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배 교수(의학과)
윤현배 교수(의학과)

의대와 서울대병원은 대학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혜화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코로나19 시절 진행된 공사로 현재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지만 이전까지는 대부분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 공사 한참 전에 엘리베이터가 먼저 설치됐다. 혜화역 엘리베이터는 1999년 휠체어 이용 장애인인 이규식 씨가 혜화역 승강기에서 추락 사고를 당한 뒤, 그를 대리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2000년에 설치됐다고 한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 보면 현재는 대부분 어르신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계신다. 같이 근무하는 가까운 교수님이 최근에 불의의 사고로 무릎을 다쳐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데, 한동안은 혜화역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셔야 할 것 같다. 이규식 씨와 장애인 단체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이동권 확대를 위해 혜화역과 서울 곳곳에서 출근길 시위를 하고 있다.

이제는 자녀들이 많이 커서 도통 아빠와 같이 다니려고 하지 않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함께 많이 다니고는 했다. 그때의 기억이 두 가지 떠오른다. 유아차를 가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경우에 버스는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고 그나마 지하철이 선택 가능한 옵션이었다. 그럴 때면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환승할 때 에스컬레이터라도 있는지가 아주 중요했다.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또 다른 중요한 순간은 아이들이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어 할 때다. 외출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권하지만, 아이들은 꼭 집에서는 괜찮다고 한다. 아들, 딸이 하나씩 있어서 부부가 함께 있을 때는 성별에 맞게 한 명씩 데리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됐다. 그런데 혼자서 성별이 다른 아이와 같이 나왔을 때는 화장실 이용이 난감했다. 지금도 남자 화장실 입구 앞에서 어린 아들에게 별 문제 없는지 소리치는 엄마, 혹은 반대의 경우를 종종 보고는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도 꾸준히 발전해 이제 많은 곳에서 장애인 화장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1인용 장애인 화장실도 꼭 남녀로 구분돼 있다. 1인용 화장실까지 모든 화장실이 반드시 남녀 두 개의 성별로 구분돼야 할까? 물론 다수의 사람들은 불편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일상에서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 사회학에서는 그것을 특권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과 양육자, 도움이 필요한 노인이나 장애인과 그의 돌봄 제공자,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강고한 성별 이분법에 스스로를 억지로 끼워 넣을 수 없는 트랜스젠더나 논바이너리까지, 이런 화장실이 불편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오늘의 다수자도 내일은 소수자가 될 수 있다.

뉴스를 검색해보니 2022년에 성공회대에 국내 대학 최초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설치됐다고 한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성별 정체성과 나이, 장애 등을 떠나 말 그대로 차별 없이 ‘모두가 쓸 수 있는 화장실’을 말한다. 이후에 카이스트에서도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됐다고 하는데, 서울대에는 아직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모든 대학이 다 설치하고 나면, 아니면 법으로 건물 당 하나씩 설치하라고 강제하면 그제서야 설치할 것인가. 누구나 나이가 들면 화장실을 더 자주 가야 한다. 노화는 막을 수는 없지만 화장실의 문턱은 낮출 수 있다. 더 미루지 말고 이제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갖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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