갈등을 초래하고 독일이 일본에 반대하는 인상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코리아협의회에서는 철거 명령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내며 서명 운동과 항의 시위를 시작했고, 독일 언론과 시민도 미테구청의 결정을 비판하면서 결국 미테구청은 철거 명령을 취소했다. 이어 지난해 베를린 소녀상 설치 기한이 1년 더 연장됐고, 올해 6월 미테구의회에서는 소녀상을 영구 존치할 것과 이를 계기로 한 성폭력 관련 예술 공모를 진행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다만 미테구의회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미테구청의 이를 이행할 지 확신하기 어렵다. 현재 코리아협의회는 지난 5월 베를린 소녀상 설치 연장을 신청한 후 미테구청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소녀상은 독일 곳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는 소녀상을 지키려는 독일 내 노력과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헤센‒나사우 주교회 소속 라인마인 한인교회는 2017년부터 주교회 소속 목사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소녀상 설치에 대해 논의했다. 이후 2019년 3월, 독일 개신교 협의회의 재정적 지원과 정의기억연대의 소녀상 제작비 후원을 통해 독일 내 두 번째 소녀상을 건립할 수 있었다. 라인마인 한인교회 강민영 목사는 “재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당시 교회 연대 대표 위원회에서 대표 목사가 소녀상 설치에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라고 말했다. 라인마인 한인교회 김재승 장로는 “독일 사람들과 모여 소녀상 비문을 읽으면, 다들 이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며 일본 정부의 행태를 비판한다”라며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내용을 아는 시민은 대다수 이 문제에 공감한다”라고 말했다. 

라인마인 한인교회 정원 평화의 소녀상.
라인마인 한인교회 정원 평화의 소녀상.

한편 김재승 장로는 한국 정부의 부족한 관심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소녀상 문제가 나오면 발 벗고 나서 반발하는 상황이지만, 한국 정부는 소녀상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라인마인 한인교회 소녀상은 앞으로도 평화의 공간으로 자리할 예정이다. 이한나 권사는 “전쟁 시 항상 전시 성폭력 문제가 따라온다”라며 “소녀상을 계기로 이 문제를 계속해서 이야기해 가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베를린 소녀상 역시 이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이 있었다. 미테구청에서 소녀상 철거 명령을 내렸을 때 독일 단체와 시민들도 코리아협의회가 진행한 서명 운동과 항의 집회에 참여했다. 한정화 대표는 “며칠 만에 거의 12,000명에 다다르는 서명이 모였으며, 타츠(Die Tageszeitung, TAZ) 등 진보 언론이 이 문제를 보도하면서 녹색당, 사민당과 같은 진보 정당에서 미테구청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말 한국 극우 단체 ‘위안부 사기 청산 연대’의 소녀상 철거 시위 때도 독일 시민 단체인 ‘오마스 게겐 레히츠’(Omas Gegen Rechts, 극우에 반대하는 할머니들), 사회민주당 미테구 청년위원회 등에서 항의 집회에 동참하기도 했다. 또한 극우 단체로부터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워 소녀상을 지키는 당번제도 진행됐다. 이에 참여했던 재독한국여성모임 안차조 씨는 “독일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자체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지만, 독일 역시 전쟁을 겪은 사회고 그동안의 전시 성폭력 문제들을 목격했기에 이 사안에 공감하며 운동에 동참하는 시민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소녀상이 전하는 메시지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기억과 전 세계 전시 성범죄 희생자 추모의 상징이다. 한정화 대표는 “독일 시민들은 이 문제를 한일 갈등이나 한국만의 역사 문제로만 생각하지 않고, 전 세계에서 언제든 있었던, 그리고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여성 성폭력 문제, 나아가 식민지 문제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독일 역시 나치 시대 위안소 운영이나 연합군에 의한 여성 성폭력 문제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기에 시민들은 소녀상이 가진 의미에 더욱 공감한다. 한 대표는 “독일의 한 정치인은 소녀상이 설치되고 독일에서 그동안 논의되지 못했던 주제가 다뤄질 수 있었다며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한정화 대표는 “처음에는 한국에서 온 소녀상이었다면 지금은 우리 모두의 소녀상으로 자리하며 소녀상이 새로운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시민들은 비문을 읽고 소녀

상의 손을 잡아 주기도 하고, 세계 여성의 날이면 소녀상에 장미꽃을 선물하기도 한다. 또, 오마스 게겐 레히츠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 아시아 단체를 중심으로 한 애틀랜타 스파 총격의 추모식이 소녀상 앞에서 진행되며, 본래 기획하지 않았던 의미로 소녀상이 자리잡은 것이다.

카셀대 평화의 소녀상
카셀대 평화의 소녀상

한편 지난 7월 카셀대에는 학생회 주도로 소녀상이 설치됐다. 토비아스 슈누어 학생회장(카셀대 철학과)은 “일본 정부가 소녀상 철거에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며 2차 세계대전 전시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라며 소녀상 설치 계기를 밝혔다. 그는 “독일은 당시 일본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었으며, 기본적으로 당시 동맹국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카셀대에서는 소녀상을 시작으로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토비아스 슈누어 학생회장은 “독일은 여전히 서양에 집중하고 있고 아시아 관련 주제들은 회색 지대에 머물고 있다”라며 소녀상을 통해 아시아 전시 성폭력 문제 등을 알릴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정부에서 대학 당국에 소녀상 설치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면서 대학 당국은 소녀상을 철거를 요구했다. 곧 퇴임을 앞둔 그는 앞으로 한인 사회와 연대하며 소녀상 존치 요구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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