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노동3권 잔혹사 ③

 

 

사람이 숨 쉬는 모든 순간에는 다른 사람의 노동이 있다. 그렇다면 그 노동의 가치는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로 말미암아 온전히 지켜지고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33조에 의거해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조에는 빨갱이라는 프레임이, 파업에는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시대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당했을 때 행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파업이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네 편의 연재에서 파업권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 사회 속 노동3권의 단면과 나아갈 길을 그린다. 세 번째 연재에서는 한국 사회가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본다. 

파업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국내 판결은 파업을 다뤄온 한국의 오래 묵은 방식에서 비롯됐다. 충분한 숙의 없이 도입된 ‘외국의 옛 법’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요구를 어렵게 만들었고, 독재정권하에서 사회를 흐트러뜨리는 소란이라는 딱지가 붙은 권리는 이데올로기 싸움의 희생양이 됐다. 오늘날 우리는 파업을 바라보는 과거의 틀에서 자유로운가.

 

이식된 권리, 그리고 권위주의의 왜곡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 파업, 태업 등 단체행동권은 제헌 헌법부터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쟁취한 권리가 아니라 그저 들여온 권리와 다름없던 한국의 단체행동권은, 단결금지법 체계를 포함하고 있어 도입 당시부터 퇴행적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법률사무소 새날 김기덕 변호사는 “단결금지법은 18세기 후반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부르주아의 재산권을 보호하고자 노동자의 단결과 단체행동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존재했다”라며 “이는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 운동을 거치며 폐지된 법”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한참 전에 존재했다가 19세기 초중반 폐지됐던 단결금지법이 한국에는 20세기 중반에 들어온 것이다. 이화여대 법학연구소 신수정 연구원은 “한국은 일본이 유럽에서 들여온 단결금지법 체계를 받아들이며 1953년 ‘노동쟁의조정법’을 제정했다”라고 지적했다. 이 법은 1996년에 폐지됐으나 해당 법의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주체, 목적, 절차, 방법에 따라 규제하는 내용이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으로 흡수되면서 단결금지법은 우리 법체계에 여전히 녹아있다. 

독재 정권이 줄곧 집권하며 노동조합(노조)에 씌운 이데올로기 프레임 또한 파업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데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 금속노조법률원 장석우 변호사는 “권위주의 정부의 언론 통제 당시 매체에서는 빨간 띠를 두르고 돌을 던지는 노동자들을 주로 보여줬다”라며 “이에 노조는 과격한 투쟁을 일삼는 일명 빨갱이나 공산당 집단으로 그려질 때가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4·19혁명 후 파업 건수가 일시적으로 증가했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 정부가 집권하며 파업에 대한 법적 억압이 강화됐다. 국제노동기구(ILO) 이광택 한국 협회장은 “박정희 군사정부 당시 노동관계법 등을 개정하며 여러 노조가 탄압받고 노동3권이 제약됐다”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조경배 교수(순천향대 법학과) 역시 “업무방해죄,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국가보안법 위반 등 온갖 형벌 조항으로 파업 자체를 불법시하는 분위기가 해방 이후부터 계속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국가 권력의 제도적 억압이 오래도록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파업이 사람들에게 정당한 권리로 온전히 인식되기는 힘들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박성식 정책국장은 “순종을 강조하던 국가 권력은 파업을 질서에 반발하는 행위로 취급하며 처벌해 왔다”라며 “파업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라는 시선이 제대로 형성될 토양 자체가 척박했다”라고 주장했다. 신수정 연구원은 “2019년 공안부가 공공수사부로 재편되기 전까지 파업과 같은 노조 관련 사건은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간첩 등의 사안을 담당하는 공안부에서 맡아 왔다”라며 “노조는 국가의 질서를 해치는 존재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여는 하태승 변호사 또한 이런 시선을 “노동자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는 목소리를 불온시하고 이를 범죄로 치환하는 인식”이라고 분석했다.

 

프레임에 갇혀 버린 한국의 노동권

한편 근면이라는 프레임이 강조되면서 노동자와 노조에는 ‘수동성과 부지런함’이 미덕이라는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반영되기도 했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단어가 바로 근로자다. 박성식 정책국장은 “5월 1일 세계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바꿔 부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라며 “근로자에는 열심히 순종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사용자에 대한 노동자의 종속성을 강조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노동자의 근면을 강조하는 것은 파시즘 체제가 국민을 동원할 때도 이용했던 방식”이라며 “한국의 새마을운동 정신 역시 근면, 자조, 협동이었다”라고 언급했다. 

국민이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과 다소 괴리가 있다는 점 또한 주목된다. 한국노동연구원 장홍근 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국민이 기업의 발전과 자기 성장을 동일시하는 역사가 오래 이어져 왔다”라고 짚었다. 그는 “노동자는 회사원으로서 회사의 발전이 곧 자신의 발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노조가 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해설했다. 외부로부터 노동법을 이식받은 우리나라 국민의 시각은 아래로부터 노동법 도입이 이뤄진 나라들의 인식과 큰 차이가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김동원 교수(고려대 경영학과)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에서는 자신을 생산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이 보통 자신을 소비자로 인식한다”라며 “그래서 물건을 사지 못하게 되거나, 기차 운행이 멈추게 되는 등 파업으로 인해 소비 행위가 가로막히면 노사 문제에 보수적 시선을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파업을 악의적으로 묘사하는 언론 보도는 이런 인식이 재생산되는 데 힘을 보탰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유준환 의장은 “언론에서는 노조의 활동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기본적 정보나 노조와 사측 간 잘 합의된 내용은 보도하지 않는 대신, 자극적인 내용만 골라 보도한다”라고 지적했다. 김동원 교수 또한 “상대적으로 보수언론의 수와 영향력이 상당한 데다, 국민도 스스로를 소비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진보언론 역시 파업에 대한 직접적 지지를 표명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언론 보도는 노조의 파업 개시 여부나 파업 지속 기간, 사측과의 협상 조건 등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광택 협회장은 “파업 예정 시각처럼 사실관계에 대한 보도 위주인 독일 언론과 달리, 파업을 보도하는 한국 기사에는 시민이 불편을 겪는다는 내용이 거의 항상 등장한다”라며 “시민 불편 초래에만 초점을 맞춰 파업을 극단적 이기주의로 몰아가면서 파업 개시 원인과 교섭 내용 등의 쟁점을 빠뜨리는 보도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사회적 지지

이처럼 한국에서 파업권은 활자로 명문화돼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반동적 움직임이라고 규정해 충분한 보장을 받기 어려웠다. 그나마 일궈낸 미약한 진전은 노동자들의 움직임 덕이었다. 장홍근 연구위원은 “1987년 민주항쟁과 맞물려 발발한 노동자대투쟁에 지식인과 학생이 모두 참여하며 전국적 연대가 결성됐다”라며 “1980년대 이후 한국 시민사회의 비약적 성장 뒤에는 노동 운동이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법률원 정기호 원장 또한 “단결과 쟁의 없이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기 어렵다는 점이 경험적으로 입증돼 노동법에서도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환경은 절대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노조는 노동자에게 법적 자문을 제공하거나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 여건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움직임은 시민들의 이해와 지지 없이는 결코 힘을 가질 수 없다. 이에 일각에서는 파업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노조 스스로 노동 운동의 방향성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홍근 연구위원은 “1980년대 중후반의 민주항쟁과 노동 운동이 시민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일부 노조의 전투적 활동이 이들을 대중으로부터 유리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노조의 노동 운동이 노동체제의 혁신적 전환을 이뤄내지 못하며 모든 노동자의 보편적 공감을 얻어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박성식 정책국장 역시 “비정규직과 간접 고용이 증가하며 노동자들의 계층화가 심해졌다”라며 “모든 노동자의 권리와 연대를 선도하는 노조의 역할이 약해진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김동원 교수는 “노조원을 대변할 때 노조는 어느 정도 여론을 고려하는 투쟁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라며 “그로써 해당 노조 자체가 성장해야만 나중에 노조의 주장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조언을 남겼다.

실제로 일부 노조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출범 당시 정치세력화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유준환 의장은 “노조가 위험하다는 인식은 결국 노조 조직률의 약화로 이어지고, 여론의 지지를 받는 데에도 불리하므로 노동계 전체가 고민 중인 부분”이라며 “우리는 노동 외의 정치적 안건에 조합원을 동원하거나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조합원에게 권하는 일을 지양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즉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사업장 단위의 노조가 협의회에 구속되지 않게 하고, 노동의 현안과 사업장의 이익 최대화에만 관심을 가지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노조의 내부적 노력이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노동3권이 나아가려면 결국 구조의 개혁과 인식의 전환이 선행돼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장홍근 연구위원은 “훨씬 이른 시기에 노동 운동이 싹트고 시민사회의 발전을 이뤄왔던 서구 선진국에 비해 국내 노조가 법적 지위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사회문화적으로도 노동자 정체성 및 단체행동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낮은 것은 사실”이라고 짚었다. 신수정 연구원 또한 “한국은 노동법 설계 자체가 파업을 제약하는 형태에서 시작됐으므로 이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라며 “파업을 무한히 보장해오다 시민의 일상을 위해 이를 어느 정도만 제한하기 시작한 유럽의 흐름을 따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장홍근 연구위원은 “현재 확산하고 있는 반노동, 반노조 분위기는 사회 전체의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이념적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가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어떻게 협력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것은 노조에 대한 비판인가, 비난인가. 정당한 비판은 문제를 깨닫고 발전하도록 이끌지만, 객관성 없는 비난은 약자의 희망을 짓밟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정적 시선으로 얼룩진 한국의 파업사는 여전히 정부의 과격한 노동 정책에 힘입어 계속된다. 이대로는 노조가 쟁취해 온 과거의 영광이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없다. 마지막 연재에서는 2023년 한국 노동3권의 현주소를 짚는다.

 

지면 편집: 김무성 편집기자 dannykim01k@snu.ac.kr
삽화: 카와하라 사쿠라 뉴미디어부장 sakusakukki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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