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낙태권, 그것이 알고싶다

지난 6월 24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돕스 대 잭슨(Dobbs v. Jackson) 판결로 낙태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폐기했다. 이로써 49년 만에 낙태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는 개별 주에게 돌아갔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텍사스 주 낙태 금지법을 위헌으로 본 판결이다. 연방 대법원은 이 법이 수정헌법 제14조를 통해 보호되는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돕스 대 잭슨 판결이 여성 건강권을 퇴보시킨다는 비판이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기자들은 지난 8월 4일부터 13일까지 미국에 방문해 현지 상황을 취재했다.

8월 5일 시위가 끝나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
8월 5일 시위가 끝나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

텍사스 주 전역에 울려 퍼진 분노의 목소리

◇텍사스 주를 뒤흔든 심장박동법=기자들은 미국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낙태를 둘러싸고 확연한 입장 차이를 보이는 텍사스 주와 캘리포니아 주를 방문했다. 텍사스 주는 낙태에 매우 보수적인 주다. 임신 3개월 이내의 낙태를 무조건 허용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여전히 유효했던 지난해에도 텍사스 주 의회에서는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심장박동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그간 여러 주에서 입법된 유사한 법률 중 위헌 판결을 받지 않고 시행될 수 있었던 최초의 법이다. 낙태 단속 주체를 국가가 아니라 시민으로 지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장박동법은 낙태 당사자와 무관한 시민의 낙태 손해배상 소송을 허용하고, 성범죄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해 비판을 받았다. 

돕스 대 잭슨 판결 이후 텍사스 주에서는 효력이 정지됐던 각종 낙태 금지법을 되살리는 트리거 조항*이 발동됐다. 이런 상황에 대해 현지 주민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기자들은 텍사스 주에서 열린 낙태권 보장 요구 시위 현장을 찾았다. 

◇8월 5일 텍사스 주 휴스턴 시=아침 7시가 되자 다리 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10명이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은 백인 여성과 그의 자녀, 흑인 남성, 히스패닉 여성, 그리고 백인 할머니까지 인종, 성별, 나이가 천차만별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준비해 온 패널을 들고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Bans Off Our Bodies”, “We Won’t Go Back”(내 몸은 나의 선택. 우리는 돌아가지 않아)이라고 외쳤다. 경적을 울려 지지를 표하는 운전자도 있었던 반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위 참여자는 차가운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패널을 흔들었다.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 아시아 씨는 “시위에서 욕설을 듣기도 했지만, 이런 반발을 충분히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라며 “협박받는다고 해서 시위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시위자들은 낙태 금지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넘어 보편적 인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시아 씨는 “낙태 금지는 사람들이 낙태를 안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하게 만든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시위를 주최한 데스토 씨 역시 “낙태는 의료 서비스로 인권의 한 범주로서 보장받아야 한다”라며 낙태는 범죄가 아님을 강조했다.

8월 6일 시위에서 도로를 막아선 채 강하게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8월 6일 시위에서 도로를 막아선 채 강하게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8월 6일 텍사스 주 오스틴 시=“F**k the church, f**k the state, only we decide our fate”, “Rise up for abortion rights”(망할 교회, 망할 국가, 우리만이 우리 운명을 결정해. 낙태권 보장을 위해 일어나자) 6일 찾은 행진 시위에서 40여 명의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다. 사람들은 사우스 콩그레스가를 따라 약 1시간 동안 행진했다. 이들은 중간중간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에 7~8분 가량 주저앉아 낙태권을 보장해달라며 구호를 외쳤다. 어떤 차는 통행을 방해하는 시위를 비난하며 거칠게 유턴했고, 다른 차는 이들을 너그러이 기다려주며 응원의 경적을 울렸다.

낙태권 옹호를 상징하는 초록색으로 치장한 사람들은 초록빛 물결을 이뤘다. 시위 참여자 중 일부는 빨간색 물감으로 칠한 흰 바지를 입고 있었다. 시위 주최 측 관계자인 빅토리아 씨는 “이 바지는 낙태를 범죄화할 때 여성에게 일어나는 일을 형상화한 것”이라며 “낙태 수술을 거부당한 여성이 유산으로 10일 내내 피를 흘린 최근의 사례는 낙태가 범죄화되면 안전한 낙태를 하기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시위에서도 사람들은 낙태가 의료 서비스로 인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티나 씨는 “낙태는 사회경제적인 문제”라며 “의료 접근권이 평등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할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두 딸과 시위에 참여한 엄마도 있었다. 그녀는 “가족 중에 낙태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해야 했다”라며 “낙태는 의료 서비스의 범주에서 논의돼야 하며, 개인의 선택에는 정부뿐 아니라 다른 누구도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8월 7일 텍사스 주 오스틴 시=다음날 오스틴의 한 바에서는 자선 공연 형태의 특별한 시위가 열렸다. 공연 입장료는 전미낙태기금연합(National Network of Abortion Funds)에 기부됐다. 낙태권 옹호 활동가를 비롯해 현지의 여러 밴드가 공연에 동참했다. 공연에 참여한 ‘The Capitalist Kids’는 “우리 삶에서 사회가 사소하게 퇴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많이 발생하지만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는 진보하고 있다”라고 운을 뗐다. 그들은 이어 “그러나 돕스 대 잭슨 판결은 갑자기 미국이 6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연방 대법원을 맹렬히 비판했다. 

8월 7일 자선 공연에서 밴드 ‘The Capitalist Kids’가 텍사스 주의 낙태권에 대해 말하고 있다.
8월 7일 자선 공연에서 밴드 ‘The Capitalist Kids’가 텍사스 주의 낙태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돕스 대 잭슨 판결 이후 캘리포니아 주의 상황은

◇낙태권 보장에 앞장서는 캘리포니아 주=캘리포니아 주의 상황은 텍사스 주와는 극명히 달랐다. 돕스 대 잭슨 판결 당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기존의 캘리포니아 ‘보건 및 안전법’에서 낙태권을 강화한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낙태를 제공하거나 돕는 사람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심장박동법과 같은 법률로부터 캘리포니아 주민을 직접적으로 보호한다. 이어 6월 27일에는 다른 주에서 캘리포니아 주로 이동해 오는 여성을 보호하는 행정 명령도 발효됐다. 

최근까지도 낙태권 보장을 위한 캘리포니아 주의 노력은 계속됐다. 뉴섬 주지사는 지난달 27일 낙태 서비스 확대 및 재정 지원이 포함된 13개 법안에 잇따라 서명했다. 해당 법안들은 낙태가 범죄로 규정되지 않도록 어떤 원인으로 태아가 사망하더라도 이로 인한 민사 및 형사 처벌을 금하는 것과, 다른 주가 의료 제공자를 소환하거나 낙태를 원하는 개인의 의료 정보를 요청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비롯해 낙태와 피임에 대한 접근을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낙태가 불법인 주의 많은 여성들은 캘리포니아로 이동해 낙태 시술을 받을 것이다. UCLA ‘생식 건강, 법률 및 정책 관련 법률 센터’ 캐서린 코언 연구원은 “낙태가 금지될 주에서 매년 8,000명에서 16,000명의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주로 올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이에 낙태 클리닉의 업무도 과중될 뿐더러 캘리포니아 주민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UCSF ‘재생산 건강 새 지표 향상 그룹’(ANSIRH) 다이애나 포스터 연구원은 “낙태가 합법인 주의 낙태 클리닉은 다른 주에서 넘어온 환자로 넘쳐날 가능성이 높다”라며 “낙태가 허용된 주에 사는 사람조차도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에 영향 받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낙태권을 둘러싼 헌법 해석 논쟁

◇돕스 대 잭슨 판결과 원의주의=돕스 대 잭슨 판결문의 다수 의견은 “수정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조항을 통해 기본권으로 보호되기 위해서는…(중략)…미국의 역사와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고(deeply rooted in our society) 헌법 질서 안에서의 자유(liberty)라는 제도에 필수적인 것이어야 한다”, “수정헌법 제14조 제정 당시 전체 주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주에서 모든 시기의 낙태를 처벌하고 있었고…(중략)…따라서 낙태는 미국의 역사와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권리라고 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돕스 대 잭슨 판결의 다수 의견문은 원의주의(originalism)에 기초한다. 원의주의는 헌법 문언을 제정 당시에 의도된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는 견해다. 전상현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원의주의는 헌법이 명시하지 않은 기본권을 인정하기 위한 근거를 헌법 문언에서 찾는다”라며 “이는 수정헌법 제 14조에 언급된 ‘자유’(liberty)에 포함되는 기본권으로 인정받으려면 그 자유가 침해될 수 없다는 사고가 오래전부터 미국 사람들의 인식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원의주의를 취하는 연방 대법원의 다수 의견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헌법 조항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의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으며 선고 당시부터 매우 잘못된 것으로 평가했다.

다수 의견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제시한 3분기 구분법이 헌법 문언 해석의 범위를 벗어났다고도 비판했다. 전상현 교수는 “원의주의는 헌법이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은 부분은 연방 대법원이 아니라 각 주의 의회가 결정할 사항이라고 본다”라며 “돕스 대 잭슨 판결의 다수 의견은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해 법관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헌법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돕스 대 잭슨 판결의 소수 의견은=전통과 역사에 입각한 해석을 중시하는 원의주의는 오랜 세월 정당한 헌법 해석 논리로 여겨졌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허점을 드러내며 비원의주의(non–originalism)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비원의주의는 원의주의에 따라 헌법 제정 당시의 상황에 갇혀 헌법을 해석하면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종차별이다. 1954년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판결은 수정헌법 평등보호조항에 근거해 인종 분리를 위헌이라고 선언한 기념비적 판결이다. 그러나 원의주의 식으로 해석하면 평등보호조항은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19세기에 제정된 것이므로 이 판결도 번복될 수 있다. 전상현 교수는 “원의주의에 따르면 지금도 인종차별은 합헌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원의주의자는 거의 없다”라며 원의주의가 낳는 모순을 지적했다.

이에 비원의주의에 기초한 돕스 대 잭슨 판결의 소수 의견은 시대 상황에 따라 헌법에 대한 열린 해석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소수 의견은 “헌법은 어떤 권리가 무엇을 보장하고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에 관한 제정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고정시켜 놓은 것이 아니다”라며 수정헌법 제14조에 언급된 자유와 평등 관련 조항도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이 가능하다고 짚는다.

돕스 대 잭슨 판결의 다수 의견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변경할 만한 선례라고 주장한 반면, 소수 의견은 선례를 변경할 만한 사회적 변화가 없음에도 선례를 뒤집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선례구속원칙이 굳게 자리 잡은 영미법계에서 선례 변경은 신뢰 이익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육소영 교수(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법원의 구성이 바뀔 때마다 판례가 뒤집히면 법관이 법을 적용해 판결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는 인식을 주게 돼 신뢰감에 문제가 생긴다”라며 “정치적 변화에 따라 판례를 뒤집는 것은 대법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한 것이 기본권을 삭제하는 선례 변경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전상현 교수는 “미국에서 대부분의 선례 변경은 기본권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권리가 기본권으로 인정되거나 기본권이 제한적으로 인정되다가 확대되는 경우였다”라며 “이번 돕스 대 잭슨 판결은 50여 년간 인정됐던 헌법상 기본권을 폐지하는 선례 변경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려가 이뤄졌어야 했다”라고 밝혔다.

 

미국 여성 낙태권의 향후 행보는

◇낙태 접근권 문제도 시급=낙태 접근권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유효했을 당시에도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 이에 돕스 대 잭슨 판결로 낙태권이 더 퇴보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기자들은 텍사스 주와 캘리포니아 주의 낙태 경험자 3명을 만나 봤다. 한 낙태 경험자는 인터뷰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최소한의 보루(Bare Minimum)였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낙태가 가능한 병원까지의 먼 거리와 긴 소요 시간은 낙태 접근권을 악화시키는 주 요인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레이두아 씨는 “대도시가 아닌 내륙 지역에 사는 캘리포니아 주민은 지역의 의료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은 탓에 낙태 클리닉을 방문하려면 평균 300마일 정도를 이동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텍사스 주에 사는 또 다른 낙태 경험자 지나 남 씨는 “내가 방문한 병원은 동네에 있는 거의 유일한 낙태 클리닉이었다”라며 “텍사스 주 전역과 루이지애나 주에서 찾아온 환자로 대기시간이 무척 길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나 정도면 비교적 쉽게 수술을 받은 편이지만, 접근성이 좋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낙태 수술을 제공하는 병원 자체도 많지 않다. ‘낙태 시술 제공자에 대한 표적 규정 법’(Targeted Regulation of Abortion Providers Laws)의 영향이다. 레이두아 씨는 “이 법의 영향으로 의사들이 낙태 시술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지나 남 씨는 “해당 법은 텍사스 주 낙태 클리닉 운영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낙인의 영향도 크다. 다이애나 연구원은 “미국에서 낙태는 산부인과 의료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진보적인 의대에서도 낙태 시술을 배우는 것을 거부할 수 있고 많은 의사가 제공을 꺼릴 정도로 낙태는 의료인에게 부정적으로 낙인 찍혀 있다”라며 “일반 산부인과와 낙태 클리닉이 구분돼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클리닉을 찾고 진료를 예약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은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낙태 경험자 제시 곤잘레스 씨는 “처음 찾아간 클리닉 두 곳에서 진료를 거부했다”라며 “이후 클리닉을 새로 찾긴 했지만 진료 예약을 잡고 2~3주를 더 기다리고 나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 낙태를 알아본 것이 9월이었는데, 실제 수술을 받은 때는 12월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에 사전 절차 조항까지 추가된다면 낙태는 더 어려워진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유효했던 상황에서도 낙태를 규제하는 법안이 꾸준히 입안됐던 텍사스 주의 낙태 환자는 낙태 수술 전 24시간을 대기해야 하고, 낙태에 관한 편견을 심는 의사 상담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다. 지나 남 씨는 “초음파 검사를 받고 의사와 상담한 후로부터 하루가 지나야 실제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라며 “상담에서 낙태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을 높이고 불임을 유발할 것이라는 잘못된 의학 정보를 전달받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최대 피해자는 소외 계층=돕스 대 잭슨 판결로 낙태 접근권이 약화되면 그 영향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 더 치명적일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지나 남 씨는 “클리닉이 집 주변에 없거나 자신이 거주하는 주에서 낙태가 불법인 경우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시간적·금전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라고 말했다. 레이두아 씨 역시 “저소득층, 유색 인종 등의 소외 계층은 의식주 환경도 나쁘고 노동환경도 좋지 않다”라며 “특히 시골이나 덜 부유한 지역에 사는 사람의 의료 접근성은 좋지 않은데 많은 경우 이들은 임신 초기에 낙태하지 못하거나 시기를 놓쳐 아예 낙태하지 못하게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다이애나 연구원은 “이민자, 미성년자, 빈곤층 등 가장 불리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만이 낙태하지 못하고 출산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소외 계층이 낙태를 선택하는 이유는 자신의 사회경제적 처지 때문인 경우가 많다. ‘턴어웨이’(Turnaway) 연구는 병원으로부터 낙태를 거부당한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연구다. 다이애나 연구원은 “낙태를 원한 사람 중 실제로 낙태를 한 사람과 하지 못한 사람의 생애를 추적해 비교했다”라며 “결론적으로 낙태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낙태를 원했던 이유로 제시한 상황을 그대로 겪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이를 키울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말했던 여성은 출산 이후 더 가난해졌고, 남성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경우 그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라며 “이미 있는 자녀를 양육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 낙태를 희망한 경우 이미 있던 자녀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거나 정상적인 발달 시기에 맞춰 자라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라고 말했다.

◇사회권으로서의 낙태권 인정을 향해=안전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을 평등하게 보장하기 위해 낙태는 공적 의료 서비스의 영역으로 이동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더 나아가 여성이 자신의 생식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곧 낙태를 금지하지 않는 자유권적 보장을 넘어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동반된 사회권적 보장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맥락으로 연결된다. 이호용 교수(한양대 정책학과)는 “사회권적 보장에 무관심하면 자유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라고 짚었다. 지나 남 씨 역시 “낙태 시술자 규제를 없애 의료 서비스가 원활히 공급될 수 있게 해야 하며, 저소득자에게는 정부가 낙태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사회권 보장의 범위는 어디까지 이뤄져야 할까. 대표적으로 비용 지원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낙태에 대한 보험 지원은 보편적이지 않다. 다이애나 연구원은 “미국에서는 낙태 환자의 50% 이상이 자비를 내고 25%는 공적 보험을, 나머지 15%는 민간 보험을 사용한다”라며 “15%가 넘는 사람들은 낙태 시술 시 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임신중지의 법적 자유화와 의료 서비스의 공적 보장을 중심으로 본 임신중지 정책의 국제적 동향」에 따르면 낙태를 비범죄화한 70개국 중 임신중지 비용을 공적 의료보험으로 전액 지원하는 국가는 14개국, 공공의료시설에서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는 19개국, 사유나 인구사회적 기준을 충족하는 일부 여성에 대해서만 의료 서비스 비용 전체를 지원하는 국가는 18개국이다. 나머지 국가는 낙태 비용을 개인과 국가가 분담하거나 아예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 

 

낙태권 보호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1994년 이후 2019년까지 50개 국가가 낙태 규제 정책을 폐기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런 ‘낙태 자유화’의 추세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미국의 결정은 이를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우리나라는 2019년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이후 후속 입법이 없는 상태다. 낙태할 권리를 명목상 권리로만 남겨둘 것인가. 낙태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숙제다.

*심장박동법(Heartbeat Bill): 태아의 심장 박동이 초음파로 감지되는 시점부터 낙태를 금지해 붙은 이름이다. 그 시점은 대체로 임신 6주 차다. 

*트리거 조항(Trigger law): 현재 효력은 없지만 추후에 해당 법률의 제약 사항이 없어지면 효력이 발생하는 법.

 

인포그래픽: 카와하라 사쿠라 기자 sakusakukki3@snu.ac.kr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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