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빈(의료기기산업학과 석박통합과정)
문수빈(의료기기산업학과 석박통합과정)

“…마지막에 하느님이 나타나는 거죠. 그리고 교통정리를 하는 거예요. 너는 저리로 가라, 너는 이리로 와라, 너는 저자와 손을 잡아라, 너는 거기서 잠시 가만히 있어라,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중개인 같은 거죠. 그리하여 모든 일이 제대로 해결됩니다. 이걸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부르고 있어요.”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中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고대 그리스 희극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 신과 같은 존재가 등장해 복잡한 상황을 단숨에 정리하는 장치를 뜻한다. 사람의 힘으로는 몇 시간에서 며칠을 갈아 넣어야 했던 일이 단 몇 분 만에 끝나는 순간, 기술은 마치 전지전능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연구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이 급격히 단축되는 현상은 이미 곳곳에서 관찰된다. 초안 작성, 코드 구현 작업처럼 반복적인 작업에 LLM을 적용하면 일관된 속도 향상을 보일 수 있고, AI 도구를 활용한 연구자가 평균적으로 약 67% 더 많은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조금 더 빨리’ 일하게 된 정도가 아니라, 연구 생산성이 향상하는 속도 자체가 빨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자동화도 조용히 그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2024년 생의학 논문 초록의 약 13.5%가 이미 LLM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고됐고, 같은 해 발표된 논문에서는 가설 생성부터 실험 설계, 분석과 해석까지 생의학 연구 과정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연구의 속도와 효율은 기술에 의해 비약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이제 속도와 성능 면에서 사람이 기술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사실은 점차 익숙한 현실이 돼가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종종 AI가 현대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작동할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그 기술이 사람을 대체하거나 배제할지 모른다는 딜레마를 겪는다. 그러나 우리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정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기술이 아직 닿지 못하는 자리로 향하게 된다. 예컨대 데이터 정제나 변수 표준화처럼 비교적 규칙이 명확하고 반복적인 절차들은 점진적으로 자동화가 이뤄지고 있다. 반면 임상 현장에서의 공감적 판단이나 언어 또는 비언어적 신호 속에서 감정과 맥락을 읽어내는 과정은 여전히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영역이다.

카메라·센서·음성 분석 기술이 정서나 생리적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포착할 수 있게 됐지만, 이런 신호가 실제 임상 상황에서 어떤 맥락을 갖는지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에 가깝다. 특히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을 모두 포함하는 상호작용 신호는 그 자체로 절대적 의미를 갖지 않고 상황적 이해를 통해서만 해석되기 때문에, 센서 기반 측정값과 직접적으로 대응시키기 어렵고 안정적으로 데이터화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런 한계가 역설적으로,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역할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결국 질문은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온다. 기술이 아무리 속도와 효율을 높여도, 방향과 의미를 정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정교한 알고리즘이라 해도 스스로 질문을 시작할 수는 없다. 태양이 스스로 빛을 내듯, 의미의 출발점은 인간에게 있다. AI는 그 빛을 받아 반사하는 달과 같다. 연구 현장이라는 무대 위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보이는 AI도 결국 사람이 만든 무대 장치일 뿐이다. 무대에서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만들며 방향을 이끄는 성심 어린 감독의 역할은 언제나 사람의 몫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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