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북한이탈주민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사회

 

이 기사에 등장하는 세 사람에게는 오직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라는 공통점만이 있다. 이들은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학력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세 사람의 이야기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이들 모두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힐지 말지 고민했으며, 말투를 고치려 했고 북한에 있는 이웃을 그리워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 당연히 만족할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탈북민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정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정착 이후 삶에 주목해, 우리의 시선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자신을 해명하는 슬픈 삶을 삽니다”

조경일 씨(37)가 2004년에 마주한 한국은 그가 그리던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었다. 2000년, 조 씨는 굶지 않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2년간 중국에서 살다가 북송을 겪기도 했지만, 더 좋은 나라를 찾아 포기하지 않고 2004년에 재탈북해 한국에 입국했다. 중국에서 살 때 그는 북송을 피하고자 말을 못하는 척하거나 경찰을 보면 피해야 했는데, ‘동포의 나라’ 한국에서는 그런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조 씨가 마주한 것은 자신을 검증 대상으로 삼는 태도와 일방적인 호기심이었다.

그는 취업 과정에서 가장 큰 차별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조 씨는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은 마음에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국회의원실의 문을 두드렸다. 자기소개서에는 고향 이야기와 통일에 관한 열망을 담았다. 그러나 어떤 의원실에서도 그를 면접에 부르지 않았다. 탈락의 고배를 연속해 마시게 되자 그 이유가 출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 그는 자기소개서에서 출신과 통일에 관한 내용을 모두 지워 봤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서류가 통과됐다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조 씨는 자신이 겪은 상황을 “내 이력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북한이라는 출신지로 인해 한계에 부딪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류 통과 후 면접장에 간 조 씨는 더 이상 자신의 출신을 숨길 수 없었다. 함경도 말씨 때문이었다. 면접관은 조 씨의 말투를 의식한 듯 보였고, 어김없이 말투와 관련된 질문이 나왔다. 그가 자신의 배경을 어쩔 수 없이 설명하기 시작하자, 면접장은 마치 탈북민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촬영장이 돼 버린 듯했다. 다시금 그의 경력은 무의미해졌고, 받아 든 결과는 역시 불합격이었다.

이런 일방적인 호기심 어린 시선에 상처받은 사람은 조경일 씨만이 아니었다. 기자가 만난 탈북민 대학생 A씨는 평소 출신지를 묻는 말에 정확히 답하지 않으며 부모님이 어디 계시냐는 질문에는 외국에 있다고만 답한다. 출신지를 밝혔을 때 쏟아진 호기심과 그로 인한 질문이 마치 자신을 해명하라는 요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A씨는 “출신지를 묻는 말은 나 자신을 해명하라는 것처럼 느껴져 참 잔인하다”라며 “자신을 해명하는 슬픈 삶을 산다”라고 말했다. 말투를 근거로 출신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행위가 탈북민에게 폭력이 되고 있다.

 

 

“차라리 조선족으로 살 때가 나았습니다”

50대 여성 B씨는 2010년대 초반 조선족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탈북민으로 입국하면 국정원 조사와 같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 중국에서 오래 생활한 탈북민들이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렇게 B씨는 조선족으로 몇 년을 살다 최근에야 국정원에 탈북민임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차라리 조선족으로 살 때가 나았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조선족 신분으로 살 때는 당당했지만, 탈북민임을 밝히는 순간 어깨가 낮아지고 키가 작아지는 듯했다”라고 말했다.

조선족으로 살 때가 나았다는 B씨의 이야기는 얼핏 의문스러운 면이 있다. 여러 여론 조사에서 한국 사회가 탈북민보다 조선족을 더 부정적으로 바라본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발간한 『2024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조선족에 대해 친근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응답은 38.8%, 탈북민에 대해 친근하지 않다고 느끼는 응답은 30.6%였다. 그럼에도 B씨가 조선족으로 살 때가 더 나았다고 말하는 까닭은 일상에서 체감하는 낙인의 양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족이라 말하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였지만, 탈북민이라고 하면 나를 너무나 안쓰럽게 바라봤다”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적어도 조선족 신분으로 생활할 때는 정체성으로 인한 관계의 붕괴를 경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문제는 조선족이나 탈북민이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의 정도가 아니라, 이들을 대상화하는 우리의 시선에 있었던 것이다.

B씨는 여전히 ‘탈북민’이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가장 큰 계기는 가까웠던 관계가 정체성 때문에 갑작스레 깨진 경험이다. 몇 년 동안 많은 도움을 주고받던 지인과 친밀한 사이가 됐다고 느껴 출신을 털어놨지만, 그 후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B씨는 “얼마 전 강남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도 대충 인사만 하고 지나가더라”라며 상실감을 드러냈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 주민이 B씨가 탈북민임을 모른 채 다른 이웃을 가리키며 경계하듯 “저 여자 탈북민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이런 고립감 속에서 B씨는 북한이 그리울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이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도 속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해 지고 나서 늦은 밤까지 이웃과 별을 세며 온갖 이야기를 했다”라고 회상했다. 남편과 시가 모두 한국에 있었지만, 고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는 없었다. 이 점이 그에게 가장 큰 우울의 원인이었다. B씨는 부녀회에 참석하는 등 적응을 위해 노력했지만, “북한에서 사람이 정말 굶어 죽느냐”라며 사실 확인에 급급한 사람들과 온전한 소통을 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위로는 매주 일요일 늦은 밤 방영했던 탈북민 소재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B씨는 “프로그램을 보며 ‘저 말은 거짓말이다’라고 욕하기도 하고, 공감하며 울기도 했다”라며 “일주일 내내 기다리던 삶의 낙이었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B씨가 누구 한 명에게라도 마음 놓고 속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누구나 다 아는 범죄자를 아버지로 둔 느낌이에요”

기자가 만난 탈북민 세 사람이 마주한 상황은 제각기 달랐지만 문제의 출발점은 유사했다. 탈북민의 말투를 들은 사람들은, 이들이 어떤 배경에서 왔는지 집요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런 질문은 탈북민에게는 정체성을 해명하라는 요구처럼 들렸고, 해명은 종종 취업 과정에서의 불이익이나 이웃 사이에서의 배제 경험으로 이어졌다. 조경일 씨는 탈북민들이 가장 먼저 고치는 것이 말투라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A씨는 “첫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나서 말투를 빨리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조 씨는 북한 출신임을 철저히 숨겨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말투를 가장 먼저 고쳐야 하고, 학력까지 전부 다 고쳐야 해요.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티가 나면 절대로 안 돼요. 그러면 취업이 안 되거든요. 

 

한 번 ‘탈북민’으로 낙인찍히면 개인의 다양한 서사는 사라지고, 출신지가 정체성 전체를 덮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같은 낙인은 탈북민의 고립을 심화하고, 생계·정서·관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의 실업률은 6.3%로 전체 실업률(2.8%)의 두 배를 넘는다. 2023년 기준으로 자살률 또한 전체 국민 평균의 약 4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출신을 밝히는 순간 일자리를 잃거나 관계가 단절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탈북민들은 자신을 축소하거나 지우는 방식으로 일상을 버텨야 했다. B씨는 “경제적으로 남한이 더 나은 것은 확실하지만, 행복한 정도만 따지면 북한이 나았던 것 같다고 느낀 적도 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A씨는 자신의 출신이 드러나는 순간, 마치 누구나 다 아는 범죄자를 아버지로 둔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북한이탈주민으로 산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범죄자를 아버지로 둔 느낌이에요. 딱 그 느낌이에요.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탈북민인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렇대(탈북민이래)’하고 말하는, 그렇게 바라보는 편견이 느껴져요. 여기서 오는 불편함이 당연히 있죠.

 

지난 5년간 한국을 떠난 탈북민은 2,166명에 달했다. 전체 탈북민이 3만 4,100여 명임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조경일 씨는 “동포들에게 탈북자라고 손가락질받느니 외국인에게 아시안으로 차별받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환학생 신분으로 미국을 다녀온 A씨는 가장 좋았던 점으로 “영어가 완벽하지 않았음에도 출신을 질문하지 않았던 것”을 꼽으며 “나 자신을 해명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손명아 연구조교수는 “(이주를 결정하는 탈북민들은) 한국 사회에서 정체성 은폐로 인한 회의감과 사회적 관계에서의 고립감이 누적돼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해외로 이주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정책이 미비해서 발생하는 것일까. 기자가 만난 탈북민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정책이 얼마나 체계적인지 설명하는 탈북민도 있었다. 조경일 씨는 “제도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다”라며 “제도적으로는 탈북민을 포용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사회적·정서적 포용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탈북민임을 밝히자 연락을 끊은 B씨의 지인, 탈북민을 경계하듯 말한 B씨의 이웃 주민의 사례가 이를 잘 드러낸다. 실제로 『2024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을 ‘친근하게 느낀다’는 응답이 17.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고, 응답자의 52.5%가 탈북민을 결혼 상대로 꺼린다고 답했다. 탈북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새로운 정책이 아니라 탈북민을 평범한 이웃으로 대하는 태도였다. A씨는 “경주에서 올라왔다고 해서 항상 ‘경주 사람’으로만 인식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며 “북한도 그저 출신지일 뿐이고, 내 안의 어느 저편에 있는 정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B씨는 “(회사) 팀장이 아무것도 묻지 않았을 때 참 고마웠다”라며 “탈북 사실을 밝혔을 때 불쌍하게 바라보지 않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손명아 연구조교수는 사회적·정서적 포용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거친 탈북민의 목소리를 청취할 수 있는 담론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통해) 탈북민이 더 이상 전형적이고 동질적인 특성을 갖는 집단으로 규정되지 않고 각자의 삶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경일 씨가 말했듯, 우리 사회는 제도적으로는 이미 탈북민을 포용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이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다. 출신이 어디냐는 질문 대신 “요즘 잘 지내세요?”라고 물을 수 있다면, 말투가 다르다는 이유로 면접장을 탈북민 프로그램 촬영장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다면,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연락을 끊는 대신 “그렇군요”라고 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다면, 변화는 그리 어렵지 않다. 3만 명이 넘는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자신을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출신지가 정체성 전부를 규정하지 않는 사회는 일상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삽화: 박수민 기자

kayla24@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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